MC: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남북문학기행의 홍알벗입니다.
오늘은 탈북자 출신 시인이자 소설가이신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탈북자와 문학’이란 주제로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MC: 선생님, 안녕하세요.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탈북해서 한국에 정착한 북한 주민 가운데, 창작활동을 하고 계시는 분들이 많은가요? 그 규모가 (몇 명?) 어떻게 되나요?
도명학: 전국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정확한 인원은 모르겠습니다만. 대략 짐작하건대 30명 안팎이 될 것 같습니다. 국제펜클럽망명북한펜센터 회원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주를 이루고 그 외 산발적으로 드문히 보입니다. 다만 창작활동을 꾸준히 하는가 안하는가에 따라 알려지는 빈도가 다르기 때문에 정확히 할 수 없습니다. 어찌됐든 작가의 타이틀을 가졌든 안가졌든 지금까지 책을 낸 사람은 꽤 됩니다. 탈북자들이 현재까지 출간한 책이 대략 150권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외 공저, 잡지, 신문연재, 수기 등 단편적인 글들은 많습니다. 그 저자들을 전부 작가라고 할 순 없지만 그만큼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다만 의욕은 의욕 이고 실지 글을 써낼 능력이 받쳐줘야 하는데 그 점에선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대필을 통해서라도 책을 내는 사람들은 있습니다.
MC: 탈북하신 분들은 주로 어떤 소재 또는 주제로 글을 쓰시나요? 아무래도 탈북민들이 남한 에 와서 쓰는 문학작품에는 탈북민의 경험에서 우러 나오는 각종 소재가 많을 것 같은데 말이 죠.
도명학: 북에서 이미 작가수업을 하다 온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 좀 차이는 있지만 대개 탈북동기와 탈북과정, 남한에 와서 겪은 경험을 주 소재로 삼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당연한 현상이라고 봅니다. 모두가 누구나 경험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글로 써낸 것 이어서 일명 증언문학, 고발문학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물론 저처럼 탈북이야기가 아니라 북한 내부 현실을 기본 소재로 삼고 쓰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미 남한문단에 작가로 정식 등 단한, 열명 정도 되는 탈북작가들입니다.
MC: 탈북자가 쓰는 문학작품의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북한출신 작가가 썼으니 북한 문학인가 요, 아니면 남한에 와서 썼으니 남한문학인가요? 무엇을 근거로 둘로 나눌 수 있나요? 아니면 이렇게 두 편으로 나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요?
도명학: 글쎄요. 그렇게 구분하려니까 조금 애매하네요. 북한출신 작가가 썼으니 북한작품 이라고 하자니 이미 작가는 북한국적자가 아닌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작가가 된 상황이니 말 입니다. 그렇다면 작품이 북한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북한문학이라고 한다? 이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남한작가들도 북한을 다룬 작품을 쓰니까요. 그럼 남한작가들이 북한에 대해 쓴 책도 북한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또 탈북자들도 남한을 소재로 한 정착이야기를 많이 쓰는 데 그건 또 뭐라고 해야 할까요? 남한이 소재이기 때문에 남한문학이라고 하자니 이번에 또 저자가 북한출신입니다. 구분이 어렵네요. 제 생각엔 굳이 나눌 의미가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크게 보면 다 같은 한국문학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MC: 그러고 보니 문학까지 남한과 북한으로 나누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것 같네요.
도명학: 그렇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상 북한도 한국영토이고 그곳에 사는 사람도 한국국민 입니다. 법으로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대한민국 일부를 불법점거하고 국가를 참칭한 반국가단체로 되어 있는 만큼 북한출신이 쓴 작품도 다 한국문학의 범주에 속한다고 봐야겠 죠. 물론 국제법상으론 남북이 다 유엔가입국으로 별개의 국가지만 그건 한반도가 처한 특수 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취한 유엔가입일 뿐 서로 상대방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남 이나 북이나 같습니다. 서로가 자기 쪽에 정통성이 있다고 다투고 있죠. 이런 혼란스러움 때 문인지 한국에는 민족문학 혹은 한반도문학이라고 뭉뚱그려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 로 "한반도문학협회"라는 단체가 있는데 출간하는 잡지 제호도 "한반도문학"입니다. 이렇게 놓고 볼 때 저는 탈북자가 쓴 작품을 크게는 한국문학이고 그 아류로 탈북문학이라고 보면 어 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해외에서는 노스코리아반체제작품이라고 불려도 괜찮을 것 같습니 다.
