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우의 블랙北스] 중국 관광객 사망으로 북 고위인사 처형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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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류현우의 블랙북스, 진행을 맡은 목용재입니다. 2024년이 한 달여 남았습니다. 연말, 송년회 기간이 돌아오고 있는데요. 한국에서는 이 기간, 한 해를 마무리하는 모임을 가지면서 술자리를 갖는 문화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음주운전에 대해 집중 단속하는 기간도 갖는데요. 북한도 명절을 전후로 음주운전 등을 집중 단속하는 기간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단속을 할 필요가 있을 정도로 차량이 많이 운행되고 있는지도 궁금한데요. 오늘도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대사대리와 함께 이와 관련된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진행자]북한에도 한국처럼 송년, 신년을 기념해 모임을 갖고 술을 마시는 등의 문화가 있나요?

[류현우] 네. 북한에서도 직장마다 신년을 맞으며 송년회 겸 신년경축회를 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이때에는 부서별로 술, 맥주를 마시고 노래도 부르면서 한 해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날려보냅니다. 아무래도 술을 많이 마시면 취하는 사람도 있고 기분도 들뜨다 보니 쌓였던 감정으로 말다툼을 하는 사람도 있지요. 사람 사는 세상이니 남이나 북이나 똑같습니다. 그래서 북한에서도 내심 많은 사람들이 송년회 겸 신년회를 기다립니다. '조합 돈'으로 먹을 수 있는 기회이니까요. 북한에서는 부서에서 내는 돈을 가리켜 '조합 돈'이라고 표현합니다.

[진행자]북한에서 이렇게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는 사람도 있을지 궁금합니다. 북한에서도 음주운전 단속을 하나요?

[류현우] 북한에서도 음주운전을 단속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한국처럼 음주측정기를 가지고 음주여부를 확인하지는 못합니다. 그런 발전된 기재도 없습니다. 더욱이 북한에는 한국처럼 차량을 소유한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소유한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휘발유, 윤활유를 비롯해 자동차 관리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대부분 간부들이 타는 공무용차 혹은 기관, 기업소에 소속돼 있는 사업소용 차가 많은데요. 북한에서는 간부들이 타는 승용차보다 기관, 기업소에 소속되어 있는 승합차, 봉고차, 화물차에 대한 단속이 심합니다. '집중 단속'이라는 이름으로 불시에 교통안전원이 나와 음주단속을 합니다. 대부분 이런 음주단속은 명절 전야에 이루어집니다. 교통안전원의 월급은 0.5 달러도 안 됩니다. 그러다 보니 돈이나 물건을 뜯어내려면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권한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교통안전원들은 명절 전야에 집중 단속을 주동적으로 조직합니다. 그래서 운전수들이 명절 전야에 1장에 15kg짜리 '휘발유표'를 몇 십 개 준비합니다. 매 구간마다 트집을 잡고 단속하는 교통안전원들이 많기 때문에 매 사람 다 주어야 하거든요. 예를 들어 식료 공장 화물트럭 운전수가 빵을 실어 나르다가 단속되면 휘발유표 1장을 주든지 혹은 빵을 1박스를 주든지, 담배 1보루를 주든지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통 규정을 위반했다고 위반 딱지를 붙이고 기업소 당위원회에 통보합니다. 이렇게 되면 운전수들이 당, 행정, 사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운전수들은 교통안전원과 평상시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진행자] 술을 마시지 않고 운전을 해도 명절 전후 운전을 하려면 교통안전원들에게 뇌물을 바쳐야 한다는 얘기처럼 들리는군요.

[류현우] 맞습니다. 운전수들에게는 시간이 곧 돈입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지만 교통위반으로 단속됐다는 내용이 해당 기관, 기업소에 통보되면 기업소 망신이라면서 간부들이 그 운전수를 추궁합니다. 간부들은 교통안전원들이 단속됐다면 "동무는 운전수라면 좀 그런 것은 자기가 처리해야지, 기업소에까지 통보가 오도록 놔두면 어떻게 해? 운전수면 핸들만 돌리지 말고 머리도 팽팽 돌려야지!"라며 운전수를 나무랍니다. 이러니 운전수들은 자체로 문제를 처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운전수들은 자기가 단속되면 눈 감아달라고 교통안전원에게 정기적으로 뇌물을 바칩니다. 사실 음주를 하지 않았다고 해도 음주측정기가 없기 때문에 교통안전원은 이 구실, 저 구실을 붙여 처벌 내용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운전수와 교통안전원이 서로 상부상조하는 방향에서 문제를 처리합니다. 당에서는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받지 말라고 원칙대로 요구하지만 교통안전원들은 0.5 달러도 안 되는 월급을 가지고 살아갈 수가 없지요. 그러니 서로 알아서 눈치껏 벌어먹으라는 말이나 같습니다.

[진행자]북한 교통량이 어떤지도 궁금한데요. 과거보다는 늘어난 것 같던데, 교통체증이 일어날 정도로 교통량이나 차량 등이 늘어났나요?

