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당 간부들에게] 무엇을, 누구를 위한 애국인가

지난 2017년 북한 정부 성명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청년전위들, 노동계급과 직맹원(직업동맹원)들의 집회.
지난 2017년 북한 정부 성명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청년전위들, 노동계급과 직맹원(직업동맹원)들의 집회.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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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간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주 남한에서는 3.1 독립운동 104주년을 맞이하여 전국 곳곳에서 성대한 기념행사를 거행하며 민족사랑, 나라사랑의 애국심을 일깨우는 각종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일본제국주의 침략으로 국권을 침탈당하고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민족은 국권회복을 위한 의병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지만 힘의 열세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진압되었고 이를 계기로 일제는 무단정치로 민족문화를 말살하고 경제수탈을 자행하며 조선인민을 빈곤의 늪으로 전락시켰습니다. 조선조 후기부터 성장하기 시작했던 민족자본은 1910년 일제가 실시한 회사령으로 큰 타격을 입어 몰락했고 특히 1910년부터 1918년까지 실시한 토지조사사업으로 인해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토지를 빼앗긴 농민들은 보따리를 싸매고 만주로 유랑의 길을 떠나던가 아니면 도시의 임금노동자가 되어 일제자본의 착취대상이 되었습니다. 나라 잃은 서러움이 뼛속깊이 스며들던 1910년대 바로 그때 미국 윌슨 대통령이 제1차 세계대전의 전후처리를 위해 발표한 선언이 바로 14개조 평화원칙이었고 이 평화원칙 중 하나가 바로 ‘민족자결원칙’이었습니다. 이 민족자결원칙은 식민지 통치하에 신음하던 조선민족에게 더없이 큰 희망이고 밝은 서광이 되었습니다.

조선의 선각자, 지식인, 종교지도자들은 이 민족자결원칙의 실현을 주장했고 3.1독립운동의 횃불을 들게 되었습니다. 천도교, 기독교, 불교의 종교지도자 33인이 결집하여 독립선언서를 채택하고 서울을 비롯한 평양, 진남포, 선천, 안주, 의주, 원산, 함흥, 대구 등 전국 방방곡곡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이러한 3.1 독립만세운동은 조선민족뿐만 아니라 중국의 지식인과 청년들을 독려하여 저 유명한 ‘5.4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3.1 독립만세운동은 일제의 경찰과 헌병에 의해 무참히 진압되었습니다. 당시 조선총독부의 통계에 의하면 전국에서 1,542건의 항일집회가 개최되어 203만 3,098명이 참가했고 일본 경찰과 헌병의 총탄에 맞아 7,509명이 순국하고 1만 5,961명이 부상당했으며 4만 6,948명이 검거, 투옥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독립만세운동으로 불타버린 교회가 47개소, 학교가 2개교, 민가 715동이었다고 합니다.

당 간부 여러분! 북한에서 출간한 역사서적에는 3.1 독립만세운동에 대해 김일성과 같은 민족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에 손쉽게 진압되었다고 비하하고 있지만 당시 김일성은 7살의 어린이였습니다.

과연 3.1 독립만세운동은 그처럼 실패한 독립운동이었는가? 아닙니다. 이 3.1운동을 계기로 상해임시정부가 탄생하였고 시베리아, 민주, 미주 각지에서 항일독립운동조직, 무장투쟁조직이 무어졌습니다. 내 한몸 바쳐 나라의 독립을 되찾겠다는 결의에서 무장투쟁, 문화투쟁, 사회·언론 투쟁이 전개되었습니다. 또 민족문화를 선양하기 위한 계몽운동, 민족경제발전을 위한 국산품애호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습니다. 수많은 민족학교가 전국각지에 세워져, 새 민족 일꾼 양성이 활발히 진행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1920년대 조선공산당도 창당되었고 그 후 1930년대 만주에서의 중국공산당과 연합하여 전개한 항일빨치산활동 등이 모두 3.1운동에서 발휘한 항일투쟁의 열기에 의해 촉진된 것입니다. 한마디로 3.1 독립운동은 애국운동의 최정점을 기했다고 할 것입니다.

당 간부 여러분! 이런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본 방송자는 지금 여러분 당이 외치는 애국운동에 대해 유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금년에 들어와서 개최된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비롯해서 여러분 당은 여러 집회에서 여러 가지로 애국심의 발동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국가부흥발전의 강력한 추동력인 사회주의 애국운동을 활발히 조직하고 옳게 이끌어가자”, “위대한 우리나라의 부강발전은 애국운동으로 이룩하자”, 이렇게 ‘애국’이란 말을 사상사업에서 뿐만 아니라 강군건설, 경제건설, 각종 문화사업 전반에 널리 제기하고 있습니다.

왜 금년에 들어와 이처럼 애국심, 애국운동을 강조하는가? 그 이유는 바로 현재 여러분 당이 처한 국내외정세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주체사상이니 계급투쟁이니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이니 하는 구호로는 더 이상 오늘의 긴박한 정세를 극복할 수 있는 인민대중의 추동력을 이끌어낼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른바 적대세력 미국, 일본, 남조선뿐만 아니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까지를 모든 적대세력으로 규정하고 이들과의 싸움이라는 명분으로 인민들의 고혈을 짜내려는 것, 이것이 애국을 강조하는 본심이 아닙니까?

그러나 당 간부 여러분! 애국심의 원천은 나를 키워준 향토에서 싹튼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나를 키워준 고향, 이곳 이 향토를 사랑하기에 이곳을 지켜야 하고 나아가 넓은 의미에서의 향토, 나라를 지키자는 신심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북한 주민들은 ‘나를 키워준 이 땅에서는 앞으로 나는 존재할 수 없다’, ‘이 땅에선 빈곤과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땅에선 공포와 감시로 인해 나의 자유와 권리가 완전히 박탈당해 더 이상 나의 생과 장래를 보장할 수 없다’고 판단될 때는 나를 키워준, 사랑하는 향토를 떠날 수밖에 없지요. 마치 일제 강점기, 토지를 잃은 농민들이 유랑민의 신세가 되어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었던 그때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처지의 사람들에게 애국이니 애국심이니 하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당 간부 여러분! 고난의 행군시기를 거치면서 수십만의 북한 인민이 향토를 떠나 만주와 시베리아로 나갔고 그 중 중국대륙을 남하해서 3만 6천여 명이 동남아시아의 라오스, 윁남(베트남), 태국, 캄보쟈(캄보디아) 등을 거쳐 남조선으로 왔습니다. 지금도 중국대륙과 러시아에는 10만여 외화벌이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코로나의 만연으로 북한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렇다고 중국대륙을 벗어나 남쪽으로 내려올 수도 없으니 유랑민의 처지로 남아있습니다. 과연 이들에게 북한의 향토를 사랑하는 애국심을 발휘하라고 한들 그 말이 통하겠습니까? 계급투쟁, 수령에 대한 충성심, 사회주의 수호 등의 구호보다 인민대중의 감정에 호소하는 데는 ‘민족’이니 ‘애국’이니 하는 용어가 보다 자극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애국의 본원이 향토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무엇보다 먼저 나를 낳아 키워준 고향땅에 남아야 한다는 신심이 유지되도록 해야 합니다.

빈곤과 굶주림, 공포와 통제와 감시, 자칫하면 상호비판의 당사자가 되어 심한 정신적, 신체적 강압에 시달리는 그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변화된 환경을 조성해야만, 여러분 당이 원하는 인민대중의 애국심이 발동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말로만 인민대중제1주의가 아니라 진정으로 내 나라가 제1이라는 심정을 각자가 가질 때 진정한 애국심이 발동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강인덕,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