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입니다. 진행에 홍알벗입니다. 오늘도 탈북 소설가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한국의 문학작품을 살펴 보겠습니다. 도명학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네, 오늘도 한국의 문학작품 하나를 살펴볼 텐데요. 오늘은 어떤 것을 소개해 주실 건가요?
도명학: 네, 오늘은 소설가 이문열님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갖고 나왔습니다.
MC: 먼저 이 소설의 작가에 대해서 알아 볼까요?. 이문열 작가는 대한민국의 소설가로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새하곡>이 당선돼 등단했습니다. 무엇보다 이문열은 등단 이후 능란하고 교양적인 문체와 다양한 작품세계를 지닌 소설들을 발표해 명실상부 198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북한에 계실 때 이문열 작가에 대해 알고 계셨나요?
도명학: 아니,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남한작가와의 접촉은 고사하고 한국문단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조차 몰랐으니까요.
MC: 남한에 오셔서 이문열 작가를 직접 만나, 개인적인 인연 또는 친분이 있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문열 작가를 어떻게 만나셨는지, 그리고 만나보니 어떤 분이시고 또 첫인상은 어땠는지 좀 말씀해 주시죠.
도명학: 제가 처음 이문열 작가를 봤을 때가 2012년 경상북도 경주에서 개최된 국제펜클럽 제79차대회에서였습니다. 그 대회에서 탈북작가들로 조직된 망명북한펜센터가 공식 가입승인 됐는데 그때 있었던 세미나에서 제가 토론을 하게 됐고, 이문열 작가도 함께 했었습니다. 그 후 이문열 작가가 동리목월상을 수상하는 행사에 참가해 다시 뵙게 됐고, 때마침 제가 한국소설가협회에 가입되면서 같은 회원인 이문열 작가를 만날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그러다가 이문열작가가 직접 운영하는 경기도 이천시에 소재한 '부악문원'에 입소하여 숙식을 보장받으며 작품을 쓸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곳에 입소하려는 작가들이 전국적으로 많기 때문에 선정되기가 쉽지 않지만 이문열 작가의 특별히 받아준 거죠. 기기서 6개월을 함께 지냈습니다. '부악문원' 안에 이문열 작가의 집도 있는데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리며 커피도 함께 마시고 술도 한잔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문열 작가는 성품이 정말 소탈하신 분입니다. 대가임에도 잘난 척을 하는 법 없고, 격식을 차리지도 않고 사람을 편안하게 대해줍니다. 그리고 굉장히 박식합니다. 동서고금의 문학은 물론 역사, 철학 같은 것에도 조예가 상당히 깊으시더군요. 또 정치에도 관심이 높아 보수 성향 작가로도 불리는데, 제가 보기엔 보수적이라기보다 훨씬 진취적인 분입니다. 일명 친북좌파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그분의 대북관, 통일관이 마음에 들지 않고 좌파정권에 협조적이지 않은 것에 불만을 품고 당치도 않은 보수꼴통 프레임을 씌웠다고 생각됩니다.
MC: 작품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줄거리부터 간단하게 소개해 주시죠.
도명학: 네. 이 작품은 과거를 회상하는 식으로 쓰여진 소설입니다. 등장인물 한병태는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이었던 최선생의 부고를 듣게 됩니다. 그런데 장례식에 학급장을 했던 엄석대도 참가할 거라는 얘기를 듣자 그에 대한 궁금증이 솟구쳐 서둘러 장례식장으로 가면서 과거를 회상합니다. 회상에서 초등학교 5학년생인 한병태는 서울의 명문초등학교를 떠나 시골의 작은 학교로 전학옵니다. 전학 온 첫날 한병태는 학교의 초라한 모습에 실망하고 선생님의 무심함에 야속함을 느낍니다. 학급장 엄석대는 병태보다 나이도 두 살이나 더 많고 공부도 전교에서 일등입니다. 아이들은 담임 선생님보다 석대가 더 힘과 권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엄석대도 선생님처럼 아이들을 다스립니다. 선생님 역시 엄석대를 특별하게 대합니다.