MC: 탈북문학 작품이 남한 독자들에게 어느정도나 영향을 미친다고 보시나요? 왜 그런가요? 남한독자들이 탈북민이 쓴 작품에 공감한다고 보십니까?
도명학: 탈북문학작품이 남한에 제가 처음 왔을 때 보니 기대에 비해 관심을 덜 받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선 판매량인데 저조하다는 정도가 아니더군요. 어떤 책은 지인들에게 선 물로 기증했거나 소박한 출판기념회에서 혹은 어떤 행사에 가져다 저자가 직접 판매한 것 말고는 서점에서 단 한부도 팔리지 않은 경우가 있더군요. 그러니 영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려면 우선 책이 팔리고 봐야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영향력보다는 관심자체를 덜 받는 것이 더 아쉽습니다. 일단 읽어보고 공감하든지 거부감을 가지든 할 것이 아닙니까. 물론 몇몇 작품은 꽤 팔렸습니다만 그래도 사회에 영향을 줄만큼은 아니었습니다. 그나마 저의 소설집 '잔혹한 선물'의 경우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도서로 선정되고 휴가철에 꼭 읽으면 좋을 책에 선정되면서 3판까지 찍어냈는데 요즘 또 절판될 것 같다고 합니다. 아마 4판 인쇄에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저로선 좀 위안이 됩니다.
MC: 남한에서 대중들의 많은 관심을 받아 가장 많이 판매된 탈북민의 책은 어떤게 있을까요?
도명학: 한국 내에선 전 주영북한대사관 공사였던 국민의 힘 태영호 국회의원의 책이 가장 많이 팔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책은 문학 작품이 아니라 북한정권 시스템에 관한 자료를 서술한 것입니다. 또 저자가 유명한 인물로 주목받다보니 책도 그만큼 많이 팔렸겠죠. 한국은 이름값이 판매부수에 결정적이더군요. 그리고 비록 한국에서는 그리 많이 팔리지 않았으나 해외에서 굉장히 많이 팔린 경우는 있습 니다. 예를 들어 장진성의 '경애하는 지도자'는 시나 소설 같은 전문 문학작품이 아니고 증언 이지만 한국인으로서는 해외에 가장 많이 팔린 책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도 한국 메이저 언 론들이 다뤄주지 않아 별로 알려지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된 데는 아마 남북관계와 북한인권문제, 탈북자 문제 등이 남북 간에 정치적으로 다루 어지는 관계로 국민들이 관심도가 떨어지고, 또 독서량이 제일 왕성한 젊은 세대는 배고픔이 뭔지 고문이 뭔지 전혀 경험하지 못한데다 취업, 진로, 돈벌이, 결혼 등 당장 목전의 일에 바 빠 북한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여유가 없는데 기인된 현상 같습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책임은 정치인들에게 있다고 봅니다. 북한에 대해 국민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이슈를 던지고 공론화하고 분위기를 살려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자기들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북한문제, 탈북자문제를 대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MC: 많은 탈북민 여러분들이 한국에 내려와서, 북한에서는 누리지 못했던 표현의 자유를 맛 보게 됩니다. 선생님 본인은 물론 다른 탈북작가들이 한국에 정착했을 때, 문학활동, 그러니까 창작활동에 있어 가장 좋았던 점은 무엇이고, 가장 나빴던 점은 무엇입니까?
