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류현우의 블랙북스, 진행을 맡은 목용재입니다. 지난해 해외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외에도 시리아 독재 정권의 몰락이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는 북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 같은데요. 시리아 주재 외교관으로 활동하신 이력이 있는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께서 이에 대한 이야기를 오늘부터 4차례 풀어주실 예정입니다. 시리아 독재 정권의 붕괴 과정 및 북한과 시리아 간의 관계 등에 대한 뒷 이야기를 류현우 전 대사대리로부터 들어보겠습니다.
[진행자]먼저 청취자 여러분께 지난해 말 시리아 독재정권이 어떻게 무너지게 됐는지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류현우]제가 시리아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 2010년이었는데요. 2013년까지 이 나라에서 북한 대사관 2등서기관으로 근무했습니다. 당시 제가 담당했던 업무는 시리아 외무성과의 업무, 영사업무, 정세연구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청취자 여러분들께 최근 시리아에서 벌어지는 사태에 대해 설명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제가 시리아에서 근무할 때인 2010년 12월 17일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이 중동의 독재국가들을 휩쓸었습니다. 이로 인해 튀니지, 리비아, 이집트, 예맨의 독재자들이 차례대로 추락했습니다. 그리고 2011년 3월 ‘아랍의 봄’의 불길은 시리아 전역으로 번져갔습니다. 소도시 다라에서 10대 소년들이 장난삼아 담장에 써놓은 낙서가 시리아 내전의 발화점이 됐습니다. “이젠 당신 차례야, 의사 선생!”이라는 낙서 때문에 마을의 소년들이 비밀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함자’라는 13세 소년이 집 앞에 주검으로 발견됐습니다. 소년의 온 몸에는 몽둥이로 두들겨 맞은 고문 흔적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아사드 가문의 독재에 쌓이고 쌓였던 주민들의 분노와 울분이 드디어 폭발했습니다. 주민들을 탄압하라고 출동시킨 군인들이 주민들의 편에 합세해 반군이 되면서 정부 군에 대항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시리아 내전은 종교, 문화, 부족 등 사회 정치적 요인들과 외부세력의 간섭에 의해 13년동안 대리전의 양상을 띠고 지속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HTS(시리아해방기구, Hayat Tahrir Al-Sham), 시리아민주군, 시리아자유군, 시리아민족군 등 많은 반군 조직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습니다. 그러다가 지난해 12월 8일 아흐메드 알샤라가 이끄는 HTS가 수도 다마스쿠스를 함락했습니다. 총공격을 개시한지 11일만에 알레포, 홈스, 하마 등 대도시들을 함락했고 수도 다마스쿠스에 입성했습니다. 이로써 13년 간에 걸친 시리아 내전은 일단락됐습니다. HTS는 이슬람교 근본주의에 뿌리를 둔 수니파 무장단체로 2017년에 조직됐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조직이 알카에다와 연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알샤라는 알카에다와의 관계를 지난 2016년 끊었다고 주장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HTS를 테러단체로 지정하고 알샤라에 대한 수배령 및 현상금 1,000만 달러까지 걸어놨습니다. 하지만 HTS가 다마스쿠스를 장악한 뒤 지난해 12월 20일 미 국무부 대표단과 알샤라와의 회담이 이뤄지면서 수배령과 현상금은 해제됐습니다. 다만 테러단체 지정 철회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슬람교 근본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는 HTS의 차후 행보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진행자]시리아의 독재가 드디어 막을 내렸는데요.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는 현재 어떤 상황인가요?
[류현우]지난해 12월 8일 반군의 다마스쿠스 입성과 함께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는 러시아 모스크바로 망명했습니다. 시리아의 독재자인 바샤르 알아사드가 러시아로 도망가면서 13년 간 지속됐던 시리아 내전이 11일만에 종료됐는데요. 그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면 그의 아버지 하페즈 알아사드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 합니다.
하페즈 알아사드는 시리아에서도 소수파인 이슬람교 시아파에 속해 있었습니다. 1940년대 중동에서는 군인이라고 하면 목숨을 내놔야 하는 극한직업으로 인식됐기 때문에 대부분 힘없고 가난한 집 자식들이 입대하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골 농촌마을 출신 하페즈 알아사드도 군대에 입대했습니다. 1950년대 하페즈 알아사드는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했고 졸업 후 공군 전투기 조종사가 됐습니다. 그는 1960년대 시리아 바트당의 주요 직책에 올랐고 공군 사령관을 거쳐 국방상으로 승진했습니다. 1970년 11월 13일 무혈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1971년 3월 하페즈 알아사드는 대통령으로 취임했고 이때부터 2024년 12월까지 53년간 알아사드 가문이 세습독재를 유지해왔습니다.
