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한국의 영화와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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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예전에 한국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 중에 'TV문학관'이라는게 있었습니다. 여러 작가들이 썼던 소설을 텔레비전에 맞게 영화의 형식을 빌어 다시 만들었던 것인데요. 심야에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도 시청률이 꽤 높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도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는데요. 이러한 작품들을 탈북한 문학인은 어떻게 보는지 탈북 소설가 도명학 선생님과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MC: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한국에 오셔서 처음 가 본 극장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습니까?

도명학: 하나원을 수료하고 사회에 나와 서울에 집을 받고 며칠 후 지역사회복지관에서 연락이 왔는데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탈북민들이 모여서 영화관람을 가기로 했으니 어느 장소에 집합하면 된다고 하더군요. 모이고 보니 전부 남한에 온지 얼마 안된 탈북민들이고, 안내하는대로 간 곳이 뜻밖에도 롯데백화점이었습니다. 아니 영화 보러 간다더니 백화점엔 왜 데리고 왔을까, 이상했습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윗층에 올라가니 거기가 영화관이었습니다. 북한에는 백화점에 영화관이 없는데 남한에는 백화점에 영화관이 있다는 것이 정말 낯선 모습이었습니다. 북한에는 영화관이나 극장이 독립적인 건물로 되어 있지 이렇게 다른 건물 안에 함께 있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공공기관이나 기업소에 회의실이나 문화회관이 있는데 영화나 규모가 크지 않은 예술 공연은 합니다. 그러나 상업적으로 관람료를 받는 전문 영화관이나 극장은 다 독립적인 건물이고 "영화관" 혹은 "예술극장"이라는 간판을 크게 써붙였기에 아무리 낯선 고장에 가도 첫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MC: 한국 영화관은 북한의 것과 많이 달랐나요? 어땠습니까?

도명학: 백화점 안에 있는 한국의 영화관은 북한 영화관이나 극장처럼 로비가 탁 트이고 정숙한 분위기가 아니고, 공간이 협소한데다 여기저기 영화광고 전광판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처음 본 입장에선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복잡하고 조잡해보였습니다. 또 영화관에서 커피와 음료, 간식거리를 파는 것도 낯설었고 그걸 사들고 들어가 먹으면서 영화를 보는 것도 이상해보였습니다. 북한에 있을 땐 영화관이나 극장에 들어가 정숙한 자세로 영화를 보는 것이 공중예절로 여겼는데 남한은 참 자유롭게 영화를 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상하긴 했지만 괜찮은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한동안은 북에서 살던 타성 때문인지 영화관에 가서 사먹으며 보게는 안 되더군요. 그냥 영화만 보고 나왔죠. 지금은 당연히 커피를 사들고 들어가는데 익숙해졌습니다. 그 다음 낯선 것은 영화관에 상영관이 여러 개 있는 것이었습니다. 많게는 10개도 넘는 곳이 있더군요. 또 상영관마다 하는 영화가 다 달랐습니다.

MC: 한국 영화관의 어떤 점이 좋았나요?

도명학: 동시에 여러 가지 영화를 하니까 보고 싶은 영화를 선택해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고, 낮이고 밤이고 계속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북한에는 동시에 상영할 정도로 영화가 많지 않습니다. 평양에 대동강국제영화관 같은 곳은 좀 다르지만 기본상 북한에는 영화관에 상영관이 한 개입니다. 대극장 같은 큰 극장은 기본 무대가 있는 관람석 외에 소극장이라고 부르는 작은 극장이 지하에 따로 있습니다. 예술극장은 남한이나 북한이나 비슷한 것 같습니다. 서울 충무로에 있는 대한극장은 독립적인 건물인데 제가 몇 번 갈 때마다 보니 말이 극장인데 예술 공연 하는 것은 한번도 보지 못했고 영화만 하는 것 같더군요. 이름을 대한극장이라고 하지 말고 대한영화관이라고 고쳐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MC: 북한에서도 한국영화를 보셨겠습니다만, 한국에 오셔서 보는 영화는 그 맛이라고나 할까요, 느낌이 많이 달랐을거 같은데 말이죠. 어떠셨나요?