도명학: 두말할 것도 없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것입니다. 어떤 글은 쓰고 어떤 글은 쓰지 말라는 훈계가 없습니다. 검열도 없고 각자 소신대로 쓰면 됩니다. 북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 이죠. 문인단체에 가입하는 것도 어느 단체에 가입하든 여러 단체에 중복가입하든 본인 마음 대로입니다. 등단도 북한처럼 이것저것 많이 따지지 않습니다. 본인 노력과 실력을 보여주면 됩니다. 작품을 써도 출판사를 자의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도 좋습니다. 나빴던 점이라면, 아니 나쁘다기보다는 아쉬운 점은 표현의 자유, 출판의 자유가 너무 넘쳐 별의별 작품들이 다 쏟아져 나와 범람하다보니 작품의 문학성보다 이름값이나 홍보력에 의해 정작 좋은 작품들은 묻히고 수준미달인 작품이 오히려 명작처럼 보여지는 것입니다. 출판사들 입장에선 작품이 어떻든 돈만 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물론 한국만 이런 것은 아닐 것이고 자유가 있는 나라들은 다 그렇겠죠. 그래도 쓰고 싶은 글을 시도조차 못해보는 북한에 비하면 천국입니다.
MC: 한국으로 가고 싶다는 북한 문학작가들이 많은가요? 남한으로 가고 싶은 가장 큰 이유가 뭔가요? 한국에 정착한 작가들은 탈북해서 한국에 와 산다는 것에 대해 만족하나요? 어떻습 니까?
도명학: 북한에 워낙 작가인원수 자체가 너무 적다보니 한국으로 가고 싶어 하는 작가들이 많을 수가 없겠죠. 그 작가들 중에 남한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상당부분 되리 라 봅니다. 그러나 제가 알건대 북한작가들의 성품이 소심합니다. 글 한자도 심중하게 써야 하고 검열과 사상검토에 늘 대비하고 살아야 해서 그렇게 길들여져 있습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간절합니다. 그래선지 저를 포함한 탈북 작가들은 한국에 온 것에 대해 특별히 만족감을 느끼며 삽니다.
MC: 선생님께서 한국에 정착한 다음에 직접 쓰신 시 한수, 또는 소설 한 편이 있으시면 소개 와 함께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도명학: 네. 소설을 하나 소개하고 싶은데 오늘 시간상 어려울 것 같아 대신 제가 남한에 와서 맨 처음 써본 시 한수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결박된 자유 (도명학)
하늘에 떠 있는 모든 것이 부럽다
바람도, 구름도, 새들도,
가고프면 가고 머물고프면 머문다.
자유란 말도 모르는 공중의 것들
그것들이 오히려 자유다.
나서 자란 고향이 그리워도
휴전선 철조망에 넝마처럼 걸리는 마음
그러면서도 자유를 말하는
내 입술이 지지리도 어색하다.
여기까집니다. 방송으로 소개하기엔 너무 부족한 줄 알지만 고향을 그리워도 갈수 없는 탈북민들의 마음을 담아보려 했을 뿐입니다.
MC: 탈북문학에서 다뤄졌으면 하는 게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도명학: 지금까지 탈북문학이라고 일컫는 작품들을 읽어보면 증언과 고발 위주입니다. 당연 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증언과 고발은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효과가 있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면 나의 이야기가 곧 너의 이야기가 되도록 써야 합니 다. 가뜩이나 개인주의가 범람하는 사회에서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는 공감이 어렵습니다. 이 걸 인정하고 글을 써야 합니다. 북에서 겪은 이야기, 탈북과정에 겪은 이야기, 한국에서 겪은 이야기, 이런 것들을 어떻게 하면 남한독자들에게 공감을 가지도록 쓸 것인가를 연구해야 합 니다. 한마디로 왜 남한사람이 북한 관련 이야기를 들을 때 저자와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선 정하고 다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물론 많은 훈련이 필요한 어려운 일입니다만 꼭 그렇게 해 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MC: 네, 오늘은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 정착한 탈북 문학가들의 작품세계에 대해 도명학 선생님과 이야기 나눴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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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MC: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수가 3만 3천여명에 이릅니다. 그중에서도 문학가는 30명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하니, 그들이 갖고 있는 문학의 세계가 더욱 궁금하기만 합니다. 이번 시간에는 1부에서 언급된 도명학 선생님의 작품, 그러니까 소설집을 좀 살펴 볼까 합니다.
