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중석의 북한생각] 외양만 그럴듯한 평양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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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4일 평양 서포지구에 새로 준공된 전위거리는 25층~80층 아파트가 밀집된 신도시입니다. 북한의 선전매체들은 전위거리 아파트를 배정받은 입주민들이 김정은의 특별한 배려에 감읍하며 기쁜 마음으로 서둘러 아파트에 입주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선전매체 보도와 달리 전위거리 고층아파트 입주민들은 전력부족과 아파트 편의시설 미비로 입주 시작부터 곤경에 처해있다고 RFA, 자유아시아방송이 보도했습니다.

RFA의 보도에 따르면 고층아파트를 배정받은 주민들이 가구와 가전제품 등 살림살이를 고층까지 운반하려면 승강기(엘리베이터)가 반드시 필요한데 전력부족으로 하루 5시간 전기가 제한 공급되는 바람에 승강기가 시간제로 운행된다고 합니다. 전기가 공급되는 오전 11시에서 오후 1시, 저녁 8시에서 11시까지만 승강기가 운행되고 있어 이삿짐 운반에 큰 차질을 빚고 있는 것입니다. 하는 수 없이 입주민들이 번호표를 뽑아 이삿짐 올려가는 순서를 정하는데 하루에 10세대 안팎정도만 짐을 옮길 수 있어 아파트 입구마다 승강기 순번을 기다리는 입주민들의 이삿짐이 높이 쌓여 있다고 합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전기 공급이 제한적이다보니 수돗물 공급도 시간제로 하고 있어 간신히 이삿짐을 옮기고 나서도 이삿짐 정리와 청소에 애를 먹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국의 대대적인 선전과 달리 초고층 아파트 입주민들은 입주 시작부터 곤경에 처해있다고 자유아시아방송은 보도했습니다. 이 때문에 고층아파트 입주민들은 10층 이하의 세대에 배정받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10층 이하는 승강기가 멎어도 계단으로 걸어서 오르내릴 수 있는 높이이기 때문입니다. 명색이 초고층 아파트인데 고층보다 저층에 배정받기를 원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남한 등 선진국의 경우 초고층 아파트는 층고가 높아질수록 분양가(판매가)도 높아집니다. 모든 입주민들이 전망이 좋고 소음도 적은 고층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초고층 아파트의 저층 세대는 인기가 없어서 잘 팔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평양의 고층 아파트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의 초고층 아파트 입주민들은 저층세대를 배정받기 위해 이런저런 연줄을 동원하고 살림집 배정담당 간부에게 뒷돈, 즉 뇌물까지 고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기도 부족하고 각종 건설 인프라(기반시설)가 열악한 북한이 왜 유독 고층아파 건설을 고집할까요?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북한당국이 주택정책을 인민의 생활환경 개선보다는 대외선전의 도구로 활용하기 때문입니다. 평양을 체제 우월성의 선전도구로 여기는 북한은 평양시를 외국의 번듯한 대도시처럼 보이기 위해 주민생활 편의는 뒷전에 둔 채 초고층 건물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전기도 부족하고 각종 교통 인프라도 부족한 평양에 외양만 그럴듯한 고층 건물을 짓고 각종 선전매체와 선전 책자를 통해 평양이 선진국의 대도시를 능가하는 도시라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평양의 살림집을 주민 주거환경 개선과는 관계없이 선전목적으로 건설한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건물이 있습니다. 지난 2020년 3월 17일 김정은은 평양종합병원 착공식에 참석해 세계적인 수준의 종합병원을 완공해 평양시민의 의료수요에 대비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당초 노동당 창건 75주년인 2020년 10월 10일까지 완공목표였는데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개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착공당시 김정은의 인민사랑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선전하던 북한 선전매체들은 평양종합병원 개원에 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이 한 가지 사실만 보아도 김정은이 평양시민의 생활편의와 건강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북한이 갖가지 건축자재 부족 등 악조건을 무릅쓰고 단시일 내에 초고층 아파트건설을 밀어붙이는 바람에 날림공사의 우려도 있습니다. 25~80층의 고층 건물을 1년 안에 완공한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외부의 건설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고층건물일수록 설계부터 공사, 감리에 이르기까지 안전규정을 철저히 지켜야하고 특히 시멘트와 철근, 골재, 내외부 장식재 등 모든 건축자재를 안전규격에 맞게 사용해야 합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과연 건축자재사용과 공사의 전 과정에서 안전규정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의문을 표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북한에서는 완공 후 입주를 시작한 아파트가 통째로 무너지는 참사가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2014년 5월 13일 오후 4시경 평양시 평천구역 안산1동에 새로 지어진 23층 은정아파트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붕괴사고로 미리 이사한 입주민과 마무리 공사를 하던 건설부대 군인 등 300명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사고원인은 당연히 불량 건자재 사용과 속도전을 내세운 졸속공사 때문이었습니다. 이 같은 대형사고를 겪고 나서도 북한은 모든 건설공사에서 속도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건설은 속도전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북한이 속도전의 폐해를 감출 생각을 하지 않고 자랑한다는 사실입니다. 선전매체들은 평양살림집 건설에서 14분에 살림집 한 채를 짓는다며 이른바 '평양속도'라는 용어까지 사용했고 김정은 집권 후 조성된 평양 창전거리와 려명거리도 속도전식 건설로 성공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이 고층건물 짓기 속도전에 몰두하는 이유는 김정은의 치적이라며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이 건물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선전매체들은 평양 살림집 건설이 김정은의 애민정신에 따른 업적이라며 선전 강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겉만 번지르르한 고층아파트 건설이 과연 애민정신의 발현인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 이칼럼내용은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