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시간입니다. 이 시간 진행에 홍알벗입니다. 오늘도 탈북작가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남한의 문학작품을 읽고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오늘 소개해 주실 작품은 뭔가요?
도명학: 오늘은 한국에서 유명한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 이 시를 가지고 이야기 하려 합니다. 물론 이 시는 제가 소개하지 않아도 워낙 유명한 오랜 시라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알지 않을까 생각됩니다만, 북한에도 이 시가 알려지면 좋을 것 같아 들고 나왔습니다.
MC : 선생님께서는 이 시를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도명학: '타는 목마름으로', 제목부터 어떤 것에 대한 강렬한 갈망을 느끼게 하는 표현이잖습니까. 한번만 들어도 기억에 딱 새겨지는 제목이죠. 저는 북에 있을 때 이 시를 한국의 민주화운동 시인 김지하의 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남한 방송을 통해 이 시가 노래로 만들어진 것을 들은 적 있고, 북한 문단 내부 참고자료에도 언급된 바 있습니다. 남조선에 이렇게 훌륭한 민주인사가 있다, 이런 식으로요.
MC: 이 시를 쓴 김지하란 시인은 어떤 인물이었나요?
도명학 : 김지하 시인은 널리 알려진 분이라서 제가 소개하는 것이 적합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북한 청취자들을 위해 소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지하 시인은 1960년대와 70년대 반체제저항 시인으로 불렸고,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생명사상가로 활동을 시작했는데 본명은 김영일입니다. 필명이 김지하이고요. 고향은 전라남도 목포인데 동학농민운동가의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이때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고 합니다. 대학은 서울대학교를 다녔고 4.19혁명에도 참가했으며 5.16군사혁명 이후에는 수배를 피해 항만의 인부나 광부 등으로 도피생활을 했습니다. 1963년에 김지하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시 '저녁 이야기'가 처음으로 활자화 되었고, 이듬해부터 전투적인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1964년 한일회담에 반대하는 6.3학생운동에도 참여해 활동하다 체포돼 수감생활을 했습니다. 그후 1969년 5편의 저항시를 발표하면서 저항시인의 길로 들어섰고, 이듬해 '사상계'라는 잡지에 권력상층부의 부정과 부패상을 담아낸 시 '오적'을 발표하면서 군사독재시대의 '뜨거운 상징'으로 떠올랐습니다. 또한 1974년 도피생활을 거듭하던 중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일주일 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1980년 형집행정지로 풀려났습니다. 이어 1984녀 사면 복권되고 저작들도 해금되면서 1970년대 저작들이 다시 간행되었고 이무렵을 전후해 생명운동에 뛰어들었는데 이때 민주화운동진영으로부터 변절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 당시의 시집으로는 "검은산 하얀방", "이 가문날에 비구름", "별밭을 우러르며"등이 있습니다. 한편 복역중이던 1975년에 아시아 아프리카작가회의로부터 로터스상을 받았고 1981년 세계시인대회로부터 위대한 시인상과 브루노 크라이스키상을 받았습니다. 이렇듯 파란만장한 운명의 길을 걸은 김지하 시인은 올해 2022년 5월 생을 마쳤습니다. 덧붙여 말씀 드린다면 북에 있을 때 김지하시인의 옥중수기를 북한당국이 소개한 것을 본 적 있습니다. 그걸 보고 무슨 생각을 했냐면 김지하 시인의 용기와 저항정신에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론 남조선은 저항작품을 써도 감옥에 가서 다시 풀려날 수 있는 사회구나, 북조선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인데, 북에서 그런 글을 썼다면 발표는 고사하고 원고만으로도 3대멸족인데 그만하면 남조선 군사독재정권이 내가 생각했던 만큼 잔혹하지는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MC: 그럼, 김지하 시인의 시 ‘타는 목마름으로’를 들어 보시겠습니다.
<<<<<<시 낭독>>>>>>
제목: 타는 목마름으로(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속에
깊이 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시낭송: 설연화, 유투브 채널 ‘설연화의 시 읽어주는 여자’)
MC: 이 작품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뭔가요?
도명학: 네, 그에 앞서 말씀 드릴 것은 사실 북한에도 남한 운동권 노래가 들어있는 음반이 나도는 것이 있습니다. 외부에서 불법유입된 것도 있지만 북한 내부의 비공개 대남선전 음악단인 '칠보산음악단' 음반도 암암리에 돌아다닙니다.