그러나 한병태는 엄석대가 교묘하게 아이들을 괴롭히는 장면들을 포착하고 저항합니다. 한 친구가 자기 아버지 라이터를 학교에 가져온 것을 강제로 빼앗은 일을 선생님에게 일러바치기도 하는데, 그걸 알아챈 엄석태가 미리 라이터를 돌려주는 바람에 거꾸로 일러바치기 습성이 있는 아이로 오해받습니다. 또 선생님에게 학급 전체가 엄석대 행위에 대한 무기명 고발장을 쓰게 하자고 제안하였으나 아이들은 한병태의 잘못만 일러바치지 엄석대의 잘못은 아무도 적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한병태에게 싸움을 걸어오고, 사소한 규칙 위반에도 벌을 받습니다. 그러다보니 학교 생활이 엉망이 되고 성적도 떨어집니다. 한병태의 석대에 대한 도전은 번번이 수포로 돌아갈 뿐만 아니라 처절한 보복이 이뤄집니다.
가혹한 보복에 지친 한병태는 결국 석대에게 항복하고 싶어집니다. 한번은 유리창 청소를 맡았는데 깨끗하게 닦았는데도 석대는 합격시켜 주지 않습니다. 병태는 저항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유리창 청소를 했지만 석대가 검사하러 조차 오지 않자 엉엉 흐느껴 웁니다. 이것을 본 석대는 자신의 승리를 확인했고 병태는 굴종의 의지를 드러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석대는 병태를 너그럽게 받아주고 보호하여 자신의 편으로 만듭니다. 그리하여 한병태는 다시 모범생이 되었고 성적도 오릅니다. 그런데 이 체제 안에서 한병태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엄석대가 전교 일등을 한 이유는 반 아이들 여러 명이 과목별로 맡아 시험지에 자기 이름 대신 엄석대 이름을 쓴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엄석대는 스스로 공부해 오는 과목이 두 과목이고 다른 과목은 돌아가며 아이들에게 맡기곤 했던 것입니다. 한병태도 그림을 잘 그리는데, 석대에게 그림을 한장 더 그려줍니다. 병태는 이런 사실을 선생님께 일러바칠까 하다가 오히려 다른 아이들의 발목을 석대가 잡아줘야 자신이 2등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침묵합니다. 점차 한병태는 엄석태 권력체제 안에서 달콤함을 느끼고 저항할 의지를 잃어버립니다.
하지만 6학년에 올라가면서 담임 선생님이 바뀌고 석대의 운명도 바뀝니다. 새 담임선생님은 학급장 선거 결과와 엄석대의 시험성적을 의심하여 엄석대의 비리를 파헤칩니다. 결국 엄석대가 시험지를 반 아이들과 바꾼 사실을 밝혀내고 반 아이들에게 엄석대의 비밀을 낱낱이 말하도록 합니다. 선생님은 자기 몫을 빼앗기고도 분한 줄 모르고 불의에 굴복했다며 아이들을 때립니다. 그러나 엄석대 권력의 수혜자로 변신한 한병태 입장은 엄석대를 고발하는 반 아이들의 태도에 심한 반발감을 느끼며 엄석대의 비행에 대해 전학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잘 모른다며 입을 다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엄석대는 학교를 떠나고 학급은 민주적인 학급으로 바뀌어갑니다. 그리고 10년 뒤, 한병태는 우연히 형사에게 붙잡힌 엄석대의 초라하고 무력한 모습을 보게 되는, 줄거리가 대략 이렇습니다. <액트: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92, 박종원 감독) 유투브채널 ‘한국고전영화’에서 발췌>
MC: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어떤 느낌이셨나요?
도명학: 저의 어렸을 때 사연과 너무 흡사해 공감되는 바가 컸습니다. 제가 소설 속의 병태와 비슷했거든요. 공부에서 전교 1등은 무조건 내 것인 줄 알았고 부모님도 전학 간 학교에 제 아들 자랑을 엄청했었죠. 하지만 병태처럼 학교생활도 엉망이 되고 성적도 떨어지고 매일 같이 싸움을 걸어오는 학급 아이들에게 시달려야 했습니다. 당연히 학급에 엄석대와 같은 절대권력자도 있었고, 그에게 보복도 당하고 시기질투도 당하고 고생했습니다. 다만 제가 엄석대와 다른 것이 있다면 끝까지 부당한 체제에 굴복하지 않았고 오히려 학급장보다 훨씬 더 높은 소년단간부가 된 점이죠. 하지만 그것도 따지고 보면 소년단지도원이란 막강한 파워를 가진 선생님에게 잘 보였기에 가능했던 거라고 보면 저 역시 한병태처럼 권력에 붙어먹는 재미를 봤죠.
MC: 학급에서 왕노릇을 하는 석대를 보고 있으면 마치 북한의 김씨 일가가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요?