[류현우] 2014년 이후 평양시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교통체증이 대폭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는 새로운 경제관리 체계가 도입되던 시기였습니다. 지난 2012년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에서는 새로운 경제관리체계를 도입하기 위한 시범 사업이 진행됐습니다. 2014년 5월 발표된 '새로운 경제관리체계'의 본질은 기업의 시장 활동을 합법적으로 허용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재정관리권, 인사권, 무역권, 생산물 처분권 등 여러가지 권한을 기업소에 부여해주었습니다. 여기서 혼돈하지 말아야 할 것은 기업의 시장 활동을 제도권 내에 편입시킨 것이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계를 도입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현존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계에 기업의 시장 활동을 편입시켰다는 의미입니다. 이때부터 각급 기관, 기업소에서 생산 활성화를 위한 노력들이 여전과 다르게 더욱 활발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기업소에서 원료, 자재, 설비 등 물동량 운반을 위한 운수수단들이 필요했습니다. 생산을 활성화해야 공장, 기업소에서 더 많은 수익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중고차들을 중국에서 수입했습니다. 돈 좀 번다는 기관, 기업소들은 모두 중고 화물트럭들을 수입했습니다. 우스운 것은 북한에서 승용차와 승합차는 운전석이 왼쪽에 있지만 대형 화물트럭들은 일본 중고품을 수입하기 때문에 오른쪽에 운전석이 있습니다. 교통규정에는 왼쪽에 운전석이 있는 것으로 돼 있지만 대형 화물트럭들은 오른쪽에 운전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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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그렇다면 교통체증의 원인이 화물차, 승합차 등 대형 차량의 증가라고 볼 수 있을까요?

[류현우]네. 대형 차량의 증가로 교통체증이 증대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14년 이후 북한에서 교통량이 증대되기 시작했습니다. 승용차보다는 봉고차, 화물트럭들을 많이 수입했는데 특히 10 톤짜리 박스형 화물 트럭은 돈주들이 돈을 투자해서 구입하고 기업소에 임대해주는 방식으로 돈을 벌고 있었습니다. 기업소에 임대해주는 비용만 하루에 100 달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물동량을 싣고 평양-원산, 평양-신의주를 왕복하는 임대료는 1회에 300 달러를 받았습니다. 구체적인 실례를 든다면, 외국에 상주하다가 귀국하는 세대들의 경우 베이징, 심양에 나가 있는 북한 운송회사 파견 직원과 귀국 운송 계약을 맺습니다. 아무래도 몇 년 동안 해외에서 살다 보면 필요한 물건들을 마련하게 되는데 이를 버리고 귀국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임기를 마친 세대들이 운송 회사와 계약을 하는 것이지요. 북한 운송 회사에 선금을 지급한 뒤 짐들을 중국 운송 회사에 넘기고 중국 회사는 이를 단둥까지 날라줍니다. 단둥에서 짐을 접수한 북한 운송 회사는 세관 검열을 마친 후 국경을 넘습니다. 그리고 신의주부터 평양까지 책임을 지고 귀국 짐을 운송해 줍니다. 작업이 완료되면 나머지 금액을 북한 운송 회사가 지급받습니다. 이런 식으로 분업화가 확대되면서 북한의 화물 운송 회사, 버스 회사, 그리고 택시 회사도 많아졌습니다. 평양시를 비롯한 지방의 대도시들에도 택시들이 너무 많습니다. 또한 교통체증을 유발시키는데 택시의 증가도 한 몫 합니다.

[진행자]체증이 있으면 교통사고 같은 것도 벌어질 것 같은데, 지난 2018년 북한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의 교통사고 소식이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사건에 대해 아시는 바가 있으신지요?

[류현우]지난 2018년 4월 중국 관광객 32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평양에 출장을 갔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중국인들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항간에 쭉 퍼졌습니다. 김정은이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에 달려가 시진핑을 만나고 귀국했던 시기였습니다. 그 직후 중국 정부가 6.25전쟁 시기 참전했던 중국인민지원군 연고자들을 관광단으로 조직해 북한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교통사고가 발생해 32명의 사망자가 났으니 김정은이 난처해졌습니다. 한마디로 양자관계 개선을 위해 북한관광을 주동적으로 조직한 시진핑을 볼 면목이 없게 되었지요. 김정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아무 죄도 없는 조선금강개발총회사(KKG) 총사장(인민군 소장)과 정치부장(대좌), 보위부장(대좌)을 즉각 처형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후 이들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관광을 주도한 회사가 KKG 소속이거든요. 교통사고가 난 곳이 황해북도의 도로였는데 경사가 급하고 커브가 심한 굽인돌이 구간이었다고 합니다. 보슬비가 내리는 날씨에 날이 저물던 때였습니다. 보슬비가 내려 미끄러운 데다가 굽인돌이 구간을 돌다 보니 덩치 큰 대형버스가 균형을 잃고 한 쪽으로 쏠렸다고 합니다. 속도도 제어할 수 없을 정도여서 그대로 차가 도로 밖으로 굴러 떨어졌다고 합니다. 심한 부상을 입은 4명을 제외하고는 관광객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물론 운전수도 사망했습니다. 그 후부터 관광과 관련돼 가이드 매뉴얼이 생겼는데, 비가 올 때에는 절대로 관광객들을 태운 버스가 다닐 수 없다는 조항도 있다고 합니다.

[진행자]네. 잘 들었습니다. 다음 이 시간에는 북한 고위급 인사들 가운데 교통사고로 숨진 이들이 실제 교통사고에 의해 숨진 것인지, 아니면 일각의 주장처럼 '암살'을 당한 것일지에 대한 이야기를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로부터 들어보겠습니다. 류현우의 블랙북스, 다음 시간에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대사님 감사합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