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입니다. 진행에 홍알벗입니다. 오늘도 탈북 소설가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한국의 문학 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이번 주에 소개해 주실 남한의 문학 작품은 어떤 건가요?
도명학: 오늘은 김동리 작가의 소설 "흥남철수"를 준비했습니다.
MC: 김동리 선생이라고 하면 남한에서 굉장히 유명한 작가인데, 소개 좀 해 주시죠?
도명학: 네, 김동리 작가는 1995년에 작고하셨기 때문에 2006년에 탈북해 남한에 정착한 저로서는 만나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워낙 명성이 높은 분이어선지 폐쇄된 북한 문단이지만 남조선에선 김동리란 작가가 유명하다더라는 정도로 알고 있는 문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선지 저도 김동리 작가가 궁금했는데 제가 남한에 오니 이미 돌아가신 지 10년 넘었더군요. 그러다 제가 한국소설가협회에 가입한 후 경상북도 경주에서 열린 "동리목월문학상" 수상식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전번 회들에서 소개해 드린 이문열작가, 이정작가와 함께 갔고, 그날 이문열작가가 '동리목월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날을 기회로 김동리 작가와 박목월시인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MC: 그러니까, 선생님께서도 북한에 계실 때부터 김동리 작가를 알고 계셨군요.
도명학: 네, 김동리 작가를 소개한다면 경상북도 경주에서 출생하셨고, 경주제일교회 부설학교를 거쳐 대구 계성중학에서 2년간 수학한 뒤, 1929년 서울 경신중학교를 4학년에 중퇴하여 문학수련에 전념하였습니다. 이때 박목월·김달진·서정주 시인들과 인연을 맺고 1934년 시 《백로》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함으로써 등단하였습니다. 이후 몇 편의 시를 발표하다가 소설로 전향하면서 193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화랑의 후예》,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산화(山火)》가 당선되면서 소설가로서의 위치를 다졌습니다. 1947년에는 청년문학가협회장, 1951년 동협회부회장, 1954년 예술원 회원, 1955년 서라벌예술대학 교수, 1969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1972년 중앙대학 예술대학장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이어 1973년 중앙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1981년 4월 예술원 회장에 선임되었습니다.
MC: 경력이 아주 화려하군요. 그만큼 또 열심히 활동을 했었다는 거겠죠. 그럼 김동리 작가는 어떤 문학사상을 갖고 있었나요?
도명학: 김동리 작가는 순수문학과 신인간주의 문학사상으로 일관해 온 작가이고 8 ·15광복 직후 민족주의문학 진영에 가담하여 김동석 ·김병규와의 순수문학논쟁을 벌이는 등 좌익문단에 맞서 우익측의 민족문학론을 옹호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이때 발표한 평론으로, 《순수문학의 진의》《순수문학과 제3세계관》 《민족문학론》 등이 있습니다. 작품활동 초기에는, 한국 고유의 토속성과 외래사상과의 대립 등을 신비적이고 허무하면서도 몽환적인 세계를 통하여 인간성의 문제를 그렸고, 그 이후에는 그의 문학적 논리를 작품에 반영하여 작품세계의 깊이를 더했습니다. 6·25전쟁 이후에는 인간과 이념과의 갈등을 조명하는 데 중점을 두기도 하였습니다. 저서로는 오늘 소개하려는 소설 "흥남철수" 외 소설집으로 《무녀도) 《역마》 《황토기》 《귀환장정》 《실존무》 《사반의 십자가》, 평론집으로 《문학과 인간》, 시집으로 《바위》, 수필집으로 《자연과 인생》 등이 있고, 예술원상 및 3 ·1문화상 등을 받았습니다.
MC: 그렇다면 ‘흥남철수’ 이 작품의 줄거리는 어떻게 되나요?
도명학: 네, 소설은 북진하던 유엔군이 중공군의 대거 침입으로 철수하기 시작한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소설에서 주인공 박철을 비롯한 세 사람은 얼어붙은 두만강까지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계속 북으로 올라가던 중 계획을 취소하고 유엔군이 후퇴한다는 소식에 흥남으로 돌아갑니다. 그들은 <사회 단체 연합회>에서 파견되어 수복 지구의 동포들에 대한 계몽, 선전, 그리고 위안 임무를 맡았습니다.
MC: 임무가 완전히 바뀐거네요.
