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청진 출신 탈북 방송인 조미영 씨가 진행하는 ‘질문있어요’가 이어집니다.
인서트)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종로구에 살고 있는 이승주라고 합니다. 내일이 추석인데, 북한에선 추석을 어떻게 보내나요?
저는 한국에 온지 10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추석명절 때마다 받았던 질문입니다. 북한의 '추석 명절은 어떤가요?' 추석 풍경을 한마디 말로 설명하긴 어려워서, 저는 이 질문 받을 때마다 “한국의 추석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라는 답을 했었습니다.
전통 명절은 그 나라의 역사와 전통, 문화와 정서를 품고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중요시 여기는 우리 한민족은 가을에 추수한 햇살로 떡을 만들어 조상의 산소를 찾았고 정을 나누는 풍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년 중 달이 밝고 바람도 시원해서 좋은 날, 가족들이 모여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는 풍경들을 만들어 낸 거겠죠. 추석이 되면 산소를 찾아 벌초를 하고 오랜만에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여 안부를 전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풍습은 지금도 남북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역시 긴 분단의 시간은 전통 명절의 풍경도 조금은 바꿔놓은 듯 합니다. 북한에서 일년 중 민족최대의 명절을 꼽으라면 아마 본능적으로 태양절과 광명성절 정도는 얘기를 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누구나 설과 추석이라고 답합니다. 민족최대 명절인 만큼 연휴기간도 최대죠. 올해는 지난주 토요일부터 추석명절 연휴가 시작됐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일을 보내며 명절맞이를 하고 있는데요. 한국의 추석 풍경 중엔 북한에선 절대 볼 수 없는 풍경이 있습니다. 바로 민족 대이동입니다.
한국의 인구가 5200만명 정도 됩니다. 이중 서울과 경기도에 2300만명 정도가 살고 있습니다.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서울과 수도권에 몰려있는 건데요. 그러다 보니 설과 추석 같은 큰 명절이 되면 긴 연휴를 맞아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으로 갑니다. 교통이 편리한 한국에선 하루 안에 서울, 부산을 왔다 갔다 할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그러니까 평양에서 청진 정도 거리를 가는데 고속열차를 타면 3시간 정도 걸립니다. 안 믿어지시겠지만 사실입니다. 철도 뿐만 아니라 유리같이 매끄럽고 넓은 고속도로들도 전국 방방곡곡 연결돼 있죠. 그래서 추석 풍경을 항공 촬영한 영상을 보면 장거리 버스정류장, 기차역, 고속도로에는 사람들과 차로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이 모습은 여러분께 영상으로 직접 보여드리지 못해 아쉬울 정도로 장관이죠.
꽉 막힌 도로의 사람들은 평소 2-3시간 거리를 5-6시간 이상 운전한다며 불평하지만 탈북민들은 그저 부럽기만 합니다. “우린 15시간, 아니 50시간 걸리더라도 고향에 갈 수만 있다면 밤 패서 운전할 수 있을 텐데...” 라고 말이죠. 추석 명절, 북한의 고향을 찾아 조상의 산소에 술 한 잔 따르고 가족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며칠 밤인들 왜 운전을 못하겠어요.
추석얘길 하다 보니 마음 아픈 부분이 또 생각이 나네요. 여기선 제사상을 차릴 때 올리지 않는 음식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멸치, 꽁치 등 '치'자가 들어간 물고기, 그리고 고춧가루를 사용한 음식 등 보통 자손들에게 화가 생길 수 있다거나 귀신을 오히려 쫓는다는 설이 있다 보니 금기시하는 건데, 북한에선 무슨 음식이든 하나라도 더 올려서 상을 채우려고 어머니들이 애쓰셨던 모습이 생각이 납니다. 평소에 아끼고 아꼈던 고춧가루를 비로소 추석에야 꺼내 빨간 콩나물 반찬, 감자 반찬을 만들어 제사상에 올렸으니까요.
한국에서는 추석인사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을 주고 받습니다. 그만큼 일년 중 가장 풍요로운 시기라는 건데요. 이 때마저 북한에선 안 먹고 아껴야만 제사상을 차렸던 기억이 나 씁쓸해집니다. 내일이면 추석 명절인데, 전기는 들어왔는지... 떡가루 내려 방앗간을 돌아다니시는 건 아닌지… 떡을 할 쌀은 충분히 있는지… 모든 것이 궁금합니다. 추석이 되니 고향이 더 그리워집니다. 몸은 함께하지 못하지만 이곳에서 부모님의 건강과 안녕을 바라며 북한 고향을 향해 큰절을 드리고 있는 탈북민들이 있음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북한동포 여러분 부디 행복한 추석명절 보내세요. 지금까지 서울에서 탈북민 방송원 조미영이었습니다.
출연 조미영, 에디터이예진,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