하페즈 알아사드의 후계자로는 맏아들 바셀 알아사드가 지명돼 있었습다만, 군사대학을 졸업하고 시리아군 중령으로 복무하던 그가 1994년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하페즈 알아사드는 영국에 거주하던 차남 바샤르 알아사드를 불러들였습니다. 그때부터 바샤르는 후계자 수업을 본격적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시리아로 귀국해 홈스에 있는 군사대학에 들어가 군 경력을 쌓았습니다. 2000년 아버지 하페즈 알아사드가 심장마비로 사망한 후 바샤르 알아사드가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당시 주목해야 할 점은 바샤르가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시리아 국회가 헌법을 뜯어고쳤다는 것입니다. 시리아 헌법에는 40세 이상의 공민이 대통령을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었습니다. 당시 바샤르 알아사드의 나이가 만 34세였기 때문에 헌법을 수정했던 것입니다.
[진행자]대사님 설명으로 시리아 내전의 경과와 시리아 독재자들이 어떤 인물이었는지에 대해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시리아 독재정권이 무너지면서 북한 외교관들이 대피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들의 상황은 현재 어떨 것으로 예상하십니까?
[류현우]관련 보도에 따르면 시리아 주재 북한 대사관 성원들이 지난해 12월 8일 러시아 비행기를 타고 철수했습니다. 그런데 북한 대사관 외교관들이 모두 빠져나갔는지, 혹은 일부가 남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습니다. 제가 시리아에서 근무하던 2012년 8월에도 대사관 철수와 관련한 지시가 있었습니다. 당시 반군은 여러 지방도시들을 점령하고 수도 다마스쿠스로 진격해왔습니다. 반군이 수도 다마스쿠스에 대한 군사작전을 벌일 때 북한 대사가 일부 직원들과 가족들의 철수를 결심하고 평양에 이를 요청했지만 대사관 철수와 관련한 승인이 부결됐습니다. 대사관의 일부 문건들을 소각하고 중요 기요문건들은 러시아와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관 앞으로 이송하라는 지시만 내려왔습니다. 당시 대사와 외교관들이 "사람이 기본이지, 짐부터 옮기라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분노했고 아이들을 포함한 가족들 만이라도 귀국시켜 달라고 강하게 요청했습니다. 당시 다마스쿠스에 상주하던 대부분의 대사관들은 내전이 장기화되면서 전부 철수했고 중국, 러시아 등 큰 나라 대사관도 가족들을 전부 철수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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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다른 나라 대사관들은 철수하는데 북한 대사관 인원들만 귀국을 못했으니, 당시 나라에 대한 실망감이 컸을 것 같습니다.
[류현우] 네 그렇습니다. 국민의 생명을 책임져야 할 국가는 사람이 죽든, 말든, 상관도 하지 않았고 대책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시리아 주재 북한 대사가 현지 중국 대사와 러시아 대사를 긴급히 만나 유사시 북한 대사관 성원들과 가족들을 중국, 러시아 대사관으로 피신시키는 안을 합의했습니다. 당시 대사관 철수를 반대하며 업무 정상화를 지시했던 북한 당국이 이번에는 러시아 비행기로 대사관 직원들을 뽑은 것을 보면 이는 북한 당국이 아닌 러시아 정부의 제안이 강력히 작용한 결과로 봅니다. 현재 긴박하게 돌아가는 시리아 정세에 대처하여 러시아가 북한 당국에 바샤르 알아사드가 몰락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것을 알렸고 필요하다면 북한 외교관들을 구출해 러시아 비행기로 모스크바까지 데려오겠다고 제안했을 것입니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북한 병사들을 파병한 데 대한 러시아의 대가성 사의 표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행자]시리아에 북한 외교관 외에도 어떤 사람들이 있었다고 봐야 할까요?
[류현우] 제가 시리아에서 근무할 때는 외교관뿐 아니라 군수공업부문에 종사하는 인원들이 많았습니다. 노동당 군수공업부 소속 조선광업개발총회사(KOMID)가 운영하는 미사일조립공장, 다연장로켓포공장 등에서 종사하는 기술자, 기능공들도 50여 명 정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미국 등 서방국가 정보국에 노출되지 않으려고 항공편도 러시아와 시리아 항공을 이용했습니다. 기술자, 기능공들은 평양-블라디보스토크-모스크바-다마스쿠스 항로로 시리아에 입국했습니다. 그 외에도 정찰총국 소속 해외첩보원들도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시리아는 중동지역의 중점국가로서 이곳에 상주하는 북한인들이 많았습니다. 문제는 이 사람들이 이번에 빠져나갔는가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이들은 지역별로 흩어져 일했기 때문에 서로가 탈출했는지 여부를 모를 겁니다. 더욱이 시리아 반군인 HTS가 알레포를 점령한 지 1주일만에 홈스, 하마를 거쳐 다마스쿠스에 입성했습니다. 손쓸 새도 없이 다마스쿠스가 함락되다 보니 바샤르 알아사드도 부랴부랴 러시아 비행기를 타고 달아난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동생 마헤르 알아사드는 레바논 혹은 이라크로 빠져나갔는지, 행방이 묘연하다고 합니다. 시리아에 상주하고 있던 북한인들이 러시아 비행기를 타고 빠져 나갔는지는, 아니면 아직 시리아에 남아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진행자] 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류현우의 블랙북스, 다음 이 시간에는 북한과 시리아의 관계와 관련한 뒷 이야기를 류 전 대사대리께서 풀어주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