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중석의 북한생각] 북한이 검토한다는 개인영농제

0:00 / 0:00

북한이 일부 지역 협동농장을 대상으로 개인영농제 시행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직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지만 몇몇 협동농장에 경작지 현황을 파악해 개인 농민에 농지를 분여(나눠서 빌려줌)하라는 지시가 내려갔다고 현지 소식통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개인영농제란 농지를 개별 농민들에게 분할해줌으로써 알곡 수확량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한편 농민들이 보다 많은 알곡을 차지할 수 있게 하는 농업자유화의 첫 걸음입니다. 지금까지 협동농장을 중심으로 사회주의식 집단영농을 고집해온 북한이 개인영농제도를 제한적이나마 시행한다면 북한의 농업생산량 증가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의 곡창지대인 황해도와 평안남도 일부 지역에서 개인영농을 시범실시한 다음 그 성과를 보고 개인영농 대상 농장을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이라고 소식통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비록 완전한 개인의 자유영농이 아니라 당국의 간섭이 남아있고 그 대상도 한정되어 있지만 북한이 만일 개인영농제를 본격 도입한다면 만성적인 식량부족사태를 해결하는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1980년대 이후 알곡 수확량 부진으로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협동농장을 폐지하고 농사를 농민의 자유의사에 맡기는 농업개혁만이 알곡수확량을 증진시킬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세계의 많은 농업전문가들과 탈북민들은 북한이 농민들의 근로의욕을 저하시키는 집단영농체제(협동농장)를 포기하는 농업개혁을 시작해야만 식량증산을 꾀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농민들을 협동농장에 묶어두고 공동 생산, 공동 소유를 강조하는 현 제도에서 어떤 농민이 한 알의 알곡이라도 더 생산하기 위해 땀 흘리며 일하겠냐고 농장 출신 탈북민들은 반문하고 있습니다. 북한당국은 식량이 곧 사회주의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알곡증산을 독려해왔지만 당국의 선전선동에 호응해서 열심히 일하는 농민은 한 명도 없다고 탈북민들은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 집단영농제라면 당연히 국가가 부담해야 하는 농약과 비료, 농사자재 구입비 등 영농비용을 농민분배 몫에서 공제하는 바람에 북한 농민들의 일년농사 분배 몫은 가족의 반년치 식량에도 못 미친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협동농장이란 것은 인간의 본성을 무시한 농업제도라고 지적합니다. 농민들이 아무리 열심히 농사지어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 일년치 식량도 안 된다면 누가 힘들여 농사일을 하겠습니까. 지난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인민공사, 즉 중국식 협동농장제도로 인해 농업생산량이 줄어들어 식량난에 시달리던 중국이 1983년에 인민공사를 전면적으로 해체하고 농지를 농민들에게 돌려주는 농업개혁을 단행한 후 알곡생산량이 획기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중국식 개혁개방의 첫 단추를 농업개혁부터 시작하여 큰 성공을 거둔 예가 있습니다. 농업개혁 후 첫해인 1984년, 중국의 식량 생산량은 1978년에 비해 140%나 증가했습니다. 중국의 수천 년 역사상 처음으로 13억 중국인들이 누구나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중국식 농업개혁의 대성공을 목격한 북한도 식량증산을 위해 협동농장체제에 약간의 변화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 후반 북한 일부 지역 협동농장에서 집단영농 방식을 벗어나 가족 단위로 농지를 제공하고 농사를 짓게 하는 방안을 시범적으로 실시했지만 비료 등 영농자재 부족과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분배 몫이 형편없이 적어 결국 흐지부지 되고 말았습니다. 김정은 집권 후 민심이반의 주원인이 되고 있는 식량난 해결을 위해 과거 중국이 농업개혁의 초기 단계로 실시했던 포전담당제를 일부 농장에서 실시했지만 이 또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전문가들은 농업에서 ‘가족분여제’나 ‘포전담당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중국처럼 농지, 즉 땅은 국가소유로 하되 농사는 전적으로 농민들에게 맡기는 전면적인 제도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농민들에게 내가 열심히 일해서 수확이 늘어나면 그만큼 내 소득도 늘어난다는 동기 부여를 해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북한이 조심스럽게 추진하는 농업개혁은 일부 협동농장만을 대상으로 하는 매우 제한적이고 불완전한 제도입니다. 북한체제의 특성상 농민들에게 완전한 자유영농을 허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한 집권층은 농업개혁은 알곡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지만 농민들의 생활이 여유로워지면 농산물을 중심으로 한 시장경제체제가 더욱 활성화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이 만성적인 식량난으로 인해 민심이반이 심화되는 것을 걱정하면서도 중국식 전면적 농업개혁에 착수하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김씨세습왕조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장마당이 활성화되어 자유주의 시장경제가 정착되는 일을 막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농업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답을 뻔히 알면서도 오로지 세습체제 유지를 위해 전면적이고 과감한 농업개혁을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북한이 검토하고 있다는 제한적이고 부분적인 개인영농제가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