도명학: 그래서 흥남에서 정훈 책임을 맡고 있는 강 대위의 부탁으로 흥남 사람들에게 신뢰감과 희망을 가지도록 '위안의 밤'을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이 '위안의 밤'이 시작되던 날에 정인수라는 사람의 소개로 알게 된, 윤시정이라는 소녀의 '봉선화' 독창은 모든 사람을 감동시켰습니다. 이를 계기로 일행 셋은 윤시정의 집으로 거처를 옳기게 됩니다. 거기에는 윤시정이 아버지 윤 노인과 언니 수정과 함께 세 식구가 살고 있었는데, 언니 수정이는 병을 앓고 있어 방문 밖 출입을 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MC: 그런데 수정한테 무슨 일이 생기나요?
도명학: 어느 날 술에 만취한 박철은 새벽녘에 수정을 안고 자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한밤중에 들이닥친 일곱 사람의 손님에게 방을 내준 박철 일행이 주인 식구와 잠자리를 같이 한 탓이었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수정을 본 박철은 그녀가 앓는 병이 무슨 병인지 알지 못한 채 그곳을 떠나게 됩니다.
MC: 그나저나, 빨리 피난을 가야 할 텐데 말이죠.
도명학: 십이월 초이튿날, 흥남으로 돌아온 박철과 그 일행은 동북 전선에서 유엔군이 철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강 대위에게 그들 세 사람이 서울로 갈 수 있도록 원산까지의 차편을 부탁한 뒤, 다시 윤 노인의 집으로 돌아옵니다. 박철은 취중에 "시정이를 서울로 데려 가겠다."고 했던 말에는 상관없이 정훈대에서 차편을 기다리는데. 사흘이 지난 후에 차가 도착하여 그들 셋은 표를 얻어 차를 타려 했으나 정인수가 남게 되었습니다. 박철은 정인수 뒤에 서 있는 정인수의 어머니와 부인, 딸을 보며 자기 표를 양보하고 다시 윤 노인의 집으로 가게 됩니다. 거기서 박철을 따라 서울로 가려 했던 시정을 다시 만나게 되고 박철은 그들에게 피난갈 수 있으리라 확언하며 위로합니다. 그러던 중 수정이의 병이 발작 증세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후, 열흘이 지나서 함흥과 흥남은 동북 전선 후퇴의 결정적인 전략 거점이 됩니다. 본격적인 피난이 시작되고 박철은 강 대위의 도움으로 시정이와 수정이를 군인 가족으로 등록시켜 20일 수송선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연락이 없던 윤 노인은 일반에다 추가 등록을 하였으나 그냥 타려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부둣가로 걸어가던 중, 수정이가 발작을 일으키게 되자 박철은 그녀를 부축해 가고, 이어 쌀자루와 옷 보퉁이를 들고 힘들게 걸어가던 윤 노인이 그만 바다에 빠져 버렸고 그것을 본 시정이가 아버지를 부르며 부두로 달려가는 사이에 피난선이 출발해 버리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됩니다.
MC: 이게 단편소설이라니 믿겨지지가 않을 정도로 굉장히 많은 일들이 작품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데요. 이 작품 에서 가장 재밌는 부분은 어디였나요?
도명학: 글쎄요. 순수 재미로만 느껴진 부분은 발작 증세를 앓고 있는 윤시정이를 둘러싼 박철 등 주변인물들 행동이고, 극적인 느낌을 받은 건 철수하는 수송선을 타기 위해 고심하고 노력하는 장면들입니다. 특히 마지막에 윤노인이 끝내 배를 타지 못하고 바다에 빠지고 시정이가 아버지를 부르며 달려가는 장면은 너무 안타깝고 마음 아팠습니다.
MC: 이 작품 속에서, 북한 주민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 책을 북한주민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뭔가요?
