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서울] 남북청년 설.남.설.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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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지난주 시작된 추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강추위에 몸은 한없이 움츠러드는데요. 그래도 사람들의 마음만큼은 따뜻한 것 같습니다. 독거노인들을 살피는 사회복지사들, 매주 혹은 매달 봉사활동에 참여하며 취약계층을 살피는 사람들까지,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을 주변에서 만나는 게 어렵지 않으니까요.

눈발이 날리는 추운 날, 추위도 녹일 신나는 만남을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음력 설을 앞두고 설날맞이 모임을 가진 남북 청년들인데요. 이번 만남의 이름은 ‘설남설녀’라고 합니다. 그 현장, 지난 시간에 이어 <여기는 서울>에 담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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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설을 앞두고 설날맞이 모임을 가진 남북 청년들이 투호 던지기를 하고 있다. /RFA Photo

[ 현장음] 오~ 아니… / 아….

감탄사와 탄식의 소리가 가득한 이곳은 서울 충무로역 인근에 위치한 남산 한옥마을인데요. 도심 한가운데 전통 한옥을 그대로 옮겨 재현한 이곳은 옛 문화를 접하고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입니다.

조용하기만 한 이곳을 떠들썩하게 만든 청년들은 ‘온도시’ 운영진과 회원들인데요. ‘온도시’는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기반으로 하는 청년들 간의 소통 모임입니다. 운영진을 제외한 참여자들은 매번 만남을 가질 때마다 지원을 받아 모집하는데요. 그 구성원들을 ‘워머’라고 표현한답니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 인터뷰] 저는 온도시 운영진인 한현재라고 합니다. '워머'라고 하면 보통 보온 효과를 내는 도구를 의미하는데요. '온도시'라는 이름은 남북한 청년들에게 따뜻한 도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있으니 모임을 함께 하시는 분들이야말로 도시를 따뜻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아닐까 해서 '워머'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 온도시', '워머'… 도시를 따뜻하게 만들고 싶은 남북 청년들의 모임

‘온도시’는 남북 청년들이 함께 이끌어가는 작은 모임이지만 잠재적 참여자들까지 합하면 큰 모임입니다. 행사를 기획하면 그때그때, 청년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사회관계망 서비스에 홍보글을 올려 참여자를 모집하니까요. 사회 관계망 서비스를 이용하며 남북 문화에 관심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잠재적 회원인 셈입니다.

온도시, 워머… 이름도 잘 만드는데 이번 모임의 이름도 특이합니다. ‘설남설녀’, 어떤 의미였는지 현재 씨의 이야기 좀 더 들어봅니다.

[ 인터뷰] 보통 모임을 기획할 때는 관심 있어 하는 스포츠 종목이라든가 함께 즐길만한 게임들, 탈북민한테 궁금한 것들… 이런 소재들을 가지고 '우리가 어떻게 재미있게 만들어 볼 수 있을까'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프로그램 이름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이번에 설날을 앞두고 '설남설녀'라는 모임을 만들었는데 원래는 온도시 운영진들과 탈북민 청년 집에서 모여서 밥 한 끼 먹어볼까 하는 게 처음 시작이었어요. 명절 때 혼자 집에 있지 말고 같이 밥을 먹는 게 어떨까 이런 아이디어에서 시작돼서 지금 몇 년째 매 명절 때마다 만나고 있는데요. 이번 설 명절이 유독 또 길었잖아요? 저희가 훈남, 훈녀들을 지칭할 때 '선남선녀'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 데 착안해서 설날에 모이는 남녀의 모임, 또 선남 선녀 청년을 합해서 중의적인 표현으로 '설남설녀' 모임을 하게 됐는데 또 재밌었던 게 그날 눈이 또 엄청나게 왔잖아요. 모이던 날에 이 '설남설녀'가 눈 '설'자라는 우스갯소리도 하면서 모였는데 이름을 좀 잘 지은 것 같아요.

현재 씨의 말처럼 이날 눈이 제법 많이 내렸는데요. 한옥마을에서 만난 남북 청년들은 눈을 모두 맞아가며 그야말로 ‘설인’이 되어 전통놀이를 즐겼습니다. 시작은 막대기를 좁은 단지에 던져 넣는 투호 던지기. 누가 보면 큰 운동 경기에 참여한 사람들처럼 열렬히 임하는 청년들의 모습에 지나가던 사람들도 발길을 멈추고 구경합니다.

이날 만남을 가진 청년들은 2명의 탈북민 청년을 합해 모두 8명. 4명씩 같은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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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음] 오~~ 몇 초에요. 몇 초? / 2분 7초! 다음 주빈 팀 갈게요. / 여기, 여기를 잡는 게 나아요. / 알겠어. 그새 또 관찰했어? / 연습 게임이죠. 이거? / 연습이예요? / 네.