도명학: 제가 북한에 있을 땐 한국영화를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때까진 한류가 지금만큼 유입되는 양이 많지 않았습니다. 드라마는 봤습니다. 드라마 "야인시대"와 "겨울연가" 같은 것을 봤는데, 영화는 태국 난민수용소에 있을 때 그곳 티비에서 나오는 것을 우연히 몇 장면 봤는데 코미디영화였던 같고 처음부터 보지 못해 제목도 모르고 봤습니다. 한국에 와서 앞에서 말씀 드린 대로 처음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봤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 본 영화는 한국영화가 아니고 "스파이더맨"이라는 영화였습니다. 영화관도 낯선데다 안내해 데려간 사회복지사가 이끄는 대로 들어가 본 영화가 하필이면 한국영화가 아닌 외국영화였죠.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소감이 어떤가 묻더군요. 저는 솔직히 재미가 덜했습니다. 사실주의적인 영화만 보다가 그런 가상세계에서 벌어지는 환상영화 같은 것이 낯선데다 대사가 한국어로 더빙되지 않고 전부 자막으로 되어 있어서 그걸 읽느라고 화면을 미처 자세히 볼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자막 보는데 익숙해졌지만 처음엔 그것 때문에 외국영화는 잘 보게 안되더군요. 북에서는 외국영화를 거의 다 한국어로 번역해 더빙해 내놓지 자막은 거의 사용 안합니다.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 한다면 번역은 문학작품이나 영화나 북한이 남한보다 훨씬 질이 높습니다. 영화도 전문 번역영화제작 집단이 따로 있어서 아주 잘합니다. 북한에 나온 중국 조선족동포들한테 북한에서 번역한 중국영화를 보면 어떤가 물었더니 중국어로 된 중국영화 원본보다 더 좋게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소련영화도 마찬가지였는데 옛날 우리 동네에 소련에서 온 고려인출신이 살고 있었는데 그도 소련영화를 볼 때마다 조선말로 된 소련영화가 더 재미있다고 더빙한 배우들의 화술연기도 소련배우보다 더 낫다고 하더군요.

MC: 혹시 소설이나 시 같은 일반 문학작품도 그런가요?

도명학: 소설도 마찬가집니다. 제가 북에서 읽은 외국소설을 한국에서도 봤는데 비교가 안 됩니다. 북한에서 번역한 것보다 재미도 없고 뜻도 잘 전달이 안 됩니다. 얘기가 좀 다른 데로 간 것 같은데, 한국영화 얘기로 다시 돌아간다면 한국영화는 북한영화에 비해 아주 발전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촬영기술이나 편집기술, 배우들의 연기 하나하나 북한보다 훨씬 수준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북한영화보다 흐름이 연속적이지 못하고 화면이 너무 자주 바뀌는 것이 한동안은 산만해보였습니다. 비약도 너무 심해서 몰입되자면 영화를 보기 시작해 한참 지나야 되더군요. 지금은 괜찮아졌지만 이런 것이 문화차이라고 생각됩니다.

MC: 한국의 영화 가운데 가장 감동을 받았던 것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이유는요?

도명학: "태극기 휘날리며", "크로싱", "국제시장", "명량해전" 같은 영화가 감동이 컸습니다. 이유는 이 영화들이 모두 주제가 큼직큼직하고 사회적 문제를 다룬 교양적 가치가 감동과 재미와 잘 어우러져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면서는 6.25한국전쟁으로 겪에 되는 동족상잔의 아픔을 통절하게 느꼈습니다. 북에서는 아무리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를 봐도 동족상잔의 아픔 같은 것을 거의 느낄 수 없었습니다. 원래 영화를 그렇게 만드니까요.

“크로싱”은 목숨을 걸고 한국에 오는 탈북자들의 처지와 그 과정에 비참한 죽음을 맞는 모습을 그려낸 것으로 상업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저로선 상당히 의미 있는 영화였다고 생각됩니다. “국제시장”도 한국 근대사의 희노애락이 모두 녹아든 영화로서 상업적으로도 성공햇지만 국민들의 인식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명량해전”은 역사물 영화물 영화로서 이순신장군의 인간됨과 애국심, 그리고 임진왜란 때 군인들과 민중들의 모습을 통해 현 세대에 던지는 메시지가 강했습니다. 물론 영화가 박력 있고 속도감 있고 긴장감이 있어 상업적 측면에서도 상당히 성공한 영화였습니다.

