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중석의 북한생각] 북한의 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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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음력 설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남한에서는 2월 9일부터 12일까지 나흘간 연휴가 이어져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거나 국내외로 가족 여행을 떠나는 등 명절 분위기에 휩싸여있습니다. 북한은 음력설을 민속 명절로 지정해 하루만 쉬는 반면 양력설(1월 1일)은 이틀간 공휴일로 지정해 쉬는 등 양력설을 설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주민들은 오랜 기간 양력설을 쇠었고 세배나 차례 같은 것도 모두 양력설에 지낸다고 합니다.

북한의 명절은 소위 사회주의 명절과 설, 추석 등 민속 명절로 구분됩니다. 사회주의 명절은 김씨일가 우상화와 북한체제의 출발과 관련되어 의미 있는 날을 지정해 경축하는 것이고 민속 명절은 남한(한국)과 마찬가지로 조상 때부터 전통적으로 지켜오던 명절 중에서 몇 개를 지정해 기념하는 것입니다. 북한 최대의 명절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생일날, 그리고 북한 정권 출범과 관계된 날들입니다. 1천년 이상 지속되어온 민족 고유의 명절을 젖혀두고 김씨일가 우상화를 위해 난데없는 날들을 가장 중요한 명절로 지정한 것입니다.

북한은 남한처럼 국경일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고 모든 경축 기념일을 명절이라고 호칭하고 있습니다. 북한 최대의 명절로 태양절이라고 불리는 4월 15일은 김일성의 생일이고 광명성절이라며 요란하게 경축하는 2월 16일은 김정일의 생일입니다. 북한 역시 광복절인 8월 15일은 명절로 정해놓고 있습니다. 북한 정권 수립일인 9월 9일, 노동당 창건일인 10월 10일, 북한군 창건일인 4월 25일과 휴전협정 체결일인 7월 27일은 소위 전승기념일이라며 경축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이밖에 국제노동계급과의 연대성을 강조하기 위해 메이데이인 5월 1일과 국제부녀절인 3월 8일을 명절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정권수립 이후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어긋난다며 음력설과 추석을 비롯한 민속명절을 규제하다가 1967년에는 봉건 잔재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김일성의 말 한 마디에 설날 등 민속 명절을 아예 폐지해 버렸습니다. 그러다 동구권 사회주의가 몰락한 후 북한은 별다른 설명도 없이 1980년대 중반 음력 설날과 한식, 단오, 추석 등 민속 명절을 슬그머니 부활시켰습니다.

북한에서 최고의 명절은 북한 정권을 탄생시킨 김일성의 생일, 즉 4월 15일입니다. 김일성의 생일을 ‘태양절’이라고 이름 짓고 한 달 전부터 갖가지 행사를 벌이며 대규모로 경축하고 있습니다. 김정일 생일도 국가 최대 명절의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김일성·김정일의 생일 축하 행사는 두 달 넘게 진행되며 북한 전역이 들썩거릴 정도로 요란하게 치릅니다. 북한은 김정일 생일이 들어 있는 2월부터 김일성의 생일이 들어있는 4월까지를 민족 최대의 명절 축제기간으로 설정하고 예술 공연, 체육행사, 토론회, 전시회 등 각종 행사를 벌입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몇몇 민족 명절을 복원하긴 했지만 만성적인 식량난, 경제난으로 주민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민속명절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다고 탈북민들은 회고하고 있습니다. 남한에서는 해마다 명절 때면 귀성인파나 여행객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민족 대이동이 벌어집니다. 고속도로가 막히고 기차역과 공항은 초만원을 이뤄 한바탕 북새통을 치르게 됩니다. 그러나 경제난에다 이동의 자유가 없는 북한에서는 민속명절 기간에 민족대이동 같은 얘기는 전혀 남의 나라 얘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북한 주민, 특히 어린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명절은 김일성·김정일 생일이라고 합니다. 이 날에는 북한당국이 주민들에게 이틀간의 연휴와 함께 고기, 술, 담배와 어린이들에게 당과류를 특별 공급해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북한의 경제사정이 악화되면서 1980년대 후반부터 점차 배급량이 줄어들다 1990년대 들어서는 특별공급이 무의미하게 되었다고 탈북민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김정은 집권이후 어린이들에게 주던 당과류 공급이 재개되었으나 원료 부족으로 과자의 질이 나빠 어린이들이 외면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북한은 김일성 생일과 김정일 생일인 태양절과 광명성절에는 여러 가지 문화 축제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청소년 10만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집단체조인 아리랑 공연도 애초에 김일성 생일행사로 기획되었다는 것이 탈북민들의 설명입니다. 이밖에도 김일성화 축제, 국제마라톤 대회, 미술 전람회와 각종 체육대회도 열리고 있는데 경제난 때문인지 행사 규모도 줄어들고 우수 참가자에 주는 선물도 양과 질이 크게 떨어져 주민들의 참여의식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민속명절인 설날과 추석에는 하루 휴식(휴무)을 주면서 당국 차원의 행사동원이 없다고 합니다. 주민들은 음력설, 추석 등 민속명절에 가까운 이웃끼리 모여 윷놀이, 연날리기, 제기차기, 팽이돌리기 등 명절 놀이를 하면서 전통적인 명절분위기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새해 1월1일 김일성부자 동상 헌화를 시작으로 행사에 동원되느라 하지 못한 차례나 성묘를 음력설날에 하는 주민들이 많다고 탈북민들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