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류현우의 블랙북스, 진행을 맡은 목용재입니다. 지난주 방송에서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북한 내 위상에 대해 다뤄봤는데요.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께서 김 부부장은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복심’이자 ‘입’은 맞지만 ‘2인자’라고 볼 수는 없다는 평을 해주셨습니다. 오늘은 김여정 부부장과 관련된 비화, 마지막 순서로 최고지도자의 여동생인 김여정, 그리고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기 역시 최고지도자의 여동생이었던 김경희 전 당 부장을 비교하는 시간을 가져볼까합니다.
[진행자]먼저 김정은 당 총비서와 김여정 당 부부장의 돈독함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린 시절 스위스 유학을 함께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 같은 유년 시절의 경험으로 둘의 관계는 상당히 친밀하다고 볼 수 있겠죠?
[류현우] 김정은은 여동생인 김여정과 1998년 9월부터 2000년 가을까지 스위스 베른에서 유학했습니다. 김정은은 '박은'이라는 가명으로, 김여정은 '정순'이라는 가명으로 스위스 베른에 있는 공립학교에 다녔습니다. 같은 학교가 아니라 서로 다른 공립학교에 다녔습니다. 김정은의 형 김정철이 1994년 9월부터 1998년까지 '박철'이라는 가명으로 스위스의 국제학교에 다녔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국제학교에 북한 아이들이 다닌다고 하면 각국의 정보기관들이 주목하게 되고 누구의 자녀인지를 확인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어 김정철의 신상이 이미 언론에 공개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김정일이 김정은과 김여정을 보낼 때 공립 학교를 선택하지 않았나, 추정해봅니다. 그런데 국제학교가 아닌 공립학교이다 보니 영어나 프랑스어가 아닌 독일어를 배웠다고 합니다. 베른은 독일어 사용 지역이어서 공립학교 수업이 독일어로 진행됐다고 합니다. 당연히 독일어에 서툰 김정은이 수업과 학교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진행자]김정은 총비서와 김여정 부부장 모두 어린 시절의 해외 유학이었는데, 당시 따로 이들을 챙긴 인물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류현우]네. 그렇습니다. 노동당 국제부장을 역임했던 리수용이 그런 역할을 수행했는데요. 저의 장인어른의 말에 의하면 리수용이 외무성 의례국장을 하다가 1980년대 말 김정일의 부름을 받고 본부 서기실로 옮겨와 일했는데 그 기간 김정남, 김정철, 김정은 형제에게 프랑스어 기초를 교육했다고 합니다. 이걸 봐서는 당시부터 김정일이 이미 자녀들의 스위스 유학을 준비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또한 김정은의 스위스 유학시절 한 학급에서 생활한 학생들의 기억에 따르면 16세 김정은은 조용하고 평범한 학생이었고, 다른 학생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는 내성적인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농구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농구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김정철은 1998년에 이미 스위스 국제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김정은과 김여정은 그 이후 유학 기간(1998~2000년)을 둘이서 지냈습니다. 남매끼리 타향살이 하며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야 했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신뢰와 유대가 두터웠다고 봅니다. 최근 김여정에게 비중 있는 역할을 맡기는 데는 남매 간의 두터운 신뢰관계가 깔려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실부모’ 김정은, 김여정에 의지할 수밖에”
[진행자]김정일의 여동생인 김경희도 당 고위직을 역임했지만 김여정처럼 전면에서 목소리를 내지는 않았습니다. 김경희와 김여정의 역할에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류현우] 김정일은 하나밖에 없는 친동생인 김경희를 정말 잘 돌봤습니다. 저의 장인어른은 김정일과 남산고중 동창생입니다. 그 때 김정일은 엄마 없는 김경희를 엄마 못지 않게 챙겨주었다고 합니다. 제가 보는 김여정과 김경희의 차이점은 각각 자기가 의지한 오빠의 권력 및 힘과 관련돼 있다고 봅니다. 김정일은 50세가 넘을 때까지 아버지의 그늘 밑에서 후계자 수업을 했고 또 북한에서 중·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니면서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김정일에게는 권력을 공고히 하는데 필요한 측근들이 많았던 반면에 그의 아들 김정은은 국내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았고 대학도 속성으로 다니다보니 친구들이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측근이 없습니다. 현재 김정은을 둘러싸고 있는 측근들은 100% 아버지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그들에 대한 믿음과 신뢰는 아버지에 대한 충성 하나에 의존할 뿐입니다. 그래서 김정은은 국정 운영에서 중차대한 문제를 김여정과 토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김정일은 내성적인 반면에 김정은은 외향적인 성격이기 때문에 성격상 차이도 있습니다. 그러니 김여정이 김정은의 의중을 반영해 건건이 메시지를 내고 있다고 봅니다. 김경희는 50세가 될 때까지 아버지 김일성이 살아있었기 때문에 큰 역할을 맡을 기회가 없었다고 봅니다. 게다가 김경희는 난임, 심장, 당뇨 등으로 젊은 나이 때부터 병치료를 많이 받았습니다. 한마디로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김여정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었고 오빠인 김정은과 '운명공동체'가 되어 북한 체제를 지탱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김여정과 김경희의 역할이 차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식 잃은 김경희 , 39호실장에 "살 재미도, 목표도 없다"
[진행자]이런 가운데 장성택 처형 이후 공개석상에서 김경희의 활동이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장성택 처형 이후 김경희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 아시는 바가 있으실까요?
