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남북문학기행의 홍알벗입니다. 여러분들은 '도서관'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한국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 멋진 모습으로 시집을 읽는가 하면, 실제로 도서관을 가 보면 취업을 위한 시험공부를 하느라 정말이지 한눈 팔지 않고 공부하는 수험생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글쎄요, 북한의 도서관과 많이 다른 모습인지도 궁금합니다.
MC: 그 전에, 먼저 한국의 도서관은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잠깐 좀 살펴 보겠습니다.
도서관에는 기본적으로 책과 논문, 잡지, 신문 등의 인쇄 매체부터 시작해서 영상, 비디오 게임, 마이크로필름, 디지털 자료 등 다양한 자료를 수집·정리해 놨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도서관은 인터넷이 아니라 직접 방문해서 무료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앞서 잠깐 언급했습니다만, 한국에서 도서관은 학생들을 위한 '열람실' 내지는 '공부방'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웬만한 대학의 도서관은 취업 준비를 위해 공부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물론 책이나 신문, 잡지 읽으러 오는 사람들도 많긴 합니다.
이런 모습의 한국 도서관을 탈북자들은 어떤 느낌으로 어떻게 바라봤는지, 시인이자 소설가인 탈북자 출신 문학작가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이야기 나눠 보겠습니다.
MC: 선생님, 안녕하세요.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한국에 오셔서 당연히 도서관에 가보셨을 텐데요. 한국 도서관에 가 보시고 가진첫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어떠셨나요?
도명학: 제가 북에 있을 때 도서관과 인연이 깊었습니다. 서점에 구입할 수 있는 책이 너무 부족해 도서관에 의지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대출이 되지 않고 열람만 가능한 책들도 있어 어떤 날은 아예 작심하고 도서관 열람실에 온종일 앉아 책을 읽었고 혹시 어느 지방에 한동안 체류할 일이 생기면 그곳 도서관이 어디 있는지 꼭 알아보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한국에 와서도 도서관이 궁금했습니다.
MC: 한국에 오셔서 도서관 찾는 건 어렵지 않으셨는지요?
도명학: 한국에 와서 정착교육기관인 하나원을 나오고 난 뒤 집 주변을 아무리 살펴봐도 도서관이라고 쓴 건물이 보이지 않아서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동네상가에 아이들이 들락거리는 만화책 빌려주는 작은 방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착도우미 역할을 하는 사회복지관 담당자에게 도서관 안내를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저를 데리고 간곳은 "평생학습관"이라고 쓰여 있는 건물이었는데 그게 도서관이었습니다. 집에서 걸어서 5분도 채 안 되는 거리에 도서관이 있는 줄 몰랐던 것입니다.
MC: 그럼 도서관에 자주 가셨겠네요?
도명학: 그런데 처음 한동안은 도서관에 자주 가다가 점점 발길이 뜸해졌고 오히려 교보문고 같은 서점에 더 많이 가게 되더군요. 도서관 책을 빌리기보다 서점에서 아예 구매하게 되더라구요. 또 서점에서도서관처럼 책을 열람할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도서관은 그 후 꼭 발품 팔아 찾아가야 할 일이 생길 때만 가게 되었습니다. 서점에 없는 책이 도서관에 있는 경우도있었고 특히 북한관련 자료나 책을 봐야 할 때 국회도서관이나 북한대학원대학교 도서관, 등 북한과 관련한 책들을 취급하는 곳에 가야 했습니다. 북한에서 출판한 책이나 잡지 신문들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물론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저처럼 그것을 봐도 되는 사람임을 증명해야 가능한데 북한인권단체에 종사하다보니 단체 직인을 찍은 서류를 가져가면 볼 수 있습니다. 북한에선 남조선 도서와 자료를 볼 수 있는 곳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는데 남한에 와선 참 꿈 같은 일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MC: 한국의 도서관을 북한의 도서관과 비교할 때 어떤거 같습니까? 두 곳의 도서관을 비교할 때 어느 곳의 것이 더 나아 보이시나요?
도명학: 글쎄요, 아마 비교불가라고 표현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제가 앞에서 말씀드린 "평생학습관"이란 명칭의 도서관에 처음 갔을 때 이용절차가 생소했습니다. 도우미와 함께 가지 않았다면 어찌하면 되는지 몰라 한참 빙빙 돌았을 것입니다. 그날 거기서 도서관 이용카드를 발급받고 책 여러 권을 빌렸습니다. 북에서도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려면 대출증이라는 것을 발급받아야 했는데 제 기억엔 중학생 때 대출증을 발급받으려면 신청서에 아버지 직장 도장까지 찍어서 가져가야 했습니다. 책을 분실하면 본인이 변상하든가 부모가 변상해야 하는데 그도 안 되면 마지막엔 직장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담보였던 같습니다.
MC: 한국은 신원만 확실하면 손쉽게 책도 대여하고 열람할 수 있는데 북한은 안 그런가 봅니다.
도명학: 그래선지 가장 이해가 안됐던 것은 남한은 도서관에서 돈을 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책을 빌리면 대출료를 내야하고 열람하면 열람료를 내야 했습니다. 공짜가 아니었죠. 그런데 돈만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알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짜로 책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북에서는 어린이 도서관에서 조차 돈을 냈습니다. 그 돈이 생활에 어려움을 줄 정도로 비싼 것은 아니었지만 제가 어렸을 때 그 돈을 매번 부모님에게 달라고 할 때마다 입이 잘 떨어지지 않던 생각이 납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도서관에 열배 이상 더 많이 가니까 좀 미안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습니다.
