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입니다. 진행에 홍알벗입니다. 오늘도 탈북 소설가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한국의 문학 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눕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이번 주에 소개해 주실 남한의 문학 작품은 어떤 건가요?
도명학: 네, 그동안 소설을 주로 소개해 드렸는데, 오늘은 시를 여러분과 함께 읽어볼까 합니다. 작가는 박종규 시인이고, 시의 제목은 '나는 압록강이로소이다'입니다.
MC: 먼저 시인이 어떤 분인지 말씀해 주시죠.
도명학: 네 박종규 작가는 본인을 시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소설가이고 수필가이신데 시를 쓴 거죠. 그런데 제가 보기엔 시인이라고 불러도 손색 없을 만큼 시를 아주 감명깊게 잘 썼습니다. 박종규 작가에 대해 제가 상세한 부분까진 모르지만 그분을 몇번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속해 있는 통일문학포럼이라는 문인단체가 있는데 박종규 작가도 회원입니다. 규모가 크지 않아 많이 알려진 편은 아니지만 통일문학에 관심을 가진 문인들이 꽤 많이 가입해 있고 저는 이사들 중 한명입니다. 그렇다보니 단체 모임이나 행사, 뒤풀이로 한잔 나누며 문학얘기를 나누는 장소에서 박종규 작가를 만나곤 했죠. 그런데 이 통일문학포럼에서 코로나 이전까지 해마다 중국에 직접 가서 압록강 두만강을 따라 여행하며 북한을 들여다보는 프로젝트를 했었습니다. 저는 일정 상 시간을 낼 수 없어 한번도 참여하진 못했는데 박종규 작가는 참여했더군요. 시 "나는 압록강이로소이다"가 그래서 창작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박종규 작가는 압록강 두만강 건너에 사는 북한 동포의 삶을 아픈 마음으로 목도하면서 시적 충동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한편 박종규 작가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기도 한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나왔습니다. 문학작품은 14살 때 원고지 2,000매 분량의 ‘묻혔던 소년들’이라는 글을 썼는데 그것이 소설가로서의 꿈을 잉태한 글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생계가 어려웠고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등본격적인 작가의 길은 시간이 많이 흐른 뒤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14살 때 썼던 “묻혔던 소년들”이라는 글을 32년 후에 다시 다음어 “주앙마잘”이라는 제목으로 첫 장편소설을출간했다고 합니다. 그 후 활발하게 문인활동을 하면서 수필 ‘거리두기’로 영호남수필문학상 대상을 수상했고, 소설집 ‘그날’로 경기도문학상 등 다양한 상도 받으셨습니다.
MC: 그럼 시를 먼저 읽어 볼까요? 인터넷 동영상 공유 웹사이트인 '유투브'에 올라온, 시인 본인이 낭독한 작품 '나는 압록강이로소이다'를 들어 보시겠습니다.
<액트>
제목: 나는 압록, 강이로소이다. (박종규)
낮은 곳으로 낮은곳으로, 나는 흐른다
해거름 수평선에 까치놀 지도록 흐르는, 흐름은 내 숙명이다
흐르는 것에는 궤적이 있다
역사는 흐르는 시간의 궤적이나 내게는 궤적이 없다
나는 모든 것을 품어 흘러보내뿐
오래전 나는 백두 서남쪽 기슭에서 태어나 온갖 생물을 품으며 나를 정화해왔다.
오로지 하나, 수평을 이루어내달리는 나는 천길 물떠러지도 겁내지 않았다
수평은 모자람을 채움이다
슬픔을 기쁨으로 풍요와 부족함의 높낮이를 고루 맟추는 것이다.
수평은 내 존재 이유다
다툼은 오히려 인간들에게서 왔다
늘 그들 다툼의 계선에 선 나는 한반도, 중국, 만주의 전략적 요충지였고
러일전쟁, 한국전쟁때는 수많은 병사의 추깃물로 넘쳐났다.
하늘이 노기를 품어 천둥버개로 나를 키우고,
나로 하여금 진노의 물동이를 쏟게 하나
이 또한 수평을 이루기 위함이 아니더냐
그런데...
벌거숭이 산 뙈기밭 언저리에서 내 거센 흐름마저 거슬러 올라
가슴 에이게 하는 이 소린 또 무언가?
통곡 통곡 통곡.... 그리고 웃음소리....
내 언제부터 풍요와 빈곤을 갈라 흘렀나
반세기를 늦추어 살아가는 원시사람들!
그들 뿌리는 눈물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알고 있다
물울타리 건너편 불빛 찬란한데
캄캄한 밤 불 밝히지 않는 저쪽 어둠의 촌락들
저녁이 되어도 굴뚝에 연기가 없는 파란 하늘 아래 재빛마을 사람들
끝없는 굶주림과 노역 아이들의 잃어버린 표정도
일족의 안위를 담보로 삶이 억류당하는 아! 어이할꺼나 이 희대의 비극을!