도명학: 아마 저와 비슷한 장면들에서 재미와 극적인 느낌을 받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또 소설에는 흥남철수 당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요소들이 많은데, 사실 북한사람들은 흥남철수하면 미국의 원자탄 공갈에 겁먹은 비겁분자, 동요분자들이 공화국과 인민군대를 믿지 못하고 월남도주한 사건이라는 정도로 인식하고 있지, 당시 상황에 대해 사실보다 왜곡된 상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것입니다. 흥남에서 미국군함을 타고 월남한 사람들이 결코 반동분자가 아니라 실은 이념이고 뭐고 알지 못하고 살아남기 위한 피난민들일뿐이라는 인식으로 바뀌리라 봅니다. 저도 북에 있을 때 유엔군 흥남철수 때 따라간 월남자들을 사상이 나쁘거나 얼치기들로 생각했지 피난민이라곤 생각지 못했습니다. 상식적으로 북한에 살던 공화국 공민들이 인민군대가 재진격하면 해방시켜줬다고 환영해야 옳지 왜 피난을 가야 합니까. 반동분자들이고 국군과 유엔군이 북에 오니까 좋아서 협조하고는 다 망할 줄 알았던 인민군대가 다시 재진격해 오니 지은 죄가 있어 처벌을 피해 도망간 것으로 생각했죠.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잖아요. 북한 주민들에게 이 작품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MC: 이 책이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뭘까요?
도명학: 흥남철수를 배경으로 6.25전쟁 당시 민초들이 겪어야 했던 수난이 얼마나 가혹한 것이었는지, 또 전쟁이라는 회오리바람 속에서도 끊기지 않고 이어가는 가족애, 윤리 등 인간성의 처절한 몸부림이랄까, 아마 그런 것을 보여주려 한 것 같습니다.
MC: 좋은 문학작품과 나쁜 문학작품을 구분하는데 있어 남한과 북한의 기준이 다를 것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도명학: 다르죠. 예컨대 이 소설 같은 경우 북한 기준에서 보면 염세주의, 염전 사상이 농후한 작품이라 검열을 통과할 수 없겠죠. 그러나 남한에선 이 작품이 유명한 작품으로 남아있지 않습니까. 한마디로 북한에선 문학을 정치선전의 도구로 역할 할 수 있어야 좋은 작품이고 남한은 그것에 상관없이 사람들의 마음에 와닿고 재미와 감동이 있고 독자들의 공감대가 형성될만한 작품이면 좋은 작품으로 평가될 수 있는 토양입니다.
MC: 북한 주민, 북한 독자들이 좋아하는 문학작품의 종류는 무엇이고 어떤 내용을 왜 좋아하는지 설명 좀 해 주시죠.
도명학: 북한 독자들도 소설, 시. 희곡 다 좋아합니다. 남한 독자들과 다를 바 없죠. 물론 남이나 북이나 스토리가 있는 장르인 소설을 특히 좋아하고요. 내용 면에서도 같다고 봅니다. 예컨대 연애소설은 남북이 따로 없이 좋아하는 것이고, 다만 북한청소년들의 경우 남한청소년보다 전쟁작품을 좀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사회주의현실을 그린 작품은 너무 밍밍한 맛이고 현실을 지나치게 미화해서 별로 안 읽습니다. 물론 전쟁작품도 그렇긴 하지만 대신 스릴감이 있으니까 읽습니다.
MC: 마지막으로 오늘 소개해 주신 작품의 전체적인 평을 부탁드립니다.
도명학: 소설 '흥남철수'에서 김동리 작가는 박철이라는 주인공과 윤시정 그리고 발작증세를 앓는 윤수정이라는 두 자매와 그들의 아버지 윤 노인의 이야기를 통해서 한국 전쟁 당시 흥남 철수의 상황을 극적으로 잘 재현했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생동감을 자아내는 부분은, 등장인물들이 함흥지역 사투리를 아주 정확하게 구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함경도 출신이라서 더 향수를 느껴던 것 같습니다. 문학성도 높다고 생각됩니다. 어떤 독후감에 보면 흥남철수 상황에다 멜로드라마를 혼합한 느낌을 주는 것 때문에 문학성이 다소 떨어진다고 했던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전쟁도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이 있는 곳엔 어디나 사랑이 있는 법이죠. 흥남철수 때 남쪽으로 내려오는 수송선에서조차 아이를 출산한 여성이 있었을 정도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건 별문제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평론가마다 독자마다 생각은 다를 수 있죠. 아무튼 저는 이 작품이 발표된 지 아주 오래된 소설임에도 현재 쓰여지는 전쟁작품들 못지 않게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MC: 네, 오늘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한 남북문학기행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도명학: 네, 고맙습니다.
MC: 청취자 여러분, 오늘도 함께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끝>
기자: 홍알벗,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