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서울] 빛나는 마침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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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매년 1월은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마무리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유치원부터 북한의 소학교에 해당하는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에서는 졸업식을 앞두고 있으니까요. 탈북 청소년들이 다니는 대안학교도 마찬가집니다.

탈북 청소년과 탈북민 자녀들을 위한 최초의 학력 인정 대안학교, 여명학교는 지난 1월 10일 21번째 졸업식을 진행했는데요. 그 현장 <여기는 서울>에 담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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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학교 졸업식 현수막. /RFA Photo

[ 현장음] 가양동에서의 두 번째 졸업식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여명 학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모두 인가받아서 중학교 졸업생과 고등학교 졸업생이 있습니다. 중학교 3학년 23명과 고등학교 3학년 26명, 모두 49명의 학생들이 졸업하게 되는데요. 졸업식을 빛내주신 후원자분들과 가족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 오늘의 주인공 49명을 위한 여명학교 제21회 졸업식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곳은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위치한 여명학교.

2004년에 처음 문을 연 여명학교는 서울 남산 자락에 위치했었는데요. 2년 전 이곳으로 이전을 했습니다. 가양동에서 여는 두 번째 졸업식이자 학교가 문을 연 이래 21번째 졸업식이 되는 겁니다.

지금까지 여명학교를 졸업한 학생은 400명이 훌쩍 넘는데요. 이 숫자엔 큰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달라진 체제와 언어, 문화로 인해 정체성이 흔들리는 시기를 겪으며 공부하고 또 한국 사회에 적응해 낸 졸업생들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학원 과정을 마무리하고 상급 학교로 진학한다는 의미, 그 이상입니다.

힘겹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모든 학업 과정을 마무리한 졸업생들을 모두 한마음으로 축하하는데요, 졸업생 선배, 가족 등 많은 사람들로 졸업식장이 꽉 찼습니다.

[ 현장음] 먼저 중학교부터 졸업장을 수여하겠습니다. 모두 일어나 주십시오. 대표로 김민규 학생이 나와서 수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졸업장, 김민규. 위 학생은 본교에 중학교 과정을 이수하였으므로 이에 졸업장을 수여합니다. 2025년 1월 10일 여명학교 교장 조명숙.

중학교 과정을 마친 졸업생들은 졸업 후에도 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하기 위해 학교에 남지만 고등학교 과정 졸업생들은 이제 학교를 떠납니다. 그래서 졸업생 한 사람, 한 사람의 졸업장의 무게는 중학생들과는 또 다르네요.

[ 현장음] 이어서 오늘의 주인공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졸업장을 수여하도록 하겠습니다. 3학년 1반 김도윤 학생부터 졸업장을 수여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 졸업장! 김도윤. 위 학생은 본교의 고등학교 과정을 이수하였으므로 이에 졸업장을 수여합니다. 2025년 1월 10일 여명학교 교장 조명숙. 축하드립니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졸업식의 시작인데, 벌써 눈가가 촉촉해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잠시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조용히 졸업식장을 빠져나가는 사람들도 있고 뒤늦게 졸업식장에 도착해서 뒤에 서서 보는 사람들까지… 여느 학교 졸업식과 비슷해 보이지만 그 사연은 특별합니다. 잠시 밖으로 나가 한 분을 만나봤습니다. 여명학교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졸업생과 인연이 있다고 합니다.

[ 인터뷰-백지윤] 저는 대전에서 온 백지윤이고 지금 카이스트에서 석사 과정 중에 있습니다. 제가 교육 봉사로 가르친 학생의 졸업식을 축하하러 오게 됐는데요. 방과후학교의 교사로 교육 봉사를 하는 역할이었고 저는 사회 문화 담당이었는데 제가 가르치던 학생이 고등학교 3학년이다 보니까 대학교 면접과 수능의 전반적인 공부를 도와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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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학교 졸업식 현장. /RFA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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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윤 씨는 봉사를 하면서 뭐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학생과 가까워졌다고 하는데요. 서툴지만 <여기는 서울>을 통해 진심 어린 마음을 전합니다.

