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중석의 북한생각] 북한의 3.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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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05주년을 맞는 3.1절 기념일입니다. 1919년 3월 1일 우리 민족이 일제에 항거하며 자주독립 의지를 세계만방에 떨친 이후 100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남한(한국)은 이 날을 공휴일인 국경일로 정하고 해마다 의미있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북한도 3.1절을 일제에 저항한 민중봉기의 날로 기념하고 있지만 남한의 3.1절과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왜곡하고 있어 3.1절의 의미를 크게 퇴색시키고 있습니다. 북한의 3.1절은 공휴일이 아니어서 북한주민들이 3.1절을 경축하는 분위기를 찾기 어렵다고 합니다.

3.1절에 대한 북한당국의 교육과 선전내용을 보면 김씨일가가 과연 우리와 같은 민족이 맞나하는 의심이 듭니다. 북한은 3.1 독립만세운동을 실패한 민중봉기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3.1 운동이 실패한 이유가 당과 수령의 영도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당시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의 불견실한 입장과 무저항주의적 정치 투쟁노선으로 인해 이 운동이 실패했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세계사에 기록될만한 비폭력 저항운동을 무력(폭력)을 사용하지 않아 실패했다고 평가절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역사가들은 3.1 운동이 거족적이고 평화적인 민중 봉기였다는데 중요한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특정 세력이나 개인이 주도하는 부분적, 파당적인 운동이 아니라 모든 정파와 세력을 초월해 온 민족이 아무런 전제 없이 하나가 되었다는데 3.1 운동의 높은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외국의 역사가들도 민족 전체가 한 마음이 되어 무장 투쟁 노선보다는 비폭력 만세 운동으로 확산되었다는 점에서 3.1운동에 역사적, 문화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3.1독립만세운동을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金亨稷, 1894-1926)이 주도했고 평양 숭실중학교 청년학생들이 주동했으며 3.1운동의 발원지도 서울의 탑골(파고다)공원이 아니라 평양의 숭덕여학교에서 시작되어 서울 등 전국으로 확산됐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3.1운동 당시 김형직은 평양이 아니라 중강진에 있었고 만세운동을 주도하거나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는 증거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데도 우리 현대사 중요한 사건의 왜곡, 날조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또 당시 만 7살의 어린아이였던 김일성이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평양의 3.1운동 시위에 참가했다고 기술함으로써 김형직과 김일성 부자를 3.1만세운동의 선도자로 둔갑시키는 등 3.1운동을 김일성 가계의 혁명역사로 바꿔버렸습니다. 북한 교과서에는 3.1인민봉기 때 만세운동에 참여한 김일성이 어른들의 발걸음을 따라잡기 어렵게 되자 신고 있던 짚신을 벗어들고 뜀박질로 시위 대열을 따라갔다는 식으로 김일성을 우상화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만세운동의 발원지가 서울의 탑골(파고다)공원이 아닌 평양에서 시작되었다는 터무니없는 주장과 함께, 손병희 등 기미독립선언문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은 거명하지 않은 채 이들이 외세에 의존하고 부패타락한 부르주아 상층분자, 일제에 투항한 비겁분자, 변절자라고 매도하면서 이들이 외세에 의존했기 때문에 3.1운동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엉뚱한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북한은 또 3.1만세운동의 진정한 의미는 외세배척이라면서 남한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등 3.1절 정신을 정치선전에 이용하고 있습니다. 몇년 전 노동신문은 3.1절 기념 사설을 통해 주한 미군을 평화 통일의 장애물이라고 주장하며 반미 투쟁을 촉구했습니다. 남한에 미제 침략군이 남아있고 미국의 간섭이 계속되는 한 나라의 통일을 실현할 수 없으며 민족의 자주권과 안녕 그리고 평화를 지킬 수 없다는 그들의 상투적인 주장을 3.1운동 정신과 결부시켜 선전선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은 19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3.1만세운동을 “1917년 블라디미르 레닌 주도의 러시아 10월 혁명의 영향을 받아 서울시민 수십만 명이 반일 투쟁을 시작하여 발생한 사건”이라고 기술하다가 1980년대 들어 “역사적인 3.1 인민봉기는 평양에서 김형직의 혁명적 영향을 받은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의 대중적인 시위투쟁을 첫 봉화로 해서 타오르기 시작했다”고 기술해 3.1운동을 김씨일가의 주도로 발생한 민중봉기로 둔갑시켰습니다.

북한은 또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서 3.1인민봉기가 세계 여타 식민지예속국가 인민들의 민족해방운동에 고무적인 영향을 주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한 인민봉기라고 규정하고 실패의 주된 원인은 김일성이나 김정일 같은 탁월한 수령의 영도, 그리고 혁명적인 당(黨)의 지도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3.1인민봉기는 어떠한 혁명운동도 수령과 당의 영도가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교훈을 조선혁명가들과 애국적 인민들에게 남겼다고 주장하고 있어 북한 학생들에게 심각하게 왜곡된 역사관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105주년 3.1절을 맞으면서 북한이 김씨왕조 체제유지를 위해 중요한 민족사의 장면들을 송두리째 왜곡, 변질시키는 현실을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합니다. 언젠가는 김씨일가의 역사 왜곡과 훼손 행위가 역사적 심판을 받게 될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