도명학: 당연합니다. 김씨일가가 북한간부들을 다루고 길들이는 방법이 엄석대와 정말 유사합니다.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강하게 치고 굴종하면 화끈하게 끌어안아 베풀고 신임해서 노복으로 만드는 거죠. 이게 웃기는 게 저도 바른 소리 하다가 여러 번 혼나고 나중엔 죽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는데, 누가 조언해주더군요. 조선속담에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랬다고, 주면 미운놈이 고운 놈으로 변한다고요. 하도 권고하기에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지만 시험 삼아 억지로 해봤는데 정말로 밉던 놈이 이뻐지는 거예요. 나한테 잘해주니까. 나중엔 그놈이 구세주처럼 마음의 기둥이 되는 느낌마저 들더군요. 아 이래서 속담 그른데 없다고 했구나 했죠.
MC: 도시에서 전학 온 병태도 결국 석대 앞에 무릎을 꿇게 되는데 이건 또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도명학: 이자 얘기한대로 병태의 경우나 저의 경우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권력에 저항해 뒤집어 엎지 못할 바엔 차라리 그 밑에 무릎 꿇고 들어가 충성하면 이득이 되는 걸 느끼니까요. 물론 양심을 속이는 짓이지만요. 그렇기에 작품에서도 한병태가 엄석대의 측근이 되어서도 내적 갈등을 겪는 모습을 보이는 거구요. 어쩌면 북한 간부들이 한병태처럼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MC: 석대가 병태를 비롯해 반 아이들에게 했던 행동(억압과 회유)들을 보면 마치 북한의 지도자가 자신의 세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취한 것과 비슷해 보이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보셨나요?
도명학: 맞습니다. 신통히도 같습니다. 북한체제가 엄석대 학급장 체제와 다를 바 없습니다. 학급장 선거 할 때도 본능적으로 엄석대를 지지하는 아이들이 북한주민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선거는 늘 100프로 찬성투표로 나오죠. 속으론 불만이 있어도 찬성투표하죠. 누구나 나 하나 반대한다고 무슨 효과 있나, 그래봤댔자 계란으로 바위치기지 괜히 역적이 될 일 있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죠. 선거 자체가 강제긴 하지만 자유를 준다고 해도 병태네 학급 아이들처럼 김정은에게 표를 줄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에 병태네 학급처럼 강력한 새 담임선생님이 출현해 환경을 만들어준다면 속에 품었던 불만이 폭발하겠죠. 그게 혁명이 아니겠습니까. 북한에서의 혁명은 외부로부터의 강력한 영향이 필요합니다. 감옥문은 안에서 열수 없는 구조 아닙니까. 밖에 자물쇠가 있으니 밖에서 열어줘야죠.
MC: 병태는 석대의 부정행위를 알고 선생님께 말씀드리려다가 포기하고 마는데요. 여기서 병태의 모습은 마치 현재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북한 주민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도명학: 괜히 고발했다간 오히려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공포가 내심에 깊이 자리잡았기 때문이겠죠. 북한에서 신고는 자칫하면 부메랑이 되어 나한테 돌아오는 수가 많습니다. 그냥 나는 모릅니다, 하는 게 안전하다고 생각하죠.
MC: 석대의 잘못을 가리고 처벌하는 자리에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병태는 선생님께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도명학: 한마디로 세뇌된 의리라고 봐야죠. 일단 권력자의 덕을 봤으니까요. 북한주민들보다는 간부들이 그렇다고 봅니다. 주민들이야 새 담임선생님이 출연하면 아 드디어 때가 왔구나 하고 폭발할 입장이죠.
MC: 석태와 병태, 그리고 나머지 학생들을 통해 작가는 무엇을 말하려 했던 걸까요?
도명학: 권력의 속성에 대해, 또 그 권력에 굴복하는 것을 오히려 편하게 생각하는 민중은 민주주의를 형식상 던져줘도 후과가 두려워 굳어진 습관에 따르길 택한다는 것을 이야기 하려는 것 같습니다.
MC: 독자들은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을 스탈린 정권에 빗대곤 합니다. 공산주의 독재 상황을 비판한 것이었는데요. 이문열 작가의 '우리의 일그러진 영웅'도 북한의 현실과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느 부분이 가장 많이 닮아 있나요?
도명학: 그 일그러진 영웅이 김정은이 아닐까요? 또 김정은의 측근들이 한병태와 같구요. 이런 의미에서 이 소설이 북한주민들에게 전달되면 큰 공감대를 이룰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도 있던데 북한에 들여보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MC: 오늘 남북문학기행 순서는 여기까지입니다. 도명학 선생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MC: 저희는 다음 주에 찾아 뵙겠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기자: 홍알벗,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