MC: 한국 영화 중 문학성이 가장 많이 녹아있었던 작품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도명학: 글쎄요. 아마 앞에서 말씀 드린 영화 중 "국제시장"과 "크로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영화들이 문학성이 높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아마 소재에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코로싱"의 경우 탈북자의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하다 보니 진솔하고 리얼리티가 살아있습니다. 또 영화가 말하려는 주제가 의미 있고 명백한 주제인 것 같습니다. 짜임새도 훌륭하고, 그 영화를 소설로 각색해도 좋은 소설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MC: 영화가 문학성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도명학- 그것을 딱히 한마디로 찍어 말하긴 어렵습니다만, 제 소견으론 영화가 문자가 아닌 화면으로 쓴 소설이나 서사시 같을 때 문학성이 있다고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단순히 흥미위주나 배우의 연기력, 자극적인 액션으로 관객의 눈을 홀려 사로잡는 영화가 많은데 저도 그런 영화를 보고나면 머릿속에 남는 것은 배우의 액션장면이나 기괴한 광경 같은 것뿐입니다. 물론 그런 영화도 정서적 휴식을 위해 필요하겠지만 이왕 만드는 바엔 문학성도 가미해 만들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영화를 제작하는 구조랄지, 거기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시나리오를 대개 감독이 쓰더라구요. 감독은 엄연한 의미에서 감독일 뿐이지 작가라고 말하기 어렵죠. 물론 감독 들 중에 작가적 기량을 가진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상업성에 대한 요령으로 훈련된 머리로 대본을 쓸 것입니다. 그들은 문학성보다 상업성이 첫째니까요. 그래야 돈이 되는 자본주의 영화구조상 쉽게 극복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MC: 한국영화가 많이 서구화 됐다는 비평도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도명학: 저는 거기까진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글쎄요. 영화가 서양에서 먼저 생기고 발전한 장르니까 어느 나라 영화든 다 서구화되지 않았을까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요. 북한에서도 북한영화가 소련영화를 모방했다는 얘기를 종종 듣곤 했습니다. 어떤 경우엔 문학예술 대내 잡지에 이미 상영되고 김정일의 호평까지 받은 작품까지도 소련영화를 모방한 장면이 있다는 비평이 실릴 정도였습니다. 제가 보기엔 아직 한국영화를 많이 서구화됐다고 하는 말은 좀 지나친 것 같습니다. 영화라는 게 원래 서구에서 나온 건데요. 물론 내용면에서 키스신, 베드신 같은 것이 문제로 제기되는지 모르겠지만, 그 외엔 한국적인 것이 더 많다고 생각됩니다.

MC: 앞서 TV문학관 이야기도 했습니다만. 문학작품을 영화로 다시 제작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도명학 선생님께서 만약 이러한 작업을 하신다면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두고 영화를 제작하시겠습니까?

도명학- 좋은 질문 같습니다. 제가 만약 문학작품을 영화로 만든다면 중점을 원작의 문학성을 화면의 힘을 빌어 더 높이도록 하는데 두겠습니다. 문자로 읽어도 감동이 밀려오고 재미있는 문학작품을 화면으로 읽게 될 때 그 전달력이 더 위력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다만 화면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라고 보아집니다. 자칫하면 화면의 위력에 문학성이 가려질 수도 있죠. 때문에 정말 지혜로운 작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게 쉽지는 않겠지만요.

MC: 만일 북한의 문학가들이 한국으로 와 영화감독이나 제작자가 된다면 어떤 영화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도명학- 아마 문학성을 첫째로 놓게 될 것입니다. 북한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시나리오로 취급합니다. 감독은 시나리오작가 다음 순위입니다. 시나리오가 나오고 나서 제작과정은 군대로 말하면 감독이 총사령관이지만 시나리오작가는 정치위원입니다. 정치위원 동의 없이는 아무리 총사령관이라도 마음대로 할 수 없듯 북한 감독들은 시나리오작가의 동의 없이 대본을 변경하지 못합니다. 시나리오작가 역시 자신의 작품이 자신의 의도대로 제대로 영화화 되는지 개입합니다. 이러한 사회주의 영화구조에 익숙한 북한 작가가 남한에 와서 감독이나 제작자가 된다면 당연히 그 타성 때문에라도 영화를 문학성 있게 만들려 할 것입니다.

MC: 재밌는 상상입니다만, 도명학 선생님께서 만일 극장 소유주가 되신다면 어떤 종류의, 또는 어떤 내용의 영화를 상영하고 싶으신가요?

도명학: 그럴 일은 없겠지만요. 만약 된다면 저는 문학성 있고, 의미 있는 사회적 문제가 녹아있는 영화들을 상영하는 데 중점을 두겠습니다. 물론 극장 소유주가 되면 돈도 벌어야 하니 상업성 높은 영화도 상영하겠지만 거기에 중점을 두고 싶진 않습니다. 이윤은 좀 적더라도 사회발전에 이바지하는 교양극장이라는 평가를 듣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MC; 네, 오늘 남북문학기행은 여기까지입니다. 저희는 다음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도명학 선생님 고맙습니다.

도명학: 네, 감사합니다.

MC: 지금까지 진행에 홍알벗이었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기자 홍알벗,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