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웃는 사람이 있고 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같은 소식인데 어떤 사람은 좋은 소식으로 전하고, 어떤 사람은 나쁜 소식으로 전합니다. 여러분은 이들 중에 어떤 사람을 가까이 하고 싶으신가요?
당연히 웃는 사람,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전하는 사람일 텐데요. 자신이 가진 재능을 통해 행복을 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글 쓰는 재능을 통해 탈북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박경희 작가인데요. 10년 동안 꾸준히, 탈북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하는 청소년 소설을 펴내고 있습니다. 책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을까요? 그 이야기, <여기는 서울>에서 담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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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서트1: (박경희) 안녕하세요. 저는 글을 다양하게 쓰고 있는 박경희입니다. ‘어쩌다 보니’라는 말이 요즘 많이 유행하는데요. 저도 어쩌다 보니 탈북 아이들을 만나게 됐고 탈북 아이들의 이야기를 동화, 소설, 청소년 소설, 르포 등으로 경계선을 넘나드는 글을 쓰고 있는 작가라고 자칭 말하고 있습니다.
박경희 씨는 1994년부터 18년 동안 방송작가로 활동했는데요. 창작에도 뜻이 있어서 2004년 소설가로 등단했습니다. 탈북 청년들을 만난 건 2010년, 탈북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학교에서 르포 제작을 의뢰받으면서부터입니다.
인서트2: (박경희) 탈북학교 교장 선생님께서 그 아이들이 여기 와서 적응한 지 10년이 됐고 뿌리내리기를 했으니 그 이야기를 좀 써주는 작가를 찾던 중에 제 청소년 소설을 보고 연락을 하셨던 거예요. 작가의 토양에는 너무나 좋은 재료 같다 이런 생각만 했거든요. 그런데 르포를 쓰려고 학생들에게 인터뷰를 하잖아요. 너는 어디서 왔어? 왜 왔어? 혼자 왔어? 이렇게, 직접적으로 다 물었어요. 그랬더니 아이들이 다 슬슬 도망을 가는 거예요. 나중에 알게 된 건데요. 어디서 왔는지 이름은 말할 수 있지만 ‘왜 왔어. 누구랑 왔어’는 아픔이거든요. 그걸 알고 나서는 ‘아~ 이렇게 인터뷰해서 글 써서는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자발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계기가 돼서 10년 동안 제가 탈북 아이들에게 글쓰기 지도, 인문학 수업을 하다 보니 너무 다양한 이야기를 알게 된 거예요. 그걸 나만 알고 있기에는 사실 너무 안타깝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그러면 내 창작의 영역으로 이 부분을 끌어들이자. 이렇게 하면서 쓰다 보니 벌써 10년이 됐고, 또 책이 이렇게 쌓여가네요.
이렇게 박경희 작가는 탈북 청소년들을 더 알고 싶다는 생각에서 글쓰기 수업을 제안했고, 그 제안은 르포 제작이 끝난 2012년 이후에도 계속됐습니다. 박경희 작가는 주제에 따른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남북의 차이를 극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어떤 면이, 어떻게 다를까요?
인서트3: (박경희) 남한 친구들은 금방 그렇게 쓰는 아이가 10명 중의 1명밖에 없어요. 뭐 어떻게 써야 될까 구상도 생각하고 막 이러거든요. 그런데 이 친구들은 10명 중의 6명은 금방 써요. 한 페이지 정도 A4 용지 한 장을 아무렇지 않게 쓰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맨 처음에… 그런데 알고 보니 매주 토요일마다 북한에서는 자기반성의 글을 썼던 거예요. 그걸 빨리 써야 되고 무엇이든 한 장을 채워야 되는 게 너무 의무화됐고, 격식화됐기 때문에 그걸 쓰는 건 어렵지 않았던 거죠. 그런데 창의적인 글을 못 써요. 자신의 생각이 들어가는 창의적인 글은 한 줄도 못 써요. 그걸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글쓰기로 자신들의 생각을 끄집어내게 만드는가, 그게 저의 과제였어요.
자기의 생각을 글로 쓰는 일… 사실 남한 친구들도 많이 어려워하는데요. 소학교를 다니는 동안 일기와 독후감 등을 쓰면서 조금은 훈련이 됩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보다 당에서 ‘내려먹이’는 것들이 더 중요했던 탈북 청년들은 남한에서 새로운 글쓰기 방식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박경희 작가는 이런 방법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인서트4: (박경희) 책을 읽고 그 책에서 문구, 너를 움직인 문구를 옮겨라 하면서 거기에 네 생각을 쓰는 것! 이렇게 해서 글쓰기를 해나가게 됐죠. 그렇게 자기 생각을 끄집어내고 자기의 의견, 때로는 평론 이런 거를 쓰는 훈련을 제가 체계적으로 했죠. 저는 그걸 굉장히 보람되게 생각하는 게 대학에 가서 친구들이 전화를 해요. 작가님하고 그 글쓰기 수업했던 게 지금 리포트 쓰고 서평 쓰고 그러는데 굉장히 도움이 된다. 저는… 그런 게 참 보람 있었어요.