MC: 자본주의 사회인 한국에서도 도서관 책만큼은 누구나 손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해 놨는데 북한은 안 그런가 봅니다. 모르겠습니다. 옛날에는 한국도 그랬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그렇게 하는 데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도명학: 어떤 땐 철도역이나 공공시설에 차려진 간이도서관에 돈이 없어 학생모를 벗어 맡겨놓고 책을 빌려 읽은 적도 있습니다. 1990년대 북한에 경제난이 닥치면서부터는 도서관에 대출료나 열람료를 내는 정도론 원하는 책을 빌리기 어려워 졌습니다. 도서관 사서들이 뇌물을 추가로 받기 시작한 것인데 경제난으로 종이사정이 긴장해지면서 출판사들에서 책을 많이 찍어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수가 너무 적어 새로 신간도서를 보려면 경쟁자가 많아 도서관 사서에게 뇌물을 주면서라도 잘 보여야 했습니다. 돈이면 돈, 휘발유면 휘발유, 등 사서에게 필요한 건 무엇이나 가져다 줄 정도였습니다. 뇌물이 없으면 너무 오래된 책이나 수요가 없는 책들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한에는 책이 넘쳐날 정도여서 그럴 필요도 없거니와 도서관이 아닌 서점에서조차 책을 공짜로 열람할 수 있다니 북한과 비교불가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도서관이든 서점이든 일단 들어가면 서가를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책을 고를 수 있는 것도 북한도서관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북에서는 독자가 책을 요구하면 사서가 찾아줍니다. 물론 평양의 인민대학습당 같은 특대형도서관은 좀 다릅니다만 자유롭게 책을 볼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책값은 남한이 북한보다 책값은 엄청나게 비쌉니다. 그래서 소장하고 볼 필요가 없는 책은 도서관에서 보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데 그러자니 이번에는 또 도서관에 다닐 시간이 부족합니다. 책을 사서 봐야 가방에 넣고 출퇴근길에서도 보고 집과 직장에서도 시간이 되는대로 몇페이지씩 읽을 수 있는데 도서관에 꼭 가서 보자면 아무 때나 볼 수 없다는 것이 단점이죠. 물론 최근 연간엔 전자책이 점점 추세이긴 한데 제 경험으론 전자책보다 종이책이 아직은 더 익숙해선지 편합니다.
MC: 한국 도서관을 이용하시면서 아쉬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도명학= 아쉬웠던 점은 전혀 없었습니다. 책이 많고 자유롭게 골라볼 수 있고 여름이든 겨울이든 계절에 관계없이 냉난방이 빵빵하게 돌아가지, 커피나 음료도 간편하게 사 마실 수 있고 사실 시간만 넉넉하면 도서관에서 온종일 시간을 보내도 불편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MC: 한국 도서관에 가셨을 때 특히 '이것'이 많아서 놀랐다 하는 게 혹시 있었다면 무엇인가요?
도명학: 놀랐던 점이라면 도서관이 단순히 책만 빌려보는 곳을 넘어 종합적인 교육문화공간으로 운영되는 것이었습니다. 항시 이용할 수 있는 학습실, 온라인교실, 강당도 있고, 일자별 프로그램에 따라 하는 인문학강의 등 다양한 강의도 들을 수 있습니다. 북한도 최대도서관인 평양의 인민대학습당은 유사한 면이 있긴 한데 남한 도서관들에게 비교할 수준은 아닙니다. 또 각 도에 한 개씩 있는 도립도서관 정도가 약간 따라하는 모양새를 보이긴 했는데 여건이 따라주지 않아 흉내만 낼 정도구요.
MC: 반대로, 없어서 아쉬웠던 것은 또 뭔가요?
도명학: 글쎄요. 필요한 건 다 있는 것 같아 한마디로 완벽하다는 생각만 듭니다. 굳이 더 있었으면 하는 것을 꼽으라면 제가 아직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흡연시설이 없네요. 금연이 최선인 건 알지만 도서관에 가 책에 열중하다보면 담배 생각 때문에 그리 오래 있지 못하고 도서관을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단지 제 개인에 한한 것이지 비흡연자들 입장에선 흡연시설이 있던 없든 관심이 없겠죠. 북한도 도서관이 금연이긴 합니다만 문밖에만 나오면 마당에서 피워도 상관없습니다.
MC: 북한의 가장 크다는 도서관은 어디인지 소개해 주시죠.
도명학: 앞에서 말씀드린 평양 김일성광장 정면 주석단과 함께 있는 한옥식 건물, 인민대학습당입니다. 규모는 엄청납니다. 한국에 그렇게 큰 도서관이 없습니다. 모르긴 하겠지만 세계적으로도 제일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아무튼 가보면 놀라울 정도로 큽니다. 규모가 그렇게 큰 만큼 다양한 도서들도 그에 걸맞게 많습니다. 다만 그걸 아무나 자유롭게 다 볼 수 없다는 것이 문제지만요. 신분과 전공분야를 따져서 책을 봐야 합니다. 인민대학습당 다음으로 큰 도서관은 김일성종합대학 도서관이었습니다. 제가 탈북한 이후에 새로 생긴 대형도서관이 더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MC: 한국 도서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한 말씀 해 주시죠.
도명학: 도서관 본연의 기능에 있어선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단지 욕심 같아선 이왕 종합적인 교육문화공간 역할을 하는 바엔 도서관에만 다녀도 거기서 각종 자격증 취득과 사이버대학 졸업 같은 것이 가능했으면 더 좋겠습니다.
MC: 네, 지금까지 탈북자 출신 소설가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한국의 도서관을 보고 느낀 점과 또 북한의 그것과는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선생님 오늘도 유익한 말씀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MC: 네 남북문학기행, 오늘 순서는 여기까지입니다. 저희는 다음 주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끝>
기자홍알벗, 에디터이진서, 웹담당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