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우의 블랙北스] 북 외교관의 리얼라이프⑤ 파견지서 한국 라면 쌓아놓고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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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류현우의 블랙북스 진행을 맡은 목용재입니다. 국제 무대 최전방에서 북한 외교의 실무를 담당하는 외교관들이 현지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있습니다. 북한 외교관들이 파견되는 현지에는 한국인 교포들도 거주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데요. 북한 외교관들은 현지에서 한국인들과 마주치는 경우가 꽤 많다고 합니다. 또한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식료품 매장도 애용한다고 하는데요. 오늘도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로부터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진행자: 북한 외교관들이 외교 활동을 하시다 보면 한국 외교관들도 만날 일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때 한국 외교관을 마주쳤을 때 느낌이나 감정은 어떤가요?

류현우: 원칙적으로는 만나서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4.27 회담이 열리지 않았습니까. 2018년에 열린 4.27 회담 이후 북한에서 전보 한 장이 날아왔습니다. 한국 외교관들하고 서로 화기애애하게 얘기도 하고 밥도 같이 먹어라는 지시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관련 연회에 참석하게 되면 한국 대사분이랑 만나서 얘기도 했습니다. 만나서 얘기해 보니까 우선 해외에 나가서 리셉션 행사 같은 곳에서 마주서서 얘기를 하게 되면 모두 외국어로 얘기합니다. 그런데 한국 대사와 우리는 통역이 필요 없잖습니까. 그럴 때 '아, 확실히 한민족이로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또 와 닿지 않습니까? 우리 말로 하고, 통역이 필요 없으니까 감정도 와 닿고 그리고 흥도 같고 장단도 같고 하다 보니까 한국 분들하고 얘기를 하게 되면 외국인이 아니라는, 그런 한민족이라는 느낌이 금방 와 닿죠.

진행자: 인상에 남는 한국 외교관 있었나요?

류현우: 구체적으로는 (말을) 안 섞죠. 구체적으로 말을 섞다 보면 복잡해지니까요. 구체적으로 얘기를 하게 되면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으며 또 제스쳐까지 다 써야 됩니다. 한국 사람과 관련해서는 말입니다. 안전대표한테 불려가서 취조 당하 듯이 글을 써야 하니까 번거롭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만나고도 안 만났다고 얘기를 하죠. 불편하니까요. 그런 점을 다 속입니다. 그리고 대체로 (한국 외교관을) 만나면 크게 이로울 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피합니다.

진행자:해외 생활 하시면서 현지에서 식료품이나 가전제품 등 현지에서 조달해야 하는 생활필수품들이 있잖습니까. 현지에서 주로 어떤 물품들을 사서 사용을 하십니까.

류현우:저희는 아무래도 한국 식품을 많이 사용합니다. 한국 마트에 가면 김치, 라면, 그 다음에 냉면, 그리고 고추장, 명태까지 다 있습니다. 명태를 구입하려고 갔는데 거기에 보니까 '부산 000 수산협동조합' 이렇게 쓰여 있는 박스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뭐냐고 물어보니까 동태라는 겁니다. 10kg짜리 1박스가 딱 있더라고요. 그 동태를 사와서 동태전도 해 먹고 동태 식혜도 해먹었습니다. 그렇게 한국 상품이 북한 외교관들한테는 상당히 선호하는 그런 제품으로 돼 있습니다.

진행자:한국 사람들도 라면 좋아합니다. 류 전 대사대리께서는 어떤 회사의 라면을 선호하셨나요?

류현우:브랜드가 너무 많지 않습니까. 제가 주로 먹었던 라면은 신라면, 오뚜기라면, 이런 것들을 집에다 박스로 쌓아놓고 먹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브랜드 중에서 북한 외교관들의 필수품으로, 없어서는 안 될 것은 바로 '쿠쿠 밥가마'입니다. 다른 나라 밥가마가 쿠쿠만 한 게 없어요. 밥이 제일 잘 되는 것이 쿠쿠 밥가마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다른 나라들에 나가게 되면 쌀 자체가 완전히 해초밥 아닙니까. 안남미와 비슷하니까 쌀이 맛이 없어요. (파견지에) 일본 밥솥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쿠쿠 밥솥만큼 좋지는 못합니다. 이건 그냥 놔두면 계속 보온이 되고 또 찰기 있는 것처럼 아주 밥이 맛있게 되잖아요. 베이징 대사관 뒷문에 보게 되면 조선족들이 파는 상점이 있습니다. 그 상점에 쿠쿠 밥가마가 쌓여 있습니다. 거기서 대체로 4인분 내지 6인분 용량을 아주 선호합니다. 그걸 가지고 가서 한 3~4년 동안 씁니다. 또 고장도 잘 안 나잖아요. 그러다보니까 (파견지에서) 쓰던 것을 가지고 평양에서 또 씁니다. 쿠쿠 밥솥이 최고입니다.

