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북한에서 저평가 받는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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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시간입니다. 이 시간 진행에 홍알벗입니다. 오늘도 탈북작가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남한의 문학작품을 읽고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 네, 안녕하십니까.

MC: 오늘은 어떤 작품인가요?

도명학 : 오늘은 한국에서 최근 개봉된 영화 "한산"을 가지고 이야기하려 합니다.

MC: 이건 시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 영화잖습니까. 문학이란 범주 안에 영화도 들어 가는 건가요?

도명학 : 네, 전번에 노래를 가지고도 말씀 드렸지만 북한에서는 가사도 시문학의 범주에 포함시키듯 영화에 관해서도 시나리오를 문학에 포함시킵니다. 그것도 문학의 말석에 있는 종류 정도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서사문학 중에서도 특별한 지위를 부여합니다. 그래서 시나리오라는 용어대신 영화문학이라고 하죠. 그만큼 영화문학을 중시하고 심사도 까다롭기 때문에 영화문학 창작은 가장 어려운 창작으로 취급됩니다. 전번에 북한에는 직접 가사를 쓰고 곡을 붙이는 가수와 작곡가가 거의 없다고 말씀드렸지만 영화도 마찬가집니다. 남한에는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는 경우가 많지만 북한에는 거의 없습니다. 북에는 감독이라는 직제는 따로 없고 연출가가 감독이나 같은데 영화제작의 사령관입니다. 그런데 연출가들 중에 시나리오를 직접 쓰는 연출가가 거의 없습니다. 우리가 영화를 볼 때 서두에 혹은 맨 마지막에 영화제작에 참여한 사람들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까. 보면 시나리오를 감독이 직접 창작한 영화가 아닐 경우 작가의 이름이 감독, 투자자, 연출가 촬영가 보다 더 뒤에 나오는데, 그것도 아주 작은 글자로 나오더군요. 북한은 전혀 다르죠. 제일 먼저 큰 글자로 소개하는 것이 영화문학 작가의 이름이고 영화가 성공하면 노력영웅 칭호를 받든 김일성상을 수상하든 작가가 우선입니다. 거기에 압도당한 심리인지는 모르지만 연출가에게 영화문학을 쓰라면 자신감이 없습니다. 영화문학은 영화문학작가만이 쓸 수 있는 어려운 작업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죠. 북한당국이 대중선전수단으로의 영화의 파급력을 그만큼 중시하기 때문인데, 모든 문학예술작품 가운데서 영화를 제일 선두에 내세우며 영화제작의 모든 과정 중에서도 가장 중시하는 것이 시나리오, 즉 영화문학입니다. 그래서 창작집단도 조선영화문학창작사와 조선인민군영화문학창작사 등이 별도로 있습니다. 조선작가동맹과 무관하진 않지만 실지 운영은 노동당 직속 기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지위를 갖습니다. 저 역시 시나리오를 문학으로 보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영화들을 보면 문학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더군요. 좋은 영화는 펜이 아니라 화면으로 묘사된 소설작품이나 같다고 봅니다. 물론 문학성과는 거리가 먼 순수 흥미위주나 자극적인 액션으로 일관된 영화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영화가 더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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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시, 임진강 거북선 복원 모습. /파주시

MC: 이 영화는 어떤 영화인가요? 포스터를 보니까 거북선이 보이는데 말이죠.

도명학 : 네. 영화에 거북선이 나옵니다. 영화의 부제목이 "용의 출현"이라고 되어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용은 배 앞머리에 달아붙인 용머리 모양 포문을 말하는 거죠.

영화는 임진왜란 때 한산대첩에서 일본 수군을 전멸시켜 전과를 올린 이순신 장군을 위시한 조선 수군의 활약을 그린 내용입니다. 앞서 나온 영화‘명량’도 임진왜란 때 명량해전으로 그린 영화였는데 그 영화의 속편이 “한산”입니다. 둘다 김한민감독 작품이죠.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일본군이 현재의 서울인 한양과 평양까지 점령하고 조선 왕은 압록강 의주성에까지 피신했을 정도로 조선의 운명이 경각에 달했던 시기입니다. 영화는 그러한 때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나선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 그리고 육지에서 일본군의 공격을 저지하는 권율장군과 의병들의 활동을 아주 감동깊게 잘 그려냈습니다.

