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청진 출신 탈북 방송인 조미영 씨가 진행하는 ‘질문있어요’가 이어집니다.
인서트)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여의도에 살고 있는 박현숙이라고 합니다. 지난주 추석이 끝났잖아요. 추석명절은 제사나 명절준비로 여성들이 더 힘든 시기이기도 한데 북한여성들도 명절증후군을 겪는지 궁금합니다.
“명절…증후군? 그게… 뭔가요?” 오히려 되묻고 싶으시죠? 명절증후군은 전 세계에서 오로지 남조선에만, 그러니까 여기 한국에만 있는 증후군입니다. 증후군은 주로 어떤 질병의 증상이 단일하지 않고 그 원인이 불분명할 때 쓰는 용어입니다. 명절증후군. 오늘 처음 들어보시겠지만 여러분이 알고 나면 '북한에도 이름만 없을 뿐 그런 증후군, 있어요'고 답하실 지도 모르겠네요.
명절증후군의 구체적인 증상을 설명 드리면 일단 명절이 다가올 때부터 나타나기도 한다는데요. 머리도 띵 하게 아프고, 근육통도 느껴지고, 어지럼증이나 감기몸살, 우울증, 불면증 등 다양한 증상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여기까지 듣고 나니 '나도 그런 증상은 겪어봤어요' 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요. 결혼을 한 여성들이라면 특히나 더 그러실 겁니다.
한국에선 추석 같은 큰 명절이 지난 후에 '이혼 신고 건수가 증가했다', '몸이 아파서 병원을 찾는 여성들이 많다' 등의 보도가 나오기도 합니다. 이는 모두 명절증후군과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죠.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한국에서 가장 큰 명절은 설과 추석입니다. 일반적인 명절이나 기념일과 달리 설과 추석은 가족친지들이 모두 한 집에 모두 모이는 날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한 집에 모인 가족의 모습은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마냥 행복하고 단란한 모습만 있는 건 아닙니다.
북한에서의 경험을 떠올려 보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디나 사람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 얼굴에 반가움도 잠깐, 금세 할 말이 없어 어색해지기도 하고, 시부모님의 표정 하나하나 어디 언짢으신 건 아닌가 살피게 되고, 동서지간에 뭔지 모를 불편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평소보다 더 즐겁고 행복해야 할 명절이지만 여러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말 한 마디에도 예민해지고 감정적 소모가 큰 날이 되기도 합니다.
또 설과 추석에는 조상님께 올리는 제사가 있어 어느 때보다 많은 음식을 해야하는 날이죠. 제사 음식은 가짓수도 많고 품이 많이 드는 음식들이다 보니 거의 하루 종일 음식 준비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쪼그려 앉아 지짐이를 만드느라 다리가 저리고, 고개 숙이고 송편을 빚느라 목도 아프고, 손목도 아픕니다. 명절엔 긴장해서 못 느꼈지만 끝나고 나면 온몸이 다 욱신거리죠. 그렇게 명절 이후 느껴지는 몸과 마음의 병이 명절증후군이라는 말까지 만들어낸 겁니다.
다행히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진 지금, 어머니들도 더 이상 힘든 걸 혼자 견디기만 하진 않는 것 같습니다. 요즘 한국의 드라마 속엔 ‘평생 밥해서 바쳤으니 이제부터 밥은 직접 해서 먹어라’ 남편에게 파업을 벌이는 어머니, 남편이 집안일을 같이 하지 않는다면 이혼을 선택하겠다는 어머니, ‘이제 제대로 된 나의 삶을 살겠다’ 가족들에게 발표하는 어머니 등 달라진 어머니상이 등장합니다. 현실 속에서도 ‘내가 겪은 시집살이와 힘든 제사를 나의 며느리에게 물려주진 않겠다’ 그 결단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어머니까지, 주변의 달라진 어머니들의 모습은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올해 추석에 <추석제사상, 직접 장을 봐서 음식을 하면 달러로 환산, 135달러, 다 해놓은 음식을 사서 상차림만 하면 118달러>라는 신문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제 제사음식을 전문적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회사들도 많아지고 있고 가격이나 음식의 품질도 아주 좋아서 명절증후군 얘기 나오지 않게 가족들이 의논해서 제사음식을 사서 제사 지내는 집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아마 조상님도 자손들이 힘 들이지 않고, 제사로 인한 불화 없이 행복하기를 더 바라시겠죠?
하지만 어쩌면 북한의 어머님들 중엔 ‘밤 새서 음식하고, 온몸이 다 아파도 괜찮으니 가족들 풍족하게 먹일 식량이나 많았으면 좋겠다’ 생각하신 분들도 있을 수 있겠네요. 북한의 어머니들이 모든 걱정 내려놓고 오로지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될 그날이 하루라도 좀 빨리 오길 바라며 오늘 방송 마치겠습니다. 서울에서 탈북민 방송원 조미영이었습니다.
출연조미영, 에디터이예진,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