이번 시간에 소개해 드릴 도명학 선생님의 소설집은 지난 2018년 9월 출간된 책으로, 제목은 ‘잔혹한 선물’입니다.
먼저 작가부터 만나 보시죠. 도명학 선생님은 1965년 북한 양강도 혜산에서 태어나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 창작과를 수료했습니다. 한국소설가협회 월간지 [한국소설]로 등단했는데요. 한국내 발표작품으로 소설집 『잔혹한 선물』과 시 「곱사등이들의 나라」 「외눈도 합격」 「철창 너머에」 「안기부소행」 등이 있고, 에세이 「휴대폰이 없었으면 좋겠다」 「시(詩)야? 암호야」 「사라져가는 이웃사촌」 등 백여 편이 있습니다.
북한 인권을 말하는 남북한 작가 공동 소설집 『국경을 넘는 그림자』, 『금덩이 이야기』, 『꼬리 없는 소』, 『단군릉 이야기』와 『한중대표소설집』, 경원선 철도 이야기 소설집 『원산에서 철원까지』와 경의선 철도 이야기 『신의주에서 개성까지』에도 참여했습니다. 전 조선작가동맹 소속 시인, 반체제작품 혐의로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서 삼 년동안 투옥하고, 2006년 출옥 후 탈북해 한국 내로 입국했습니다. 현재 도명학 선생님은 자유통일문화연대 상임대표를 맡고 있으며, 한국소설가협회 회원입니다.
도명학 선생님이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쓴 그의 대표적인 작품인 ‘잔혹한 선물’은 북한 사회에서 형성된 삶의 방식과 생활 의식을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이해의 계기를 마련한, 제2의 분단문학의 위상을 정립하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잔혹한 선물, 이 한권의 책에는 7개의 소설이 실려 있습니다. ‘재수 없는 날’ ‘생일’ ‘잔혹한 선물’ ‘꼬리 없는 소’ ‘책 도둑’ ‘정 아바이네 집’ ‘시황제의 나라’ 등이 그것입니다.
그 가운에 ‘잔혹한 선물’의 일부분을 발췌해 읽어 보겠습니다.
““이렇게 국가적으로 중요한 공사는 말이야. 지원 물자가 자주 오기 마련이거든. 옛날부터 그래왔으니까. 그런데 내가 좀 겪어봐서 아는데 지원 물자도 지원 물자 나름이야. 말하자면 오늘 같은 경우엔 꾀병을 부리든 어쩌든 핑계를 대고 빠지는 게 낫단 말이야. 많든 적든 일단 사랑의 선물이라고 이름 붙은 걸 먹으면 그 값을 몇 갑절 해야 되거든. 글쎄 먹어 없어지지 않는 옷이나 물건 같은 거라면 받는 게 낫지. 나중에 장마당에 내다 팔아도 돈이 되니까. 근데 아까 화구 당번이 말하는 걸 들으니 오늘은 과일 먹었다면서? 음, 그랬군. 덜덜 떨며 한입씩 뜯어 먹는 걸 사진 찍어 간수했다 이담에 보면 참 재밌겠는데. 흐흐. 생각만 해도 웃긴다. 그래 그거 몇 입 뜯어 먹고 야간 작업 하니 기분이 어때?”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오늘 순서는 여기까지입니다. 진행에 홍알벗이었습니다. 다음 주 이 시간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고맙습니다.
진행: 홍알벗, 도명학 / 에디터: 김진국 /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