[ 인터뷰-백지윤] 제가 맡은 친구는 06년생, 한국 학생들이랑 똑같은 고등학교 3학년 나이였고 중국에서 고등학교 1학년쯤에 한국으로 왔는데 중국에 있을 때부터 한국어 공부를 굉장히 열심히 했었기에 이 학교 과정을 잘 따라올 수 있었고요. 그래서 수시로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탈북 청소년들이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릴 때 여기 학생들에 비해 교육적인 혜택을 덜 받은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제가 가르치면서 지금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려주는 데 초점을 뒀던 것 같아요. '너는 대학도 갔다! 못 할 게 없다!' 졸업 축하해~

어느덧 졸업장 수여식이 모두 끝납니다. 26명의 졸업생 모두에게 교장 선생님이 직접 졸업장을 건네고 선물과 꽃다발까지 증정한 뒤 기념사진 촬영까지 하느라 제법 시간이 걸리는데요.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려도 또 같은 과정이 여러 번 반복 되도 누구 하나 재촉하지 않고 박수를 보냅니다.

졸업생들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소감을 남기는데요. 졸업생 대표로 선 김도윤 학생의 이야기 직접 들어보시죠.

[ 현장음-졸업생 김도윤] 돌이켜 보면 매 순간이 소중하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때로는 끊임없는 시험과 과제에 지쳐 힘들었던 날들도 있었고 친구들과 사소한 일로 다투고 화해했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이 모여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고 우리가 졸업하는 자리에 설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오늘 이 자리까지 울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우리를 믿어주시고 이끌어주신 선생님들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선생님들께서 보여주신 사랑과 열정 그리고 우리를 향한 끊임없는 응원은 앞으로도 삶에서 큰 지침이 될 것입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많은 추억을 뒤로 하고 졸업생들을 떠나보내는 선생님의 마음은 어떨까요? 3학년 1반 담임 강수산 선생님이 전하는 이야깁니다.

[ 현장음-강수산 선생님] 3학년 1반 학생들이 우리 학교에 처음 왔을 때 어색했던 표정이 지금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변화한 것 같아서 정말 뿌듯합니다. 3학년 1반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저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서로를 보듬어 주었던 시간이 앞으로 그리워질 것 같습니다. 프로그램 개발자로 성공한 도윤이, 방송 미디어 제작에 큰 별이 된 야루, 메이크업으로 미의 기준을 다시 만드는 예은이, 항공 정비의 장인이 된 혁이, 패션 산업을 주도하는 홍남이, 요리사로 명인이 된 수연이 또 호텔 셰프로 대성한 기정이, k 메이크업을 선도하는 은재, 공학연구소에서 훌륭한 연구원이 된 준영이, 동시통번역사로 언어의 탁월한 역량을 보여준 향이, 세계를 주도하는 k드라마를 만드는 성경이 또 노벨문학상을 다시 노리는 소설가 윤이, 프랑스 이탈리아 패션을 압도하는 디자이너 현정이. 때때로 힘든 일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 의지를 불태우고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최선을 다하길 소원합니다. 그리고 아침이 다가오는 새벽에 밝아오는 희미한 햇빛이라는 여명 학교의 어원처럼 우리 3학년 1반이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길 소원합니다. 3학년 1반 13명의 졸업을 다시 한번 축하하며 3학년 일반 모두 모두 파이팅.

반 아이들의 꿈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선생님의 진심 어린 축하는 그 어떤 졸업 선물보다 값진 것 같습니다.

졸업식장에서 유독 많이 우는 선생님이 보이는데요. 국어 담당 홍주희 선생님입니다. 아직 졸업식이 한창인데, 선생님 끝까지 괜찮을까요?

[ 현장음-홍주희 선생님] 제가 이번 졸업하는 3학년들 수업에 들어간 적이 많지는 않은데 학교 규모가 다른 데 비해서 크진 않다 보니까 아이들의 얘기를 들을 시간이 다른 학교에 비해서 생각보다 많거든요. 그래서 아이들의 얘기를 알고 이 애들이 또 졸업하니까… 또 아까 3학년 선생님께서 편지를 읽어주면서 너는 무엇으로 성공할 누구, 어떻게 해서 성공할 누구, 이런 얘기를 해 주시는데 그 모습을 또 상상하니까 또 벅차기도 하고 아이들 인생이 또 많이 힘들 텐데 걱정되기도 하고 그런 복잡한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Closing Music-

웃으면서도 자꾸만 눈물을 흘리게 되는 여명학교의 졸업식 현장, 남은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집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