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난 2023년 12월 당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2024년도 정책 방향을 밝혔습니다. 전원회의 결정문에서 김정은은 남북관계를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이며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되었다고 규정하고 한반도의 두 개 국가를 선언했습니다. 대남 적대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반도에서 언제든지 전쟁이 터질 수 있다면서 남반부(남한)의 전 영토를 점령하기 위한 군사적 준비를 강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혀 2012년 집권 후 처음으로 대남 무력 적화통일 야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김정은은 미국에 대해서는 강 대 강 정면 승부의 대미 대적 투쟁 원칙을 실시하겠다면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국가들과 연대하겠다는 뜻을 밝혔는데 이는 한미일 군사협력에 맞서 현재 진행 중인 북러 군사협력을 전면적 협력관계로 확대하고 이스라엘과 하마스·헤즈볼라 전쟁을 계기로 중동의 반미 국가인 이란 등과의 연대를 확대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지난 2021년 제8차 당대회에서 밝힌 새로운 핵무력 완성을 위한 주요 과제가 성취됐다고 자평한 김정은은 핵무력 강화 전략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북한이 정권수립 이후 일관되게 주장해왔던 조국통일 노선을 포기하고 한반도 두 개 국가론을 들고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김일성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통해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 3대 원칙을 확립했습니다. 북한은 또 1980년 10월 6차 당대회에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 방안을 내놓았고 1993년 4월 최고인민회의 제9기 5차 회의에서 조국통일 3대 헌장을 제정했습니다. 이는 곧 김일성의 통일 관련 유훈으로 김정일 집권시기에도 이 방침은 대남정책의 기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김정은이 김일성 시대에 평양에 세운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을 꼴불견이라며 철거를 지시했고 남북한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함으로써 김일성의 유훈을 무시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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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남북한의 동일민족, 동일국가론을 부정하고 한반도통일 노선을 포기한 이유에 대해 국내외 전문가들은 크게 두 가지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남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완전히 패배한 북한이 남한에 의해 흡수통일 될 수 있다는 위험요소를 차단하려는 체제 방어용 '수세적 담론'이라는 주장이 있고 또 하나는 핵 무력 고도화와 북중러 관계 개선을 바탕으로 남한과의 무력 충돌 가능성을 높여 한미일 동맹을 위협하려는 공세적, 전략적 선택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북한이 앞으로 핵 능력 확대를 통해 남한과의 전면전도 불사할 것이라는 분석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일부 전문가는 김정은이 50년대 김일성처럼 전면전을 감행할 전략적 결정을 내렸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또 다른 전문가는 김정은이 미치지 않은 이상, 동북아의 안전을 위협하고 북한체제의 종말을 불러올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는 '우발적 충돌'에 의해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점에는 동의하고 있습니다. 9.19군사합의 등 남북 간 군사 완충장치가 모두 무력화 되었고 현재 한국정부의 대북정책이 강경일변도이기 때문입니다. 남북의 우발적 무력충돌은 미국 등 관련국이 확전 방지를 위해 손을 쓰기도 전에 전면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북한은 ‘적들이 건드리지 않는 이상 결코 일방적으로 전쟁을 결행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북한에 의한 선제공격 가능성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두 국가론을 내놓자 남한에서도 남북 2개 국가론을 공식화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통일정책을 고수함으로써 북한에게 흡수통일의 부담감을 주지 말고 남한도 통일 포기 선언을 해 남북한이 별개의 국가로 살아가는 게 더 낫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는 몇 가지 함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두 국가론에는 남북관계 단절만이 아니라 남북한 교전국 관계와 무력통일론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는 남한 일각에서 생각하는 평화공존하는 두 국가 체제가 아니라 남북한이 적대국으로 전쟁상태에 있다고 규정한 것입니다. 문제는 두 국가론의 수용 여부가 아니라 남북한이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평화공존체제로 갈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북한은 앞으로도 '적대적 두 국가론'과 조건부 남한 무력평정 주장을 계속할 것이 분명합니다. 과거 동독도 헌법에서 통일정책을 삭제하고 당규약에서 동·서독 민족을 구분하는 2민족 2국가론을 내세운 바 있습니다. 그러나 동독은 서독과의 경제적 격차를 극복할 수 없었고 서독에게 통일 주도권을 내준 채 결국 흡수통일되고 말았습니다. 북한이 중국, 러시아의 도움으로 당분간 생존을 이어갈 수는 있겠지만 궁극적인 체제 안전과 경제 발전은 보장받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북한이 다시 국제 외교무대에 복귀해 대화를 통해 남북한의 평화공존 분위기를 조성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봅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