MC: 이 영화의 줄거리 좀 소개해 주시죠.

도명학 : 네,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1592년 4월, 이미 조선은 임진왜란 발발 후 단 15일만에 수도 한양을 빼앗기며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이고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는 일본군은 조선을 넘어 명나라 진군을 꿈꾸며 대규모 병력을 부산포로 집결시킵니다. 한편 홀로 해상에서 고군분투하는 이순신 장군은 연이은 전쟁 패배아 임금인 선조마저 한양을 버리고 피난 간 상황에서도 조선을 구하기 위해 전술을 고민하며 출전을 준비합니다. 거북선의 파손과 도난당하는 거북선 도면, 그리고 조선 수군 내부의 의견충돌 등으로 연이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이전보다 더 성능을 개조한 거북선들을 건조하고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는 압도적 승리가 필요한 전술인 "학익진"이라는 전술을 준비합니다. 또 한편으론 육지에서 싸우는 권율장군과 의병들과도 협동작전을 준비합니다. 그리하여 1592년 음력 7월 이순신 장군은 수백척의 일본함대를 싸움에 유리한 한산수역에 유인하고 아군 전함들로 학의 무리 대형을 짜는데, 바로 "학익진" 전술을 구사합니다. 하여 전투는 일본군에게 공포의 대상, 괴물로 불리는 거북선의 활약과 "학익진"전술, 그리고 육지에서의 권율장군 부대와 의병들이 연합작전으로 대 전과를 거둘 뿐 아니라 부산포까지 추격해 집결된 일본군을 격파함으로써 명나라까지 단숨에 진군하려던 일본군의 전의를 꺾어버리는 것으로 마무리 됩니다.

MC: 그런데, 특별히 많고 많은 영화 중에 이 것 '한산'을 고르신 이유는 뭔가요?

도명학 : 이 영화가 남북한이 다 아는 조선의 명장 이순신 장군 이야기고, 또 북한에도 외래침략자들을 쳐물리치는 내용의 역사물 영화들이 있는 만큼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돼서입니다.

MC: 이순신 장군 하면 북한에서도 존경하는 인물로 여겨지고 있습니까? 북한에서는 이순신 장군을 어떤 인물로 알고 있나요?

도명학 : 북한도 이순신 장군을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애국 명장으로 가르칩니다. 다만 이순신 장군의 존재가 청소년들과 인민들이 모두 존경하고 따라 배워야 할 위인으로 기릴 정도까진 아닙니다. 왜냐면 청소년들에게 그에 대해 가를 칠 때 이순신 장군이 지켜낸 나라가 도대체 어떤 나라더란 말이냐 하고 문제를 제기합니다. 이순신이 충성으로 지켜낸 것은 부패무능한 봉건왕조의 조선이었지 인민의 나라가 아니었다는 것, 따라서 이순신이 아무리 거북선을 만들고 싸움에 능한 장군이였어도 6.25전쟁 시기 인민의 나라를 위해 목숨바쳐 싸운 인민군의 일개 전사보다도 나을 것이 없다는 식으로 교육합니다. 이순신은 그냥 우리 역사의 한페이지에 기록된 유명한 장수라는 것 외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까진 없다는 식이죠.

MC: 그렇다면, 북한에서는 임진왜란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요?

도명학 : 북에서는 임진왜란이 일본의 침략적 본성이 태생적으로 잠재해 있음을 드러낸 전쟁이고, 일본침략에 맞서 조선의 의병들과 백성들이 용감하게 싸워 승리한 전쟁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왕을 비롯한 양반계급은 자기 안위만 생각했지만 인민이 목숨 걸고 싸워 나라를 지켰다는 인식을 주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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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 용의 출현'. /연합 (Kyung Rhee)

MC: 그러고 보니 영화의 시나리오도 문학작품이 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시나리오가 탄탄해야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영화와 문학과의 관계, 어떻습니까?

