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중석의 북한생각] 시계 바늘 거꾸로 돌리려는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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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지난 15일 평양에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를 열고 올해 추진할 대내외 정책을 확정 발표했습니다. 회의에서 김정은은 북한의 지상 과업은 인민생활을 하루 빨리 안정,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밝히고 아직 인민들의 소박한 생활상 요구 마저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인민의 생활난이 지속되는 상황을 인정하는듯한 발언을 했습니다. 김정은이 잘못된 정책을 반성하고 열악한 북한 내부 상황을 인정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최고인민회의에서 내놓은 향후 북한의 중점 과제를 보면 그동안의 과오에 대한 반성이나 성찰은 주민의 원망을 호도하기 위한 연막전술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정은이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북한경제가 올해부터 비약적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 이유는 러시아와 중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러시아, 중국과의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자본재나 소비재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주민들에게 국가 배급을 재개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작용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습니다. 요즘 새로 조성된 신냉전시대의 국제정치 상황을 잘 이용하면 김씨왕조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제한적이긴 하지만 북한 나름대로 경제발전을 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북한이 러시아와 중국의 지원을 바탕으로 소위 자력갱생의 경제구조를 완성하고 체제유지에 방해가 되는 장마당, 즉 시장경제의 현장을 축소하려는 의도는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채택한 정책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번 회의에서 남북회담과 남북교류업무를 담당해온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국을 폐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남한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남한의 지원으로 난국을 타개해 온 북한이 남북대화와 교류의 창구로 유지해오던 기구들을 폐지함으로써 남한과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입니다.

북한이 이처럼 미국과 국제사회, 남한과의 관계를 무시하면서도 경제회복에 자신감을 보이는 것은 러시아의 경제지원 약속을 철썩 같이 믿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곤경에 처했던 러시아에 무기와 탄약을 제공하고 전쟁물자를 지원해준 덕분에 북한과 러시아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서로 밀착되어 있습니다. 몇일 전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과 면담하고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회담하면서 북-러간 군사∙경제 교류와 협력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심각한 경제난으로 민심이반이 가속화되면서 체제불안을 느끼던 김정은 입장에서는 신냉전시대의 도래와 러시아와의 군사∙경제적 밀착이 주민생활 여건을 개선해 김씨왕조 체제를 유지하는데 좋은 모멘텀, 즉 추진력이 된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북한이 오랫동안 추구해온 대북제제 해제와 미국 및 서구 나라들의 지원이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김정은은 지난 15일 최고인민회의에서 새로운 냉전 시대 분위기에 편승해 북한을 고난의 행군 시대 이전인 1990년대 수준의 독재국가로 되돌리려는 속내를 분명하게 드러냈습니다. 북한은 최근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물품의 종류를 크게 제한하고, 국가가 통제하는 양곡판매소나 백화점을 이용하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일반주민들의 전자카드 사용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북한주민의 생명줄로 작용하고 있는 장마당(시장)의 활성화가 주민들에게 자본주의 이념을 부추긴다고 판단한 김정은은 장마당을 점진적으로 축소, 폐쇄하고 1990년대 이전의 국가계획 경제체제로 돌아가려고 시도하는 것 같습니다.

서민경제를 희생시키는 한이 있어도 체제안정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김정은의 계산법에 따라 북한은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기 전인 1990년대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것입니다. 러시아와 중국의 지원을 최대한 끌어내 인민들이 최소한으로 먹고살 수 있는 배급제를 실시하면서 국가주도형 경제체제로 돌아갈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30~40년전의 노동당 독재 정치를 지금의 북한 주민들이 감내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국제정세는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는 자원대국이지만 석유 등 자원가격 하락으로 경제난을 겪던 와중에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시작해 상당한 피해를 입었으며 북한에 긴급 무기지원을 요청할 정도로 궁지에 몰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러시아가 전쟁이 끝나고 분쟁지역이 안정된 후에도 북한에 경제지원을 계속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또 러시아와 북한의 지나친 밀착관계를 보는 중국의 시선이 그리 곱지만은 않다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북한을 먹여 살리다시피 해온 중국이 지원을 줄이고 러시아가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대북 지원을 중단한다면 북한은 심각한 경제난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대부분의 북한 전문가들은 자유와 인권이라는 세계적인 흐름을 부정하고 북한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한 채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리려는 김정은의 시도가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고 있습니다.

** 이칼럼내용은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