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청진 출신 탈북 방송인 조미영 씨가 진행하는 ‘질문있어요’가 이어집니다.
인서트) 안녕하세요. 서울 부산에 살고 있는 김현조라고 합니다. 북한의 영상 보면 북한사람들이 김정은 위원장을 보면서 막 울고 환호하고 그러던데 그거.. 혹시 연기인 건가요? 아니면 진심으로 그렇게 막 기뻐서 눈물 흘리는 건가요? TV 볼 때마다 궁금했어요.
'눈물연기라니… 북한사람들이 모두 인민배우인 줄 아나' 혹시 이런 생각 드시나요? 올해 평양에서 열린 9.9절 행사에도 야위고 까맣게 탄 얼굴로 만세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는 북한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더니, 아니나다를까 이 질문이 또 나왔네요.
북한에서 김씨일가가 등장하는 행사를 1호행사라고 하죠. 1호행사는 북한사람이라고 해서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김씨일가를 아주 먼 곳에서 형상만이라도 볼 수 있는 행사에 참가하려면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 사는 특권? 정도는 있어야 하죠.
사실 저는 함경북도 청진 출신이라 1호행사에 참가해 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김씨일가를 위해 눈물을 흘린 경험은 있죠.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네요. 바로 김일성주석 사망 때였습니다. 당시 인민학교를 다녔었는데, 비가 축축히 내리는 날이었죠. 평소와 달리 교실로 들어오자마자 교탁 밑으로 들어가 한참을 훌쩍이던 선생님은 무슨 일인지 몰라 놀란 숨죽이고 놀란 눈을 하고있는 아이들을 향해 '우리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 원수님께서 서거하셨습니다'라고 말씀하셨죠. 선생님의 말이 끝나고 2초 흘렀을까…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왕' 하고 30명 전원이 동시에 울음을 터트렸고 그렇게 교실 안은 울음바다가 됐었습니다. 당시 아이들 나이 고작 10살 정도였는데, 책상을 내리치며 우는 아이도 있었죠.
94년 당시 한국에서도 김일성 사망 소식과 함께 북한주민들의 반응이 소개됐었다고 합니다. 전국민이 상복을 입고 커다랗게 우뚝 선 동상 앞으로 몰려들어 콘크리트 바닥에 엎드려 우는 모습은 한국사람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에게 충격적이고 기이한 모습으로 각인됐습니다.
물론 아주 옛날 왕조시대에는 왕이 승하하시면 백성들이 함께 통곡하거나 왕의 용상을 뵙는 것만으로도 성은이 망극하여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기도 했죠. 하지만 현대사회 들어서 대부분 국민의 투표로 당선된 지도자는 일을 잘하면 환호와 지지를 받지만 반대의 경우 비판과 질책도 감수해야 하는 위치입니다. 북한은 만성적인 식량난과 인간으로서의 모든 권리와 자유가 철저히 억압된 사회입니다. 그럼에도 할아버지, 아버지를 거쳐 젊은 지도자가 된 김정은 역시 여전히 국민들로부터 환호의 눈물을 받고 있으니 외부에서는 북한사람들의 그 눈물이 정말 진심인가 믿어지지가 않는 듯 합니다.
보통 눈물이라는 건 극한의 감정에서 나오게 되잖아요. 너무 기쁘거나 너무 슬프거나… 감정은 억지로 만들어내기 어려운 거라 배우들조차 눈물연기는 쉽지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북한에서 살려면 마음만 먹으면 눈물이 나오는 능력도 필요하다고 답해야 할 것 같네요.
한국에는 3만3천명이 넘는 탈북민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 중엔 1호행사에 참가해본 이도, 김일성,김정일의 사망을 겪은 이도 있죠. 이들은 ‘눈물을 흘려야 하는 순간인 건 알았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우는 척하기 힘들었다’ 라고 이제야 솔직히 말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번 9.9절 영상에서도 여전히 감격에 겨운 듯 눈물을 흘린 이도 있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얼굴에서 눈물이 말라버린 듯한 고단함이 느껴졌습니다.
오늘은 '북한사람들의 그 눈물 연기인가요?' 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해봤는데요,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까지 세뇌와 통제로 조정 당하고 있는 북한주민들을 바라보는 바깥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 어떤지 북한동포분들도 어느정도 이해가 됐으리라 생각합니다. 부디 북한 동포분들이 억지 감정 만들어내지 않아도 되는 사회에 살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 방송 마무리 할게요. 지금까지 서울에서 탈북민 방송원 조미영이었습니다.
출연 조미영, 에디터이예진,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