얘기가 좀 비껴가는 것 같지만, 제가 이런 경험을 한 적 있습니다. 제가 정치범으로 보위부에 체포되어 손에 수갑을 차고 승용차에 실려가는 중에 앞자리 조수석에 앉은 요원이 카오디오를 켰습니다. 뜻밖에도 흘러나오는 노래가 남한노래인 ‘아침이슬’ 이었습니다. 놀랍기도 했고, 한편으론 보위부 사람들이 이남 노래를 이렇게 공개적으로 들어도 되는 거구나 하고 생각됐습니다. 하지만 저로선 그 노래 ‘아침이슬’이 미묘한 기분을 느끼게 했습니다. 말하자면 내가 지금 반동분자로 잡혀 죽으러 가는 데 왜 하필 이런 비장한 노래를 켜는 거야, 하고. 참 그때 심정을 뭐라 표현할 길 없더군요. 이런 경험 때문에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 이 시가 더 제 마음에 와닿았고, 오늘 방송에서 소개하기로 정했습니다.
MC: 이 시는 남한의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대표적인 시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에게 이 시는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까요?
도명학: 이 시의 구절구절이 많은 북한주민들이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말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식인들에겐 더욱더 타는 목마름으로 다가갈 것입니다. 아마 그래서 이 시를 들으면 금방 외워버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갈증에 탄 목을 금시에 추겨주는 생명수 같은 시니까요. 북한은 이런 시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노래: 박준, 유투브 채널 ‘눈졸린’)
MC: 이 시가 북한에서 읽혀진다면 어떤 반응이 일어날까요?
도명학: 속이 시원하고 주먹을 불끈 쥐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언젠가는 북한에도 기필코 시민혁명이 일어나겠지만 이런 시가 많이 들어갈수록 투쟁의욕을 자극해 그날을 앞당기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반면 이 시가 북한에 퍼지는 것을 당국이 알면 체제존립에 위협을 느끼고 당황망조하겠죠. 북한당국이 시종일관 한편의 시가 사회운동에 미치는 힘이 총칼보다 더 크다는 논리로 중시해 온만큼 이런 시가 인민들 속에 널리 퍼지면 엄청난 두려움에 떨 것입니다.
MC: 특별히 어떤 구절들이 마음에 와 닿고 감동을 주는지요?
도명학: 사실 잘 된 시는 어느 구절이 특별히 마음에 와닿는다고 꼭 찍어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고도의 함축이 시의 생리므로 시어 하나하나가 다 자기 몫을 충분히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잘 짜여진 시는 문구 하나만 빼도 구성이 단박에 무너지죠. 시 "타는 목마름으로"가 그렇습니다. 저에겐 어느 문구나 다 마음에 와닿고 감동을 줍니다. 그럼에도 굳이 어느 구절을 짚어야 한다면 후반부 문구들입니다.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이 대목입니다. 왜냐면 북한에서 제가 그랬었기 때문입니다. 백묵으로 나무판자 정도가 아니라 큰 붓을 들어 김일성의 영생을 기원하는 '영생탑' 높은 곳에 커다랗게 쓰고 싶었습니다. 결국은 몰래 원고지에 체제를 비난하는 시를 썼다가 고발돼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오긴 했지만, 민주주의 그 말 자체가 저에겐 타는 목마름이었고 매일 가슴속에 민주주의 네글자를 새기며 살았습니다.
MC: 이 시가 쓰여진 1970년대는 민주주의 운동에 각종 탄압이 들어갔던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와 배경에서 볼 때 이 시가 여느 시와 다른 점, 특징은 뭘까요?
도명학: 이 시의 특징을 보면 저항시로서 투쟁을 선도하는 내용임에도 서정시로서 손색없습니다. 흔히 사회운동을 독려하는 시들의 경우 선전포스타적인 요소가 짙지 서정성은 다소 떨어지는데 이 시는 그렇지 않습니다. 서정시의 백미라고 평가하고 싶을 만큼 좋습니다. 반독재민주화운동이 대세였던 당시의 시대상이 이런 특별한 서정시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시인의 천재적 재능이 더해진 결과겠지만요.
MC: 그렇다면, 지금 이 시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뭘까요?
도명학: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깨우치는 시입니다. 이미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다면 그 민주주의가 어떤 대가를 치르고 이루어진 것인지 되새겨보게 하고, 아직 민주주의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민중에겐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 그 이름을 마음에 새겨 넣게 하는 것이 이 시가 주는 메시지라고 생각됩니다.
MC: 마지막으로 전체적인 감상을 말씀해 주시죠.
도명학: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감동적인 시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이 시를 읽는 내내 이런 저항시를 쓸 수 없는 북한 시인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남한에는 이 시가 지나간 한 시대의 추억으로 남았지만, 북한은 지금 이 시가 타는 목마름으로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래서 탈북작가의 사명감에 더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MC: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오늘 순서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도명학: 네, 고맙습니다.
MC: 청취자 여러분, 저희는 다음 주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끝>
(기자: 홍알벗,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