투호 던지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한 조, 4명이 총 5개의 막대기를 얼마나 빠른 시간에 단지 안에 던져 넣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됩니다. 정확도, 속도 모두 중요한 거죠.

한 사람씩 연습을 해보는데 영 쉽지 않습니다.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하면 잘 던질까 연구를 거듭하는데 무척 진지합니다. 웃음도 연신 터져 나옵니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 맞나요? 한바탕 신명 나게 놀고 승패가 결정됐는데 또 다른 놀이가 시작됩니다. 자리를 옮겨, 다음 게임은 제기차기!

[ 인터뷰] 전략을 잘 짜가지고. / 아! 서로 잘 패스해서? / 네. / 네. 총 다섯 번! / 근데 어떻게든 땅에만 안 떨어지면 되는데 대신에 땅에 떨어지는 순간 처음부터 다시 해야 돼요. / 이것도 마찬가지로 시간 재서 다섯 번 하는 팀이 승리. / 지금 인채 님 긴장하셨어요. / 연습을 좀 해야 할 것 같아요. / 연습 할게요. (웃음 소리)

다들 어렸을 때 제기 좀 찼던 모양입니다. 그렇지만 몸이 그때만큼 빠르게 움직이진 않네요. 제기 차며 놀던 그 시절처럼 즐겁습니다.

처음 만났지만 오래된 인연처럼

참여자로, 온도시 표현으로 하면 ‘워머’로 이 자리에 처음 참석한 청년들은 이날 만남이 어땠을까요?

[ 인터뷰] 안녕하세요. 인천에 살고 있는 지금 35살 전병혁입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런 자리가 있다는 걸 알고 참여를 하게 됐는데요. 설날 앞두고 이렇게 많이들 오실 줄도 몰랐고 오고 나니까 새로운 만남이 즐겁습니다. 투호도 던져보고 제기차기도 했는데 저는 운동 신경이 별로 좋지는 않았지만 잘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재밌었어요. 만남이라는 게, 인연이라는 게 뜻하지 않은 이런 만남이 오랜만이었어요. 그래서 더 반갑고 몸이 풀리니까 마음이 풀린다고 해야 되나 그랬던 것 같습니다.

같은 팀을 응원하고 한 마음으로 게임을 즐기다 보니 오늘 처음 만난 남북 청년들은 금새 친해집니다. 어린 아이들 마냥 웃고 즐기는 청년들의 모습에 저도 절로 웃음이 났는데요. 눈 오는 날, 투호 던지고 제기 차던 이날의 기억, 한현재 씨에겐 오랜 시간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될 것 같답니다.

[ 인터뷰] 남산골 한옥마을 중간에서 저희끼리 모여서 그냥 재기 차기 하는 시간이요. 저희끼리도 너무 재밌었지만 지나가시던 어르신들 서너 분이 저희가 이렇게 제기차기 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 보였나 봐요. 그래서 옆에서 구경하시면서 막 하나씩 찰 때마다 오~~ 이렇게 환호도 해 주시고 사진도 찍어 가시는 거예요. 그게 너무 인상 깊었어요. 어르신들 눈에도 남북 청년들이 다 같이 모여서 즐기는 모습이 진짜 선남 선녀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에 괜히 뿌듯하고 그랬던 시간이었습니다.

[ 현장음] 하나, 둘, 셋, 넷~ / 오!!!! / 일고옵~~ (박수 소리) / 바람 불어. 바람이 이쪽으로 부네. / 어떡하지?

점점 눈발이 굵어지고 바람도 강하게 불기 시작합니다. 전통놀이를 마친 청년들은 눈발을 헤치고 이동합니다.

[ 인터뷰] 안녕하세요. 저는 박수련이라고 하고요. 이북 출신으로 여기 남한 청년들이랑 같이 단체 스테프로 작년 여름부터 참여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너무너무 좋고요. 따뜻한 사람들이고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뭔가 스며들 수 있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남북 청년이 뭔가 함께 한다는 게 의미가 깊었고 같이 하면서 뭔가 이분들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Closing Music-

2부 행사도 준비돼 있습니다. 북한에선 명절 같은 날 모이기만 하면 한다는 ‘사사끼’를 함께 해볼 예정이라는데요. 근방에 있는 커피집을 예약해 뒀답니다. 글쎄요… 아무래도 작은 카페가 웃음소리로 터져 나가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그 어렵다는 사사끼 게임, 남한 청년들이 잘 배워볼 수 있을까요? 남은 얘기는 다음 시간을 기약합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