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당국이 일명 메뚜기장이라고 불리는 비공식 골목시장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시장(장마당)에 대한 지나친 통제를 피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장마당 인근 골목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메뚜기장은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시장입니다. 장마당에 대한 각종 규제와 지나친 통제를 피해 주민들이 길거리에서 노점상을 벌였다가 당국의 단속이 시작되면 순식간에 철수하는 모습이 메뚜기 튀는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얻었다고 합니다. 메뚜기장은 장마당 매대를 얻지못한 장사꾼들과 일반주민들이 당국의 통제없이 물건을 사고팔 수 있기 때문에 최근 북한내 여러 지역에서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2019년 미-북하노이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복원하는 동시에 시장을 축소하거나 통제하는 정책을 계속 시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고난의 행군시기부터 30년 넘게 북한의 경제는 물론 정치 사회 모든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장마당을 없애기는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북한에서도 시장은 이미 주민들의 생활터전이자 생명줄이나 다름 없는 중요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김정은이 시장을 축소하고 궁극적으로 없애려고 시도하는 것은 시장을 통해 너무도 많은 외부 정보가 유입되어 주민들속에서 확산되고 있으며 북한당국이 극도로 경계하는 한국상품을 비롯한 외국 상품, 불온 영상자료들이 유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정은은 시장경제(장마당경제)가 활성화될수록 북한체제붕괴의 위험도가 증가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때문에 시장을 점차적으로 없애고 사회주의 경제체제, 즉 국영상점과 배급체제로 돌아가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주민들이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장마당에 의존하고 상당수의 주민들은 장마당을 중심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기에 장마당의 완전 폐쇄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북한전문가들은 주장합니다. 국영상점의 상품가격은 일반 서민이 감당할 수 없이 비싸고 국정가격이 눅은(싼) 상품은 공급이 모자라 서민들에게는 차례지지(돌아가지) 않습니다. 사회주의 체제유지의 근간인 국가배급이 중단된 상황에서 주민들의 생명선인 장마당을 없앤다면 그 결과는 너무도 뻔합니다. 1990년대의 대기근(고난의 행군)을 다시 불러오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주민들은 수십 년간 장마당 장사를 통해 깨달은 점이 많다고 탈북민들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국영공장 기업소에서 일하고 받는 월급이 얼마나 형편없는 저임금이고 월급만으로 생계를 꾸려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주민들은 몸으로 체험했습니다. 유일사상이니 군사강국이니 우리식 사회주의니 하면서 아무리 주민들에게 세뇌교육을 해보았자 이미 수십 년 동안 시장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시장경제에 맛을 들인 주민들의 생각을 바꾸기는 어렵다고 탈북민들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시장경제의 확산을 통한 외부정보 유입과 체제위협요소를 극도로 경계하면서도 한꺼번에 시장축소나 폐쇄조치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북한주민의 생계가 장마당에 달려있는 현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8년 현재 북한당국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장마당수는 436개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당국이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은 장마당이 상당히 많아 실제 시장 숫자는 5백개가 넘을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장마당이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사실상 북한주민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북한당국도 장마당의 주요 역할과 기능을 인정하고 장세와 매대 임대료들을 징수하는 방식으로 부족한 국가재정을 채우고 있습니다.
요즘 북한 주민들이 '당에 충성'이란 말을 자주 하고 있는데 여기서 '당'은 노동당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장마당의 당을 뜻한다는 것이 탈북민들의 전언입니다. 주민들을 먹여 살리는 것은 노동당이 아닌 장마당이란 얘깁니다. 시장경제의 활성화로 배금주의가 만연해 돈이 최고라는 사상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고 돈주로 불리는 신흥부유층이 늘어나면서 자본주의 사상이 팽배해지게 되었습니다. 김정은도 북한경제를 지탱하는 주축이자 인민들의 생명줄인 장마당 폐쇄를 급격하게 추진했다가는 이 또한 주민 저항으로 인한 체제위협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러시아와의 밀착으로 식량과 연유(석유), 공산품을 어느 정도 확보한 북한이 요즘들어 국영상점과 백화점의 숫자를 늘리고 상품 진열대에 상품을 채우는 것도 장마당에 쏠린 주민들의 마음을 국영상점으로 돌리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입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시기 주민들의 생존수단이었고 그 후로도 주민생활의 모든 것을 책임진 장마당이 당국의 몇 가지 회유책과 단속으로 사라진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이제 장마당은 북한의 공장 기업소들이나 군간부, 당간부조차도 이용하는 전체 북한주민에게 생활의 터전이 되었습니다. 장마당에서 유통되는 외부정보와 외국상품, 특히 한국상품과 한류문화관련 영상물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북한당국이 시장경제 확산에 대한 대책으로 무엇을 또 꺼내들지 그 귀추가 주목됩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