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청진 출신탈북 방송인 조미영 씨가 진행하는 ‘질문있어요’가 이어집니다.
인서트) (남한 사람들이 탈북민들에게 던지는 질문)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시 성북구에서 살고 있는 000입니다. 지난주 8월15일 광복절이 토요일이었잖아요. 올해부턴 대체공휴일이 있어서 한국은 이번에 8월15일부터 17일까지 3일을 쭉 쉬었는데, 북한에도 대체휴일제도가 있는지 궁금해요.
대체휴일... 북한에선 안 쓰는 단어지만 무슨 의미인진 딱 감이 오시죠? 맞아요. ‘휴일을 대체해서 다른 날 쉰다’ 라는 겁니다.
한국 사람들은 새해 달력이 나오면 꼭 하는 일이 있습니다. 올해는 며칠이나 휴일이 있나 확인해보는 일입니다. 한국에서는 주5일 근무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을 하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쉽니다. 그리고 이외에 빨간색으로 표시되어 있는 공휴일, 그러니까 명절이나 기념일에 해당하는 날들까지 모두 합치면 1년 중 쉬는 날이 보통 115일 전후가 되는데요. 그런데 올해는 4번의 기념일이 주말과 겹쳤습니다. 이 며칠에도 사람들은 많이 아쉬워했죠.
이런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린 법이 올해 통과가 됐습니다. 빨간 날, 그러니까 공휴일이 토요일이나 일요일처럼 다른 공휴일과 겹쳐있는 경우 그 다음 주의 월요일까지 이어서 쉴 수 있도록 대체휴일제도를 법으로 제정한 거죠. 사실 한국 사람들은 지하철이나 버스, 자가용차를 이용해 출퇴근을 하고 사무실에서 의자에 앉아 컴퓨터로 업무 처리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생산현장, 로동현장에서 작업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실내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업이 훨씬 많은 것 같은데요. 대부분의 로동이 야외에서 몸을 쓰는 북한의 업무와는 많은 차이가 있죠. 단순 비교하면 한국 사람들의 로동강도는 북한 로동자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람들이 느끼는 피로도는 북한 로동자들 못지않습니다.
저 역시, 지금 한국에서 손에 흙 한번 묻히지 않는 일을 하지만, 북한에 있을 때 농촌동원, 도로공사 등등의 여러 노력현장에서 느꼈던 비슷한 강도의 피로를 느낍니다. ‘인제 남조선 노랭이 다 됐다, 삶이 너무 편안해서 그런 거다’ 질책하실 수도 있지만, 몸을 쓰는 일 못지않게 머리 쓰는 일 역시 쉬어주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저도 한국에 살면서는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이번에 대체휴일을 보면서 느끼는 게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왜 이토록 휴일을 원할까? 하는 건데요. 이곳 한국은 일 말고 할 수 있는 재미있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한국에선 휴일이 되면 연인이나 친구를 만나 맛있는 식당을 찾아가고, 재밌는 놀이문화를 체험하고, 근교 자동차 여행, 책읽기 등등 다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일 말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겁니다.
오늘 김민수 씨의 질문에 탈북민 조미영이 답한다면 ‘북한에 대체휴일은 없어요’ 가 되겠죠. ‘북한에선 1년에 공휴일, 쉬는 날이 며칠인가요?’ 라고 더 물어본다고 해도, 저의 답은 ‘그때그때 달라요’ 일 것 같습니다. 북한 역시 달력에 빨간색으로 명절, 공휴일이 표시돼 있지만, 유명무실합니다. 오히려 빨간 날은 궐기대회와 온갖 행사로 학생부터 로동자들, 가두녀성들까지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니까요. 여러분도 저의 답에 동의하시나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이윤만을 추구하고 로동자들은 그런 자본가들에 의해 로동력을 착취당한다고 북한에서 배웠고, 그렇게 믿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와보니 로동자들의 로동환경, 그리고 편안한 여가를 보낼 수 있는 환경을 기업과 국가가 그리고 로동자들이 함께 조율하고 만들어간다는 사실에 정말 놀라움을 느낍니다. 북한에서도 계속해서 천리마, 만리마 속도로 로동자들을 내몰 것이 아니라, 로동자들의 휴일을 법과 제도로 보장해주고, 무엇보다 휴일을 휴일답게, 오로지 여러분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탈북민 방송원 조미영이었습니다.
조미영, 에디터 이예진,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