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당 간부들에게] 첨단 전자정보통신 시대에 60년대식 투쟁정신 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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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간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주 22일은 구정, 설날, 전통적인 우리의 명절이었습니다. 당 간부 여러분은 작년 연말에 개최되었던 8기 6차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정을 이행하기 위한 실천방안 수립에 여념이 없었을 것입니다.

당 간부 여러분! 본방송자는 1월 1일 로동신문에 게재된 8기 6차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기사와 지난 2~3주간 조선중앙방송의 보도내용을 읽으면서 ‘그동안 우리들, 해외 북한 관찰자들의 평가가 크게 빗나가지 않았구나’하는 생각을 합니다. 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 600mm방사포, 화성17형 등등 연간 수천만, 수억 달러의 귀중한 자금을 하늘로 날려 보내면서 무슨 여유가 있어 인민경제 생산·건설목표를 완성할 수 있겠습니까? 농업에 대한 투자, 전기화, 기계화, 수리화 등은 고사하고 필요한 비료조차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면서 더구나 코로나19방역을 빙자하며 통상적으로 매년 동원하던 도시주민, 청년들의 농촌 돕기 노력동원도 제대로 못했는데 작년의 식량생산을 기약한 경제생산, 건설목표가 제대로 달성되었겠습니까? 그러니 김정은의 사업총화 보고는 구체적인 실적을 내놓을 수 없었고 그저 핵·미사일·방사포 발사로 군사강국 건설에서 큰 진전이 있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당 간부 여러분! 지난 1년간은 그렇다 하더라도 금년 한 해 동안은 어떤 방향으로 무슨 방법으로 8차 당 대회 결정 수행을 위해 나갈 것인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본방송자는 김정은이 사업총화보고에서 언급한 다음과 같은 말을 주목합니다. “총비서 동지께서는 인민경제의 성과적 발전에서 중요한 핵심부분 로동계급과 과학자, 기술자들이 다시금 1960년대, 70년대의 투쟁정신과 기치를 높이 들고 혁명의 난국을 우리 힘으로 타개해 나갈 것을 열렬히 전투적으로 호소했다”

이 말은 김정은 자신이 “김일성 시대인 1960년대, 1970년대 자력갱생으로 외국의 도움 없이 기술신비주의를 격파하고 경제발전과 국방건설을 동시에 달성하지 않았는가?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는 지금이야 말로 50년 전 선대들이 택했던 그 방법, 자력갱생방법을 따라 외국의 기술에 의지하지 말고 경제생산과 건설, 핵·미사일 생산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려나가자”는 얘기지요. 당 간부 여러분은 1960년대, 1970년대 여러분 당이 직면했던 국내외 상황을 제대로 알고 있습니까? 당시 상황은 오늘날 여러분이 처하고 있는 상황과는 판이 달랐습니다. 김일성이 1961년 4차 당대회, 경제 7개년 경제계획과 국방건설병진을 결의했던 그때는 공산주의 내부의 분열이 극심했던 시기입니다.

1956년 2월에 개최되었던 소련공산당 20차 당대회는 핵전쟁이 몰고 올 위협을 인식하고 미·소간의 평화공존을 소련공산당의 새로운 대회노선으로 채택함과 함께 스탈린이 범했던 개인숭배사상과 공포정치가 몰고 온 폐악을 청산하고 이른바 스탈린 격하를 공식 결정하였습니다. 문제는 이 소련공산당의 새로운 노선을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일반노선으로 채택할 것인가를 놓고 중국공산당 모택동 주석의 반발이 일어나,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일대 위기가 조성되었던 시기였습니다. 중·소간 이데올로기 논쟁이 들어서자 소련과 중공간의 국가 간 무력분쟁으로 발전했으며 1966년에는 중국공산당에서 그 천하대란이라는 ‘문화대혁명’으로 발전했던 시기입니다. 이런 중·소간의 대립을 이용하여 조선로동당은 우선 소련 편향의 노선에서 탈출할 수가 있었고 중공의 문화대혁명을 계기로 중공의 간섭으로부터 당시 여러분 당은 지금이야 말로 소련이나 중국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이른바 사상에서의 주체, 정치에서의 자주, 경제에서의 자립 그리고 군사에서의 자위라는 노선전환을 채택했습니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 소련이나 동유럽사회주의 국가 그리고 중국공산당으로부터 받았던 자원과중소 이데올로기 대립을 이용한 독립노선, 베트남 전쟁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계속 받을 수 있어서 여러분 당의 경제 생산의 여력은 어느 정도 남아있었습니다. 특히 당시의 남한은 6.25전쟁의 후과를 극복하지 못해, 북한의 경제적 우위가 확실했습니다. 물론 당시 북한인민들은 오늘의 김정은 세습정권과 같은 김씨 봉건왕조체제가 형성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당이 주장하는 이른바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을 현실처럼 믿었던 시기입니다. 특히 북한의 남한에 비한 경제적 우위를 믿고 이른바 3대혁명역량강화로 남조선 혁명이 가능하리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만큼 희망이 있었다는 얘기죠.

당 간부 여러분! 당시 김일성의 트랙터 생산과 관련한 일화를 여러분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자체적으로 트랙터 생산을 지시했고 시제품이 나왔다고 하여 시운전해봤더니 이 트랙터가 앞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뒤로 나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김일성이 “뒤로 가는 트랙터를 생산했는데 보다 쉬운 앞으로 가는 트랙터 생산을 못할 이유가 없다”고 기술자들을 격려하였다는 바로 이 얘기입니다. ‘소련의 기술지원을 받지 않고 북한 기술자들의 소련제 트랙터를 분해하여 독자적인 연구로 트랙터 생산이 가능했다. 이런 식으로 외국의 과학기술을 숭배하는 기술신비주의를 청산하여 자력갱생적 경제성장이 가능함을 김일성이 몸소 보여주었다. 지금 우리도 그때의 김일성과 못지않은 김정은은 모시고 있으니 유엔을 비롯한 외부의 경제제재를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김일성이 주장했던 경제발전은 생산자, 근로대중의 물질적 자극이 아닌 정신적 자극에 의해 추동된다’는 저 낡은 도그마에 의지하자는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당 간부 여러분! 김일성 시대는 아직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이 가시지 않았던 시대라면 지금은 이미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이 사라진 시대입니다. 오늘날 북한의 청소년들은 사회주의로 세뇌되었지만 실제로 사회주의의 혜택을 받지 못한 세대입니다. 사회주의는 박물관에 전시되어야 할 허구임을 명백히 인식한 세대입니다. 이들에게 1960년대, 1970년대의 당 노선을 제시한들 그것을 믿겠습니까? 지금은 디지털시대, 새로운 전자통신정보시대, 새로운 문명이 지배하는 시대임을 당 간부 여러분이 인식해야 합니다. 전체주의, 사회주의 사상을 청산하고 개혁 개방의 길로 나가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만이 경제발전의 새로운 길을 열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인식하기를 강조하는 바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강인덕,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