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아나운서는 왜 화가 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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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청진 출신 탈북 방송인 조미영 씨가 진행하는 ‘질문있어요’가 이어집니다.

인서트)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영등포에 살고 있는 김형기라고 합니다. 저는 한국에서 아나운서, 그러니까 북한식으로 말하자면 방송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가끔 북한 보도를 텔레비전에서 보는데 방송원들의 말투가 한국하곤 많이 다르더라구요. 특별히 그렇게 격앙된 억양으로 방송하는 이유가 있나요?

북한에서 살 땐 당연하게 받아들여졌지만 북한을 나와 외부세계에서 다시 북한을 바라보니 정상적이지 않은 것들, 기이하게까지 느껴지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북한 방송이고 방송 중에서도 보도입니다. '우리 당과 인민의 위대한 수령이시며 전당전군의 령도자이신 김정은 동지께서 흥남비료공장을 현지지도 하셨습니다' 이건 북한사람이라고 해서 다 따라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린 호흡으로 숨이 넘어갈듯 말을 전하는 방송원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 역시 궁금해집니다. 왜 꼭 저렇게 얘기하는 걸까?

북한의 리춘희 방송원은 한국에서도 그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70세가 넘는 나이까지 북한의 핵실험이나 현지지도, 그리고 김일성, 김정일 사망 같은 굵직한 보도들을 도맡아 진행해 왔죠. 이분의 방송모습은 전세계 동영상 공유사이트인 유튜브에서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특유의 과장되고 격앙된 말투와 표정은 해외 방송에 소개될 정도였는데요. 영상을 본 사람들은 '보도가 이렇게 무서워도 되나' '보는 내가 다 숨이 찬다' '북한엔 방송원이 이분밖에 없나' '뭔가 속이 뚫리는 느낌은 있네' 등등 다양한 반응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종종 희극인들이 북한 사람 흉내를 낼 때 리춘희 방송원 특유의 말투를 똑같이 따라해 웃음을 주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국가들에선 어느 한쪽의 의견에 치우치지 않는 것을 보도의 기본 지침으로 삼습니다. 보도는 오로지 사실을 신속 정확하게 전하고 내용에 대한 판단은 시청자 스스로의 몫으로 남기고 있죠. 그래서 보도를 진행하는 방송원들 또한 시청자들로 하여금, 어떤 기쁨, 슬픔, 분노 등의 감정적 동요를 일으킬 수 있는 단어나 말투는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안정감 있고, 정확하게 사실을 전하는 데만 집중합니다.

북한의 보도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아마 혁명적, 전투적 이런 단어일 듯합니다. 국가가 국민들의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보장해주기는 커녕 6.25 전쟁이 끝난 지 70년 가까이 되는 지금까지도 일상을 전투처럼 살라며 계절마다 시기마다 계속해서 온갖 전투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리곤 전투 같은 일상이 해이해질까, 매일 방송에선 결의에 가득찬 방송원의 목소리가 사람들을 정신무장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죠. 물론 그 결과 많은 북한주민들은 북한방송을 외면하고 보도시간이 되면 시청을 거부하고 텔레비전 자체를 꺼버리는 반응까지 나오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북한방송도 어느 정도의 변화를 꾀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긴 합니다. 첨단식 보도화면을 마련하기도 하고, 새로운 방송원들이 좀 더 부드러운 말투로 방송을 하기도 하고 폭우나 태풍 때에는 현장에 나가 있는 기자를 실시간으로 연결하거나 하는 방식들 말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오늘같은 질문을 탈북민들이 받게 되는 건 세계 많은 사람들의 눈에 북한방송과 보도는 왜곡되어 있고, 이상하고, 기이한 모습으로 비쳐진다는 겁니다. 북한의 보도가 정상적인 국가의 제대로 된 방송보도로 거듭날 수 있는 그 순간까지 여러분들에게 다양한 정보들을 편안한 말투로 정확하게 전달해드릴 것을 약속드리며 오늘방송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탈북민 방송원 조미영이었습니다.

출연 조미영, 에디터이예진,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