사람들이 굶어죽어 나간다
건너편에는 하얀 쌀밥에 고기가 있어 굶어죽느니 목숨걸고
나를 건너고 또 건넌다
그래 차라리 내 배를 밟고 건너라!
탕탕탕!
오 비명도 못 지르고 가라앉는 그들 붉은 상처로 내 가슴에 안겨든다
그들이 생사를 묻고, 묻는다
그래, 나는 어쩌란 말인가, 내가 어쩌란 말이냐
나는 안다 물살에 섞여드는 이 소리도
내 흐름을 거슬리지 못하고 유유히 흘러가 결국은 숨은 여로 수장되고 말 것임을!
이제까지는 없었던 시간이 내게 머물고 있다
비로소 나도 하나의 궤적을 가지는 것이다
흐르는 것을 거스르지 마라
흐르는 것은 흐르게 하라
먼 훗날 이 모든 아픔 하늘바라기 되더라도 깊은 궤적, 수평으로 메울 수 있으리니.
MC: 그렇다면, 이 시의 주제는 뭘까요? 작가는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건가요?
도명학: 이 시는 압록강의 의인화해 시인의 마음을 토로하는 방법으로 쓰여졌는데 주제는 북한동포의 아픈 삶에 대한 동정과 함께 그들을 구원해야 한다는 절박함과 양심의 호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MC: 선생님께서 느끼시기에 가장 감동을 주는 부분은 어디이고, 또 왜 그런가요?
도명학: 강 하나를 두고 중국과 대비되는 북한의 고통스런 모습을 토로하는 부분입니다. 특별히 제가 살던 곳이 압록강 기슭이어서 늘 강 건너 중국을 바라보며 느꼈던 감정이 그랬었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MC: 시에서, 압록강을 시적으로 가장 잘 묘사한 부분은 어디이고,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도명학: 시의 마지막 부분이 특별히 깊은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이제까지는 없었던 시간이 내게 머물고 있다
비로소 나도 하나의 궤적을 가지는 것이다
흐르는 것을 거스르지 마라
흐르는 것은 흐르게 하라
먼 훗날 이 모든 아픔
하늘바라기 되더라도
깊은 궤적, 수평으로 메울 수 있으리니.
이 구절에서 저는 북한동포의 고통에 무덤덤한 한국국민들, 특히 젊은이들을 생각했습니다. 자유와 풍요가 저절로 원래부터 저절로 있던 것인양 거기에 취해 그것이 얼마나 값비싼 대가로 이루어졌는지를 이야기하면 그냥 옛이야기 정도로 받아들이고 북한동포의 고통을 의식하지 않고 지내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만 다수를 이루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박종규 작가 자신도 나도 그렇게 살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하고 자책한 듯 합니다. 또 북한동포의 삶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인생을 삶의 궤적으로 정한다는 선언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 이제까지는 없었던 시간이 내게 머물고 있다. 비로소 나도 하나의 궤적을 가지는 것이다. 흐르는 것을 거스르지 마라. 흐르는 것은 흐르게 하라”라고 토로했을 것입니다.
MC: 압록강은 탈북하신 분들께는 남다른 곳으로 다가올 것 같은데요. 어떻습니까?
도명학: 그렇습니다. 저 역시 압록강을 건너왔으니까요. 압록강 두만강 다 그렇죠. 인터넷에서 압록강 두만강 건너 북한 모습을 볼 때면 고향에 대한 가지가지 추억이 떠오르고 그리운 고향사람들 보고 싶은 생각이 더 납니다. 특히 제가 살던 곳은 북중국경에서 북한일상을 가장 잘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어서 인터넷 상에 나오는 사진과 동영상의 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압록강은 탈북민들에게 있어 삶과 죽음의 계선이기도 하며 희망을 그려보는 창구이기도 합니다.
MC: '나는 압록강이로소이다'를 북한 문학가의 시점에서 본다면 무엇이 가장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도명학: 남한 시는 북한 시에 비해 많이 짧습니다. 긴 시도 있지만 많지 않습니다. '나는 압록강이로소이다'는 보기 드물게 긴 시입니다. 하지만 지루하지 않고 수다스러운 느낌이 전혀 들지 않고 감동에 감동을 더해 줍니다. 시적표현도 직설적이지 않고 상징과 비유를 적절하게 하고 함축과 비약도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하고 있어 난해하게 쓰여진 시들에 비하면 훨씬 훌륭한 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시를 북한 문인들이 보면 아주 멋진 시라고 평가할 것 같습니다. 남한 시인들은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시는 이렇게 쓰여져야 민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지 같은 시인들끼리도알아보기 힘든 시는 엄연한 의미에서 시가 아니라 퀴즈나 넌센스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 시를 왜 쓰며 거기에 왜 상을 줘야 하는지 아마 저는 죽을 때까지 그걸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MC: 이 시를 선택하신 이유를 좀 설명해 주시죠.
