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청진 출신 탈북 방송인 조미영 씨가 진행하는 ‘질문있어요’가 이어집니다.
인서트) 안녕하세요. 저는 경기도 김포시에 살고 있는 김정아라고 합니다. 탈북민들이 한국정착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느낀다고 들었어요. 한국정착하는데 가장 어려웠던 건 뭔가요?
정착에 가장 어려운 건 뭔가요? 이런 질문들은 이곳 한국사회를 살고 있는 탈북민들이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그만큼 한국사회 정착이 녹록치 않다는 얘기겠죠?
탈북민들은 모든 것이 낯선 대한민국, 북한에서 ‘남조선’이라고 불렀던 이 땅에 새롭게 정착한 사람들입니다. 탈북민들은 스스로를 뿌리째 뽑혀 다른 곳에 심어진 나무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심어진 곳의 토양과 기후에 맞게 자신의 모든 체질을 변화시키고 맞춰야만 생존이 가능해지죠.
한국엔 현재 3만명이 넘는 탈북민이 살고 있습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새로운 터전에 정착하는데 있어 크고 작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남북한은 원래 하나의 언어를 쓰는 한민족이었지만, 분단된 70여 년은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놨습니다. 경제적, 문화적 격차는 물론이고 지식과 상식, 사람과 삶을 바라보는 생각과 태도, 가치관까지 탈북민들은 한국사회의 정착과정에서 이 모든 것을 새롭게 몸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특히 탈북민들이 정착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는 것이 언어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언어라는 건 일상에서 사용하는 영어나 외래어 등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어려움도 있지만, 그보단 한국사람들의 언어적 습관, 다시 말하면 대화방식 차이로 인해 생기는 오해와 어려움에 관한 겁니다.
한 탈북민이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면접을 갔습니다. 그는 면접관들 앞에서 자신이 일을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를 설명했죠. 면접관들은 그의 얘기를 끄덕끄덕 들어주고 북한에서 와서 어려운 점은 없는지 물어봐 주기도 했죠. 그리곤 얘기 잘 들었고 만나서 반가웠다고 말합니다. 면접을 마치자 담당자가 다가와 ‘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희 회사 면접에 참여해주셔서 감사드리고 합격하면 조만간 연락드리겠습니다’라고 얘기합니다. 여기까지만 들은 탈북민은 합격을 확신하죠. 그는 ‘아, 알겠습니다. 빨리 좀 연락주시오’라고 얘기하고 자리를 뜹니다. 그는 새 회사에 다닐 생각으로 며칠을 보내지만 연락이 오지 않자 회사에 전화를 겁니다. ‘아, 왜 연락이 없습니까?’ ‘아 네. 아쉽지만 이번에 저희와는 함께 일할 수 없게 됐습니다’ ‘아, 다 합격된 것처럼 말하더니, 이게 무슨 말입니까? 여보세요? 여보세요??’
한국에선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안 좋은 얘기다 싶은 것들은 모두 완곡한 표현을 씁니다. 다시 말해 돌려서 얘기한다는 겁니다.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어이, 거 창문 좀 닫으라’라고 말하기 보단, ‘창문이 열렸네?’라고만 얘기하죠. 맞선 남녀는 서로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소개해준 사람에게 ‘좋은 사람 같은데, 저랑은 안 맞는 것 같아요’라는 말을 합니다. 처음 이런 대화법에 익숙하지 않은 탈북민들은 당연히 그 진짜 속내를 알아차리긴 어렵죠.
사실 저도 처음엔 이런 대화방식을 보며 한국사람들은 솔직하지 못하고,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사람에 대한 이런 불신은 관계를 망치고 정착을 더 어렵게 만들기도 했죠. 하지만 이 사회를 쭉 살다 보니, 그게 바로 상대를 위한 배려였단 걸 알게 됐습니다. 모든 상황에 ‘예스’를 할 순 없습니다. 한국사람들은 상대가 최대한 기분 나쁘지 않게 ‘노’라고 대답하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겁니다. 하지만 이 문화를 완전히 이해하기 전까지 탈북민들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죠.
여러분들에게 이곳에서 살면서 어려운 점을 얘기했지만 지금 북한동포분들의 삶을 떠올린다면 이건 그냥 배부른 투정에 지나지 않는 것 같기도 해서 민망해집니다. 그저 오늘 이 얘기들은 나중에 남북한 주민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게 될 때 지금 탈북민들이 겪는 그런 저런 일이 있을 수 있겠구나 정도로만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다음시간을 기약하며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서울에서 탈북민 방송원 조미영이었습니다.
출연조미영, 에디터이예진,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