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간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주전 8.15해방 77주년을 기념하여 본방송자는 역사적인 진실이 무엇인가를 말씀드렸습니다. 1945년 8월 소련이 일본과 맺은 중립조약을 일방적으로 깨고 8월 8일 대일선전을 포고하며 만주와 조선반도로 진격해올 때 김일성은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 여러분의 당사와 조선전사를 보면 마치 김일성이 조선인민혁명군에게 조국에 대한 진격명령을 내리고 8.15해방을 그의 힘으로 가져온 것 마냥 기술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정상진 선생의 청진상륙작전 참가 전기는 그 말이 얼마나 거짓인가를 명백히 입증하고 있습니다.
정상진 선생은 1945년 8월 당시 소련군의 청진상륙작전이 전개될 때 소련군의 일원으로 이 상륙작전에 참가한 유일한 조선인입니다. 해방 후 북한에서 문화선전성 차관으로 근무하다가 1957년 숙청되어 소련으로 귀국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정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1945년 3월, 소련해군의 초병이 된 나의 희망대로 나는 태평양 소련군 해병중심인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그리고 8월 8일 커다란 군함에 올라탔고 다음날 북한의 청진 앞바다에 도착했다. 다음날 5시경 상륙정으로 갈아타고 육전대 지휘관 중좌의 지휘에 따라, 87명이 청진에 상륙했으며 점령목표지를 향해 청진 시내를 돌파, 곧 뒷산을 점령하고 나니 87명의 대원중 52명이 남았는데 이 전과로 인해 군지휘관과 정치지휘관 2명은 레닌 훈장을, 다음 38명은 적기훈장을, 나머지 12명은 적성훈장을 수여받았다. 나도 이 명령에 따라 적기 훈장을 수여받는 영예를 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정 선생은 또 9월 19일 원산에서 김일성, 최용건, 김책 등 88특수여단에 소속되었던 빨치산 출신들을 맞이했던 얘기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8월 9일 육군에게 점령임무를 맡기고 청진에서 철수한 소련해병대는 이미 다른 해병부대가 점령한 원산에 8월 11일 상륙했다. 원산에 상륙하며 1개월여 동안 주둔하던 가운데 해군 중위로 승진한 나는 원산 경무부 위술 사령부 책임통역관으로 임명되었는데 9월 어느 날 평양주재 소련군 25군사령부로부터 88특수여단에 소속되어있던 조선인 빨치산 출신들을 영접할 준비를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1945년 9월 19일 오전 11시경이 되자 소련화물선 푸가초프 호가 원산부두에 접근했고, 내리는 사람 중엔 나이도 있고 위신 있게 보이는 리동화 소좌도 있었으며 김일성 대위, 최용건 대위, 김책 대위도 있었다”라고 했습니다. 소련군이 일본군과의 치열한 전투에 들어갔던 8월 8일부터 8월 15일까지 총 한 방 쏘지 못했던 김일성 일행이 전쟁이 끝난 지 1개월이 지난 9월 19일 원산으로 입북, 북한 땅을 밟던 모습을 이렇게 기술했던 것입니다.
당 간부 여러분! 김일성이 조선인 혁명인민군에게 조국진격을 명령하고 이들에 의해 해방을 가져왔다는 거짓, 헛소리를 적나라하게 입증하는 또 한명의 증인을 소개하겠습니다. 아마도 6.25남침전쟁에 참전했던 노병들은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는 분, 유성철 선생입니다. 6.25전쟁 당시 유성철 선생은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작전국장 겸 부총참모장이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유성철 선생은 1941년부터 1943년까지 소련군 정찰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하바롭스크 근방 뱌츠코예에서 소련극동군 제2전선사령부 산하 정찰국에 속한 88특수보병여단에서 정찰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전쟁이 끝나 88특수여단이 해체되고 이 부대원들이 각자 자기 조국으로 돌아갈 때 유성철 선생은 조선인으로 김일성, 김책, 최용건 등과 함께 1945년 9월 19일 원산으로 입북한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러니 어느 누구보다 김일성을 비롯한 항일 빨치산 출신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분입니다. 유성철 선생은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군 수송선 푸가초프호를 타고 9월 19일 원산항에 상륙했다. 그날이 바로 8월 추석날이었다. 원산시인민위원회의 초청을 받아 8월 추석행사차 시공설운동장으로 가기 앞서 김일성은 우리를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다. ‘동무들! 혹시 사람들이 김일성을 보았는가 물으면 우리는 선발대가 되서 보지 못했다. 그분은 뒤이어 올 것이다. 또 연세를 물으면 보지 못해 모른다고 답하시오’ 김일성의 당부는 거듭됐다. 이것이 조국 땅에서 했던 김일성의 첫 교시였다. 김일성의 말을 듣고 밖으로 나오자 최용진이 ‘나는 잘 모른다!’ 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렸으나 나는 그때 그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나중에 사상검토를 당할 때,(1958년 8월 중에 종파사건에 걸려 숙청신문 당할 때) 최용진의 그 말을 회상했다. 최용진은 김의 내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최용진의 말은 진짜배기 김일성은 벌써 40이 넘은 용장이며 전투에서도 용감무쌍한 인물이었는데 지금 우리와 함께 온 김성주는 이름을 바꾸어 도용한 가짜 김일성이란 뜻이었다. 김일성은 총 한방 쏘지 않고 조선이 해방된 후 북조선에 귀국했다. 그런데 1973년판 북한의 정치사전 47페이지엔 이렇게 쓰여 있다. ‘1945년 8월, 위대한 수령김일성 동지는 조선인민혁명군부대들이 조국해방성전에 총동원하는 것에 대한 전투명령을 내리셨다’... 이 얼마나 비열하고 파렴치한 날조인가? 북조선 해방은 소련군에 의해서 이미 이루어졌고 남조선은 미군에 의해서 해방된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 아닌가? 그 시기에 김일성은 88여단에서 군정훈련을 받지 않았던가? 이런 자가 그 시기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조선인민혁명군에 어떻게 전투명령을 내릴 수 있는가? 또 어느 때 조선인민혁명군의 군사행동에 조국 내부에서 합세하기 위한, 전면적 봉기의 반일투쟁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는 말인가?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역사를 조작하고 허위 날조하는 일은 김일성의 특기임에 틀림없다”
당 간부 여러분! 다른 사람도 아닌 88특수여단에서 2년 넘게 함께 김일성과 생활했던 바로 유성철 장군, 인민군 총참모부 작전국장 겸 부총참모장으로, 김일성의 오른 팔로 일했던 유 장군의 이 증언이야 말로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외 많은 분들이 김일성 일가의 허위날조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당 간부 여러분은 이런 역사날조로 출생한 오늘의 당 중앙을 정확히 알고 복종, 충성여부를 결정해야 함을 지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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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덕,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