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간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틀 전 우리는 일제식민지 억압에서 해방된 8.15광복 77주년을 맞이하여 국경일의 성대한 행사를 거행한 바 있습니다. 1910년 일본제국주의 침략자에게 국권을 찬탈당한 후 우리 민족은 간단없이 크고 작은 항일독립운동을 국내외에서 전개했습니다. 특히 1941년 12월 일본제국주의 군대가 미국의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여 태평양전쟁을 일으키자 해외에서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던 민족주의세력은 즉각 대일 선전을 포고했습니다. 미국에서 독립운동에 전념하던 이승만 박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미위원회 대표자격으로 미 국무성에게 조선인에 대한 재정원조와 무기지원을 요청하고 본격적인 대일전쟁 참여를 요구했고 중국 중경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1년 12월 9일 대일선전성명을 발표하고 “한국 전 인민은 현재, 이미 반 침략전선에 참가하였으니 한 개의 전투 단위로써 일본, 독일에게 선전한다. 한국, 중국 및 서태평양으로부터 왜구를 완전히 구축하기 위하여 최후의 승리를 얻을 때까지 혈전한다”고 선언하고 중국군과 함께 대일작전을 전개했습니다.
그러나 1930년대 기간 중 중국 동북3성에서 중국공산당과 함께 항일연군을 편성하여 일본군과 싸우던 조선인 좌익세력은 만주주둔 관동군의 소탕작전에 완전 패배하여 1940년대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지리멸렬 상태, 아무르강을 건너 시베리아 연해주로 도망하여 중국공산당 간부인 주보중(周保中)을 대장으로 하는 소련극동군사령부 예하 88특수여단 즉 첩보부대에 소속되어 사상교육과 군사교육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하바롭스크 근교 야츠크 근방에 모여 있던 88특수여단 소속 빨치산 출신은 중국인, 몽골인, 조선인 등 남녀 합 200명 내외였고 그 중 조선인은 50여 명이었습니다. 바로 김성주(김일성) 최현, 최용건, 김책, 김일 등이었는데 이들은 1945년 8월,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여 일본의 패배가 명백해지던 시기까지 3~4년 동안 소련극동군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대기 중에 있었을 뿐입니다. 1945년 8월 8일 소련이 일본과의 중립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대일전쟁을 선포한 그때까지도 소련군의 출동명령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8월 8일 소련군이 두만강을 건너 함경북도 경흥일대로 진격했고 8월 10일에는 응기를 점령했으며 8월 12일에는 나진과 청진에 대한 상륙작전을 전개했는데 이때까지 조선인으로 소련군의 일원으로 이 상륙작전에 참가한 사람은 딱 1명, 일반병사인 정율 즉 정상진 선생뿐이었습니다. 8월 15일 일본이 연합군이 내놓은 무조건 항복에 응할 그때까지 하바롭스크에 주둔하고 있던 88특수여단 소속의 빨치산들은 그저 명령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88 특수여단 소속 빨치산들은 어느 한 사람도 대일군사작전에 직접 참가하여 싸운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8월 15일 일본이 포츠담선언을 수락하고 무조건 항복하며 38도선을 사이에 두고 조선주둔 일본군을 무장 해제시키고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이 일본군의 항복을 받던 9월 2일, 도쿄만의 미주리함상에서 일본정부와 일본 군대표가 무조건 항복문에 서명하던 그때까지 김일성을 비롯한 최현, 최용건, 김책 등은 터널이 무너지고 다리가 끊겨 이동하지 못한 채 여전히 하바롭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 일대에서 대기 중이었습니다. 그런 중에 이들은 9월 중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푸가초프라는, 어선을 개조한 함선을 타고 음력 추석 전날, 9월 19일 소련 국적의 고려인 리동화 소좌의 지휘 하에 원산으로 입북했습니다. 8.15 해방이후 1개월이 지난 시점, 소련군이 일본군과의 작전에 돌입했던 시기에는 단 한방의 총도 쏴보지 못한 이들이 무슨 큰 전승자인 냥 북한 땅 원산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당 간부 여러분! 이것이 역사적 진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 당사는 마치 김일성이 조직한 조선인민혁명군이 김일성의 진격명령 하에 조국에 진격하여 일제를 타도하고 우리민족의 해방을 가져 온 듯이 역사를 날조하고 있습니다. 간략히 여러분 당의 “조선로동당 약사”를 인용하겠습니다. 이 책의 186쪽과 187쪽을 보면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1945년 8월 9일 김일성 동지는 조국해방을 위한 최후 공격작전명령을 내리시었다.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은 총 공격으로 넘어갔으며 대일전쟁에 참가한 소련군대와 긴밀한 연계를 취하면서 힘차게 진격하였다...... 적들의 <난공불락의 방어선>이라고 떠들던 국경요새들은 아군의 드센 공격에 의해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아군부대들은 일거에 두만강을 도하하여 경흥일대와 경원일대로 진격하였으며 곧 넓은 지역을 해방하였다. 일부부대들은 응기, 라진, 청진에 상륙하여 전투 활동을 확대하였다”고 쓰고 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언제 무슨 부대가 동원됐는지 전혀 기록이 없습니다.
이 책에 기술한 ‘조선인민혁명군’이란 정말로 존재했는가? 아닙니다. 허구입니다.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187쪽을 보면 “여러 방면에서의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의 작전전반을 조직하시는 한편, 우리나라의 산악지대들에 낙하산 항공특수전대들을 출동시킬 준비를 다그쳤다. 그러나 일제는 조선인민혁명군의 조국해방작전이 개시된 지 1주일밖에 안되는 1945년 8월 15일 황급히 무조건 항복을 선포하고 말았다”라고 적혀있습니다.
당 간부 여러분! 그러나 이 말은 참으로 웃기는 얘기입니다. 참으로 황당하기 짝이 없는 역사날조입니다. 아마도 이런 역사날조를 전적으로 기획한 자는 다름 아닌 김정일로 생각되는데 이런 식으로 진실이 감춰지겠습니까? 이미 소련군의 자세한 작전일지가 공개되었습니다. 소련이 펴낸 대일전쟁, 만주에서 일본최강의 작전부대 즉 관동군과의 전투에 대해서는 역사책으로 뿐만 아니라 여러 편의 영화로도 제작되었습니다. 본 방송자도 소련군의 작전사, 참전자의 개인기록들을 갖고 있습니다.
당 간부 여러분! 역사는 속일 수가 없습니다. 김일성이 “조선인민혁명군에 조국진격명령을 내렸다느니 심지어 항공특수작전을 계획했다느니 하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임을 당시의 참전 조선인(고려인)들의 증언과 소련군 전사를 통해 자세히 알 수가 있습니다. 더 이상 여러분 당 역사를 날조하지 마십시오. 낯 뜨거운 역사날조로 외부세계의 북한연구자들은 물론, 젊은 세대들을 속일 수 없습니다. 지금은 컴퓨터 시대입니다. 모든 역사적 사건은 컴퓨터를 열면,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시대입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 세습 봉건 왕조의 안전보장은 이런 역사날조 방법으로 유지될 수 없습니다. 8.15해방에 대한 올바른 교육을 실시할 것을 강조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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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덕,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