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류현우의 블랙北스의 진행을 맡은 목용재입니다. 지난 방송에서 북한의 고위 엘리트들이 모여 사는 평양 의암동 은덕촌에 대한 이야기를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대사대리로부터 들었는데요.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야기였기에 흥미로웠습니다. 그런데 은덕촌에 사는 고위층들에 대한 북한 당국의 통제와 감시가 심각해 상당한 인권 침해가 일어나고 있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류 전 대사대리로부터 이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진행자: 의암동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거주민들한테는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류현우: 신임을 많이 받는다, 충성도가 높다, 이렇게 풀이가 될 수 있겠죠. 그런데 사실 제가 느낀 바로는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이곳에 들어가게 되면 도청, 미행, 감시 이런 것이 굉장히 강하거든요. 집 안에서 아무 말이나 못 합니다. 예를 들어 리영호 총참모장이 총살당하지 않았습니까? 가장 큰 원인이 집에서 아내하고 김정은에 대해 비방 중상하는 말을 하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거든요. 저의 장모는 제가 불평, 불만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면 계속 입을 가리키거든요. 말하지 말라고. 조용하라고. 다 듣는다고. 24시간 도청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실 있는 얘기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다른 방법이 필요합니다. 아들, 사위들과 함께 사는 아바이들은 아침 5시 반쯤에 깨어나거든요. 그리고 7시 반쯤에 출근합니다. (장인이) 5시 30분에 깨서 6시쯤 되게 되면 저희도 일어나서 같이 달리기를 하든지 산보를 하든지 하는데 그때 장인 어른이 저한테 물어볼 얘기도 하고, 제가 장인 어른한테 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시리아에 나가 있었을 때인데 (한국 언론 등이) 저희 장인 어른 보고 '김정일의 금고지기'라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이를 보고 '김정일의 금고지기'라고 한다는 말을 산보하면서 장인한테 말했었습니다.
진행자: 한국 언론에서 나온 내용을 장인께 말씀하셨다는 거죠?
류현우: "아버지를 보고 남조선에서 김정일의 금고지기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웃으시더라고요. 장인께 그런 얘기를 해 줍니다. 도청에 걸리지 말아야 할 그런 비밀스러운 얘기들 있지 않습니까? 내실 있는 이야기들을 산보를 한다거나 도청이 되지 않는 곳에서 쭉 주고받는 거죠.
진행자: 리영호의 경우 내부에서 말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을까요? 왜 그런 이야기를 해서 처형당했을까요.
류현우: 그 사람은 그런 습관이 되어 있지 않았어요. 리영호가 차근차근 군에서 올라간 케이스가 아니고 지방에서 군단장을 하다가 올라오고 인민무력부에서 일하다가 또 내려가고, 주둔군 사령관을 오래 하다가 올라오고, 이런 식으로 했기 때문에 중앙 정치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했던 케이스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진행자: 그러면 은덕촌에 들어감과 동시에 언제 잘못되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하지 않으실까요?
류현우: 한국에서 "왕관의 무게를 견디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처럼 북한에서도 간부라면 언제 내 목이 날아갈지, 언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지, 혹은 정치범 수용소로 갈지, 그건 누구도 장담을 못 합니다. 일반인 경우에는 마음이 편하거든요. (고위 간부들은) 항시적으로 감시 속에 삽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무엇인가 잘못했다면 연대적 책임을 지고 '보쌈'으로 걸려서 사형을 당하든지 어떻게든 죽어야 하는 처지에 빠질 수 있습니다. 외무성에 장가갈 나이의 총각들이 있지 않습니까? 제가 저희 집사람하고 중매꾼 노릇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딸 가진 간부들이 대체로 외무성이라든가, 대외 부문에서 일하는 사람들한테 딸을 줘서 해외에 나가서 살게 되면 북한의 입장에서는 좀 호강하게 살 수 있잖아요.
진행자: 자유를 좀 누리고 살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
류현우: 자유를 좀 누릴 수 있단 말이죠. 토요일마다 생활총화, 당 정책 학습, 굉장히 힘들거든요. 규율 생활을 계속 해야 되는데 외국에 나가 있는 3~4년 기간 동안은 그래도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할 수 있고, 늦게 잠도 잘 수 있고, 잘 먹을 수 있고, 외화로 월급도 받으니까요. 북한 내부에 있는 것보다는 한참 낫습니다. 그래서 간부집 딸들이 외무성에 있는 남자들을 좀 소개해 달라고 저희 장모한테 얘기하는 겁니다. 그러면 저희 장모님은 저보고 부탁하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잘 아는 어린 친구들한테 가서 "조직부 부부장 딸이야"하고 얘기를 하면 이 친구들 있다가 "저는 지금 여자가 있습니다"라면서 피하거든요. 나중에 이 친구들이 결혼한 여자들을 보게 되면 무남독녀 외동 딸인데 장인이 외국에 나가서 10년 이상 있으면서 돈 좀 벌어오는 갑부 집 딸을, 그런 여자들을 택한단 말입니다. 왜 간부(의 딸)를 택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그거 왜 호박 쓰고 돼지굴에 들어가겠냐"고 얘기를 해요. 그러면서 저보고 하는 말이 "1, 2층에서 떨어지게 되면 그래도 다리만 꺾이지만 10층에서 떨어지면 머리가 박살이 나서 죽는다"고 해요. 높은 데 올라갈수록 그 위험도가 높다는 거죠. 그러니까 고위 간부가 되면 될수록 정치범수용소에 가거나 혹은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죠. 지옥에다 발 한쪽을 넘겨 놓고 사는 게 간부라고 보시면 됩니다.