진행자:쿠쿠 밥솥을 북한으로 갖고 들어간다고요?

류현우: 그대로 갖고 들어갑니다. (북한에도) 개성공단에서 나온 쿠쿠 밥솥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쿠쿠 밥솥 자체가 평양뿐아니라 지방에도 굉장히 보편화돼 있습니다.

진행자:그렇다면 현지에서 한인 마트를 사용하시는 건데요. 그럼 한인 마트에 한국인이 있을 것 아닙니까. 아예 대화 자체를 피하시고 물건만 사시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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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우:말을 안 하죠. 중국 사람처럼 행세하면서 쭉 들어가서 사가지고 바로 나옵니다. 그런데 솔직히 김치, 명태, 동태, 고추장, 이런 것은 중국 사람들이라면 사실 안 먹습니다. 빤히 보고서는 "아 저 사람, 북한 사람이다"라는 걸 아마 아실 거예요.

진행자:만약 상품 관련해서 궁금한 게 있다면 물어봐야 되지 않습니까?

류현우:영어로 물어보죠. 그러면 영어로 답변하세요. 그리고 또 몸짓, 손짓, 다 하게 되면 다 이해하십니다.

진행자:북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 하시는 거군요.

류현우:그래도 카운터에 계시는 (한국)분들은 다 아십니다. 나갈 땐 자기네끼리 키득키득 웃더라고요. 저희가 한국인이 아닌 것처럼 흉내 낸다고 말이죠.

진행자: 한국 부모들은 교육열이 상당히 강합니다. 그런데 북한의 외교관 부모들도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파견지에서 자녀들 교육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셨는지 궁금한데요. 자녀들 교육, 어떻게 하셨습니까?

류현우:일반적으로 외교관들이 나올 때 자식 한 명을 데리고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제 아내들이 어느 학교에 보낼 것인가를 많이 고민합니다. 그런데 국제학교를 보내려면 그래도 1년에 1만 달러 이상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1만 달러 이상이 되는 학교에는 솔직히 큰 마음 먹고 보내지 않으면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북한 외교관들은 현지에 있는 학교에 보냅니다. 주재국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학교가 있거든요. 영어권에 있는 나라들은 좀 괜찮은데, 저희처럼 쿠웨이트와 같은 나라의 학교에서는 아랍어를 배워야 되잖아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영어권) 국제학교 중에서도 조금 가격이 싼 곳을 알아보는 겁니다.

진행자:그래도 파견지에 나가서도 자식 교육은 신경 써서 하시려고 하네요.

류현우: 거기서도 열심히 공부를 시킵니다. 또 아이들 자체가 아버지, 어머니가 힘들게 벌어서 자기를 공부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의연하게 공부를 하고 또 북한이나 한국이나 모두 유전자, DNA는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공부하려는 그런 DNA, 또 자식에 대한 교육, 치마 바람 일으키면서 아내들이 자녀를 공부시키려는 의지는 다 똑같은 것 같습니다.

진행자:파견지에서 몸이 아프면 어떻게 하셨습니까?

류현우:제가 한 가지 예를 들어 주겠습니다. 제가 대장이 나빠서 속앓이를 계속 했습니다. 보름 정도 했는데 큰일 날 것 같다는 생각에 (현지) 병원에 갔습니다. 대장 내시경을 하자고 해서 1,000 달러를 줬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 건강 검진을 갔는데 무상이다시피 했어요. (쿠웨이트에서) 검진 총 비용이 1,000 달러가 뭡니까. 이 비용이 모두 본인 부담입니다. 두 달 월급입니다. 국가(북한)가 이와 관련한 의료 혜택을 주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1전, 1푼도 없었습니다.

진행자: 오늘은 현지에 파견된 외교관과 그 가족들의 실생활을 들여다봤는데요. 그들이 한국 식료품을 애용한다는 사실이 생소하게 느껴지면서도 같은 민족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특히 찰기 있는 밥을 먹기 위해 한국 회사 제품인 '쿠쿠 밥솥'을 외교관들이 애용한다는 류 전 대사대리의 말씀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류현우의 블랙북스, 다음 시간에는 북한 외교관의 리얼 라이프, 실생활에 대한 그 마지막 이야기를 풀어드리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다음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