박 작가는 탈북 청소년들이 대안학교를 다니는 3년 동안 100권의 책을 읽게 했습니다. 한 달에 3권 정도 읽어야 하는 거죠. 탈북 청소년들 입장에선 소설을 비롯해 고전까지 다양한 책을 접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인서트 5: 남한에 와서 맨 처음에 되게 힘들어하더라고요. 책 읽는 것을.. 그러니까 주체사상이 들어가지 않는 순수한 창작, 주제 의식이 좀 강하고 독일 작품도 많이 읽혔어요 일부러. 그러면서 독일의 통일과 우리의 통일 이런 것도 얘기를 일부러 끄집어내고… 100권의 책을 읽게 했어요. 그중에 한 10권 정도 읽으면 친구들은 이런 얘기를 했죠. ‘이런 책은 처음 봤어요. 그리고 책이 이렇게 재미있는 줄 처음 알았어요. 이 책이 저를 많이 변화시켰어요.’ 이 친구들이 그러면서 고백을 하는 거예요.
수업을 통해 박경희 작가는 탈북 청소년들과 가까워졌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이야기를 알게 됐습니다. 또 박 작가는 자신이 가르친 탈북 청소년들을 통해 자신에게도 탈북민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음을 알게 됐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친구들의 이야기를 알려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죠.
인서트6: (박경희) 3개월 전에, 6개월 전에, 2년 전에 북한에서 살았던 아이들이 바로 내 앞에 있다는 게 신기하면서 이게 무슨 일인가 이런 호기심이 굉장히 많았어요. 저는 방공 세대잖아요. 우리는 삐라 주워 가지고 파출소에다 갖다주면 연필 주고… 이런 세대거든요. 그러니까 북한 애들은 뭔가 이렇게 다를 거다,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근데 제가 만난 탈북 청소년들은 내 아들보다 더 멋쟁이,남한 아이들보다 더 깔끔한 여학생, 이런 여학생들을 보면서 이거야말로 선입견의 진짜 넘어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탈북자에 대한 생각들을 제가 깨는 역할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 결과로 나온 작품이 2013년 ‘류명성 통일 빵집’을 시작으로 ‘난민 소녀 리도희’, ‘리무산의 서울입성기’ ‘엄마는 감자꽃 향기’ 그리고 ‘리수려, 평양에서 온 패션 디자이너’ 입니다. 작가는 소설 속 주인공을 통해 탈북 청소년들이 남한에 와서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남북한의 청소년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접목하는데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탈북 청소년이라서 다른 것이 아닌, 누구나 아픔이 있고 그 때는 다 흔들리는 존재이며 남북한의 청소년들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인서트7: 류명성 통일 빵집은 여섯 편의 단편소설로 북한 아이들의 사례가 있을 수 있는 사연들이 다 나왔어요. 그 아이들이 어떻게 여기 왔고,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삶을 살고 있고 현재는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가가 다 나와서 그것만 읽어도 북한 아이들이 여기 와서 이렇게 살고 있구나… 이렇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소설 속 인물이지만 실존 인물이기도 한 책 속 주인공들! 두만강을 건너다가 눈앞에서 어머니가 총을 맞는 모습을 본 강희와 우여곡절 끝에 남한에 왔지만 북쪽에 있는 가족을 위해 죽기 살기로 부업을 하는 명성과 기철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강희는 엄마처럼, 언니처럼 의지했던 같은 탈북민 언니에게 사기를 당해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잃게 되죠. 또 다른 이야기 속 연숙은 자기 또래의 딸이 있는 남한 여성과 재혼한 아버지가 밉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모두 어려움 속에서 다시 일어나고 미웠던 가족, 동생과 화해하며 또 남한 사람들도 녹록치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한 뼘 더 성장합니다.
인서트8-1: (유투브 소스- 류명성 통일빵집) 내가 살을 빼고 싶은 건 부자를 꿈꿨기 때문이야. 우리 엄마처럼 가난뱅이는 맨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다 보니 살이 찔 수 밖에 없어.
2016년 9월 26일자, 유튜브 영상 Elim lee 채널에 올라온 ‘류명성 통일빵집’ 이야기 중 일부입니다.
인서트8-2: 그 웃음이 전과 달리 슬퍼 보였다... (중략) 세라에게 내가 꿈꾸는 최고의 빵을 해주고 싶었다. 난 세라의 손을 잡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북에서 먹던 꼬장떡 맛에 쑥맛을 더한 빵이야. 배는 부르게, 그러나 칼로리는 낮게… 내가 오랫동안 연구한 빵이야. 남과 북 모두를 잇는 뜻이 담겼지. 이름은 통일빵인데.. 어때?
-Closing-
상처가 아물며 그 자리에 돋아난 새 살은 연약하지만, 곧 튼튼하게 자리 잡습니다. 그 과정을 담은 박경희 작가 작품 속 탈북 청년들의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집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