진행자: 의암동 아파트에서 가장 친하게 지냈던, 한국에서는 이웃 사촌이라는 표현을 좀 쓰는데 그런 지인들과의 일화가 있으실까요?
류현우: 저희가 가장 친하게 지냈던 집이, 처형된 박남기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의 집이었습니다. 그 집 손녀가 박부용이라고 우리 딸하고 동년배였습니다. 우리 딸과 (그 아이는) 탁아소나 유치원에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둘이 계속 손 잡고 놀았습니다. 그러니까 그 집 부모하고 저희 아내랑 친하게 지냈습니다. 2009년에 화폐개혁을 하지 않습니까? 그 사건으로 2010년 1월에 박남기가 총살을 당합니다. 그리고 2010년 같은 해 2월 즈음 이제 박남기 가족들이 다 정치범수용소로 갔습니다. 그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것이, 새벽 1~2시로 기억이 됩니다. 그때 국가안전보위성 트럭이 있거든요. 그 큰 군용 트럭이 와서 거기에 짐을 하나씩 다 싣는 겁니다. 애가 소리치고 여자들이 우는 소리로 온 동네가 떠나갈 정도였습니다. 그때 밤을 지세웠습니다. 우리도 저런 운명에 처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치범수용소에 끌려 가는 사람을 그 때 처음 봤습니다. 사실 박남기가 화폐개혁을 하겠다고 해서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까? 김정일 지시가 없으면 어떻게 합니까. 자기(김정일)가 했음에도 인민들의 규탄과 저주를 박남기 쪽으로 돌린 것 아닙니까. 아, 이거 우리도 걸려서 죽을 수도 있다는 그런 의구심을 항상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고위층 간부가 되려면 한 발은 지옥에 놓고 항상 죽을 걸 각오해야 하는 겁니다.
진행자: '보쌈'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무슨 의미예요?
류현우: 북한에서는 보쌈에 걸려서 죽는다고 하게 되면 원래 죽어야 될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을 대신 죽게 만드는 걸 보쌈에 걸려 죽는다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진행자: 박남기는 김정일의 책임에 대해 보쌈을 당한 것이네요.
류현우: 네. 그렇게 하는 거죠. 실제 그 사람이 무슨 권한이 있겠습니까. 나라의 화폐를, 이걸 개혁한다라는 걸 김정일의 승인이 없이, 비준이 없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를 김정일이 몰랐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겁니다.
진행자: 박남기 일가족이 정치범수용소로 끌려 갔을 때 그 장면을 직접 지켜보셨던 건가요?
류현우: 네. 다 봤습니다. 밖에 내다보면서 트럭에 짐을 싣는 것까지 다 봤습니다. 짐을 싣는 것을 보니까 사람들이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물품, 예를 들어서 밥솥이라든가 이런 용품들 이외에는 챙겨간 게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집안은 딸이 둘 있었거든요. 우는 소리가 굉장히 처량하게 들리더라고요. 저도 자식 키우는 사람이니까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올 때는 마음이 먹먹하잖습니까. 저 사람(박남기)은 화폐개혁을 창발적으로 한 것도 아닐 것이고, 과업을 받아서 했을텐데하면서 그때 굉장히 동요했습니다. (당시) 군수공장 노동자들부터 시작해서 배급도 못 주고 돈도 제대로 안 나오고 하니까 농민 시장이 모두 마비됐었습니다. 당에 대한 인민들의 신뢰가 완전히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길바닥에서 파를 판매하는 할머니들까지도 달러, 혹은 중국 돈 위안화를 달라고 얘기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럴 정도로 북한 돈에 대한 신뢰도가 완전히 떨어졌습니다.
진행자: 네. 그동안 국제사회는 북한의 일반 주민들이 겪는 인권 유린에만 관심을 쏟아왔는데요. 각종 혜택과 대우를 받으며 부러움 없이 살 것 같았던 은덕촌의 고위 인사들이 24시간 도청과 감시를 받고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떠안고 있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입니다. 그렇지만 북한 엘리트들이 24시간 감시와 무거운 책임을 감수하는만큼 경제적 대우는 풍족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전해드리겠습니다. 류현우의 블랙北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