[류현우] 장성택은 처형되기 오래 전부터 김경희와 별거 생활을 했습니다. 그전에 장성택이 여자 문제로 김경희와 다툼이 많았지만 결정적으로 별거 생활을 한 계기는 2006년 8월 이후부터입니다. 당시 무남독녀였던 장금송이 프랑스에서 약을 과다 복용해 자살했고 이 일 이후로 김경희는 알코올에 의지하다시피 했습니다. 자살 원인은 사랑 때문입니다. 장금송이 결혼할 나이가 지났으니 빨리 평양에 귀국해 결혼해야 한다는 부모의 독촉이 있었습니다. 장금송은 부모의 말을 거역할 수 없어 고민 끝에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할 수 없을 바에는 차라리 자살하는 길을 택했던 것이죠. 그 때 저의 장인어른이 김정일이 조직한 파티에 참석했는데 거기에 김경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모습은 하얗게 병든 기색이었고 얼굴은 반쪽이 되었다고 합니다. 장인어른이 김경희에게 다가가 "상실이 크지만 몸을 돌봐야 한다"고 이야기해주었다고 합니다. 김경희는 술에 취해 "실장동무, 이젠 살 재미도, 목표도 없어요"라며 계속 울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경희는 가족력인 심장병, 당뇨병 등 많은 질병을 앓았습니다. 2006년부터는 장성택과 별거해서 자기 초대소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리고 장성택에게도 욕설을 자주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장금송 사망 이후인 2006년부터 김경희와 장성택은 이름만 부부일 뿐 남남이나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김정은이 장성택 일가를 몰살시킬 때 김경희의 요구로 지난 2009년 이미 세상을 떠난 장성택의 형, 장성우의 자식 중 일부는 살려주었다고 합니다. 장성우는 군부대 사령관을 하면서 김정일에게 충성했던 장군입니다. 그래서 그가 사망한 후에도 그를 충신으로 잘 예우했습니다. 한마디로 장성우는 장성택과 달리 김정일에게 충성했다는 것이죠. 충신의 자식이니 장 씨라는 이유로 같이 죽이지는 말아달라는 부탁을 했던 것입니다.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한 후 김정은의 집권 초기, 김경희가 후견인 역할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2013년 9월 9일 정권수립 65주년 기념 열병식 행사 이후 병치료로 완전히 은퇴했고 집에서 치료를 받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다가 2020년 1월 26일 설 기념공연 관람 때 모습이 공개돼 김경희가 살아있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제가 평양에 있을 때는 김경희가 약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상태라고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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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결국 김여정 당 부부장이 전면에 나서서 현재처럼 자신의 역할을 해왔던 것은 이른 시기에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세상을 떠나고 이로 인해 집권 초기 권력과 힘이 부족했던 오빠를 돕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군요. 류 대사님의 김정은 총비서와 김여정 부부장은 '운명공동체'라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류현우의 블랙북스, 김여정 부부장의 비화는 이것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