도명학 : 앞에서 언급했습니다만 저는 영화와 문학의 관계라고 할 때 소설이 종이에 펜으로 쓴 영화라면 영화는 스크린에 카메라로 쓴 소설이나 같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영화적 수법과 글로 쓴 소설이 특성상 꼭 일치할 수만은 없기에 각색이 필요합니다. 실지로 소설가들이 소설을 쓸 때 머리 속엔 영화적인 장면이 연상되고 시나리오작가들 역시 영화의 장면을 상상하는 동시에 소설적인 상상을 동시에 하게 되는 것만 봐도 영화와 문학작품은 상호 보완하는 관계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MC: 그런데 북한에서는 영화를 만들 때 제약이 많을 거 같은데 말이죠. 특히 역사물을 만들때 준수해야 할 원칙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도명학 : 북에서는 영화든 소설이든 역사물 주제 작품을 창작할 때 노동계급성, 인민성, 역사주의적 원칙 같은 것을 지킬 것을 강조합니다. 이게 무슨 말인 가면 역사를 형상함에 있어 왕이나 양반계급을 중심에 놓고 전개할 것이 아니라 피착취계급인 인민들을 중심에 놓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북한 역사물들을 보면 왕이나 양반들은 부도덕하고 무능하고 부패하여 사회발전에 해악을 끼치는 존재로 묘사되기가 일수입니다. 반면 농민들을 비롯한 평백성은 비록 가진 것 없고 배운 것은 없을지언정 인정도 있고 정의감에 불타고 검소하고 애국심이 넘치는 캐릭터로 나옵니다. 바보를 그리는 경우에도 양반이나 그 자녀들을 바보스럽게 그리지 농부를 비롯한 평범한 인민들과 그 자녀를 바보로 그리는 건 계급적 원칙이 바로 서지 않은, 말하자면 노동당의 문예정책을 제대로 학습하지 않은 데서 나오는 잘못이라고 비판합니다.

MC: 영화를 보시고 어떤 느낌을 받으셨나요?

도명학 :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2시간 훨씬 넘는 시간 봤는데도 시간이 얼마나 빨리 흐르는지 더 길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을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영화가 주는 메시지도 의미 있고, 액션도 좋아 볼만한 영화였습니다. 아직 보지 못한 분들에겐 꼭 권하고 싶은 영화입니다.

MC: 감동을 받으신 장면이 있다면 어딘가요?

도명학 : 물론 감동이라면 작품의 절정을 이루는 한산대첩 싸움장면이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특별히 감동을 받은 건 영화에서 조선군에 포로된 일본군 장수 한 명이 심문받는 자리에서 이순신과 하는 대화 장면입니다. 이순신에게 일본군 장수가 이 전쟁을 무슨 전쟁이라고 보는 가고 묻습니다. 이에 이순신은 이 전쟁은 의와 불의 간 전쟁이라고 대답합니다. 그 말에 일본군 장수는 나라와 나라 간 전쟁은 아니고?라고 되묻습니다. 이 일본군 장수는 이전에 있은 전투에서 이순신에게 총을 쏘아 부상을 입힌 당사자였지만 이순신의 인간됨과 정신에 감동되어 자신을 거두어 달라며 항복하고 조선군 편에 섭니다. 그가 하는 말이 일본군 장수는 자기가 살겠다고 부하를 죽을 구멍에 버리는데 이순신은 부하를 살리겠다고 자신을 위험한 곳에 던지는 장수임을 보았노라고 토로할 때 정말이지 진한 감동을 금할 수 없더군요.

MC: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문학적으로도 손색이 없는 이유는 뭘까요?

도명학 : 영화적으론 손색이 없다고 보는데 문학적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물론 시나리오 대본을 제가 직접 읽어보지 못했지만 문학적으로도 상당한 수준은 된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앞서 말한 투항한 일본인과 이순신 간의 관계 같은 건 상당히 문학성 있는 설정이라고 생각됩니다.

MC: 네, 오늘 문학기행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도명학 선생님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도명학 : 네, 수고하셨습니다.

MC: 저희는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기자: 홍알벗,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