도명학: 탈북민의 심정을 잘 대변해주는 시였고, 북한사람들에게도 공감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또 한가지 이유는 이 시를 탈북작가가 쓴 시가 아니라 남한작가가 쓴 시라는 점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남한작가가 북한동포를 생각하며 쓴 시들 중 이 시만큼 마음에 와닿게 쓴 시를 보지 못했습니다.
MC: 전체적인 느낌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도명학: 시가 좀 길지만 전부 외우고 싶은 느낌입니다. 외웠다가 사람들에게 읊어줄 기회가 생길 때마다 들려주고 싶습니다. 그만큼 진한 감동이 녹아있고 마음속에 압록강 물소리가 들려오는 시입니다. 이렇게 좋은 시를지으신 박종규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MC: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오늘 순서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선생님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명학: 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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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북한관련 서적을 소개해 드리는 순서입니다. 오늘은 남한에서 출간되는 북한인권관련 책입니다.
17일 남한에서 한국어판으로 출간되는 책은 로버트 킹 전 미국 북한인권 특별대사가 쓴 회고록으로 제목은 '북한인권과 불처벌의 관행'입니다.
로버트 킹은 2009년부터 2017년까지 미 국무부 북한인권 특별대사로 근무했습니다. 현재 국제전략연구소 선임고문, 한미경제연구소 비상근 연구위원, 북한인권위원회 이사로 일하고 있는데요. 킹 대사는 25년간 미 의회에서 일했으며톰 랜토스 캘리포니아 하원의원 비서실장과 하원 외교위원회 실무국장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인권과 불처벌의 관행’은 2009년 11월부터 2017년 1월까지 오바마 행정부에서 8년간 북한인권 특별대사를 지낸 로버트 킹의 외교적 경험과 통찰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회고록이라고 교보문고는 자체 홈페이지를 통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로버트 킹 전 대사는, 북한인권이 대북관계에 핵심적 화두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계산에 따라 의도적으로 묵인되거나 지나치게 정쟁화되어 온 현실을 되짚으면서 북한인권의 실질적 증진을 위한 아낌없는 조언을 제공합니다.
책의 내용을 간단하게 살펴 보면, 가장 먼저 북한인권법과 함께, 이어서 2011~2012년 인도적 식량지원 협상, 북한인권과 유엔의 역할, 자유로운 정보의 유입, 북한의 미국인 억류, 탈북민-북한 탈출과 재정착, 그리고 대북 인도적 지원 등을 주로 다룹니다.
이번에 책을 출간한 도서출판 한국과 미국은 다음과 같이 이 책에 대한 서평을 내놨습니다.
"한국어를 구사할 순 없어도 인권을 구사할 수 있는" 인물로 자신을 소개하는 로버트 R 킹 북한인권특사는 실무자의 입장에서 마주한 “충격적(appalling)”인 북한인권의 실태를 드러내며 국제사회의 북한인권에 대한 의식 고양을 촉구한다.
북한인권 문제는 북측 입장에서는 식량, 안보 및 기타 정치적 사안들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북한인권특사로서 북한 고위 관료들과 인권에 대해 논의하며 마주하는 도전 과제는 만만치 않다. 북한의 인권 유린에 대한 국제사회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데 결정적인 외교적 역할을 한 주체인 미국을 대표하는 킹 특사는 이와 더불어 북한인권 개선과 정치적 자유 증진을 위한 국제적 노력의 일환으로 미국, 유엔, 유럽연합, 기타 국가 간은 물론 북한인권을 다루는 비정부기구들과의 협의와 토론, 북한인권 보호 향상을 위한 전략 검토, 유엔인권위원회 결의안 2004/13 이행을 지원하는 행동계획을 발전시키는 등 북한인권 문제 해소를 위해 개입한 경험을 나누며 통찰을 제공한다.
북한인권 탄압 및 침해는 북한 주민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부가 저지르는 공개 처형, 고문, 강제 이전, 사상·표현·종교의 자유 침해, 차별, 성폭행, 강제 낙태 및 기타 성폭력, 노예화 뿐만 아니라 미국, 한국, 일본 등 국적을 가진 외국인 납치 및 강제 실종 등 반인도적 범죄가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심각한 인권침해가 지속될 수 있는 원인은 “정책, 제도, 불처벌 관행이 범죄의 핵심에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라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결론 내렸다.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의 ‘지난 6년간 북한인권이 더 악화됐다.’는 평 가운데 9월 4일 북한인권법 시행 6주년을 맞은 시점에서 로버트 R. 킹 특별대사의 통찰은 시의적절하다. 정부와 민간 모두 북한인권 상황의 심각성을 제고하여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침묵을 깨고 북한의 끔찍한 인권 상황 개선에 기여하며, 더 나아가 북한이 국제사회의 건강한 일원이 되기를 바란다."
청취자 여러분, 저희는 다음 주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기자: 홍알벗,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