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청진 출신 탈북 방송인 조미영 씨가 진행하는 ‘질문있어요’가 이어집니다.
" 안녕하세요 . 축구를 사랑하는 30 대 남자입니다 . 저는 현재 포항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데요 . 저의 하루는 사실 축구로 시작해서 축구로 끝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입니다 . 일단 평일에는 퇴근 후에 축구를 좋아하는 동료들과 경기를 한 다음 맥주 한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날이 많고요 . 주말엔 새벽에 하는 조기축구 모임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 쉴 때도 해외 축구 경기를 꼭 찾아보거든요 . 얼마 전엔 북한 여자 축구팀이 우승하는 경기도 봤는데 , 정말 잘하더라고요 . 북한 여자 축구 실력이 이렇게 유독 뛰어난 이유가 뭘까요 ? "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이런 질문 받은 적이 있습니다. '북한은 어떻게 그렇게 여자들이 축구를 잘해요?'하는 질문이요. 물론 그때도 남성분이 질문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걸 넘어 사랑한다 표현해도 될 만큼 축구에 푹 빠져 있는 남성분들이 대한민국엔 꽤 많습니다.
이렇게 축구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북한 여자 축구에 대해 모르실 수가 없죠. 북한의 남자 축구도 국제 대회에서 꽤 좋은 실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여자 축구에 대해선 아마 모두가 하나 같이 엄지를 척 올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그 실력이 대단한데요. 이번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여자 월드컵에서도 북한은 일본을 1-0으로 제압하며 정상에 올랐습니다.
북한은 지난 2006년과 2016년에도 이 대회에서 1등을 했었는데요. 지난 코로나19 여파로 2020년 취소되었다가 2022년 이 대회가 다시 열렸을 때는 북한이 불참을 했었고요. 이번 대회에 6년 만에 출전한 북한은 다시 한번 1등이라는 정상의 자리에 오른 겁니다.
이번 대회에서 북한은 7연승을 기록하는 동안 25득점 4실점으로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였는데요. 조별 예선전을 3전 전승으로 가뿐하게 통과했고, 16강에선 오스트리아를 5-2로 완파했습니다. 이후 8강에선 브라질을, 준결승에선 미국을 연달아 1-0으로 꺾으며 결승에 올랐고, 결승전에서 일본마저 무너뜨리며 영광의 1위를 차지한 겁니다. 브라질과 미국, 일본 모두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힐 만큼 대단한 축구팀이었다는 점에서 그 성과가 더욱 값지다고 할 수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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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번에 많은 분들에게 그 이름을 제대로 각인시킨 사람이 있는데요. 미국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주인공 최일선입니다. 빠른 속도로 오른쪽 측면을 돌파한 뒤 중앙으로 들어오면서 왼발로 선제골을 터뜨렸는데, '너무 멋있다'는 말이 연신 나오더라고요. 최일선 선수는 이번 대회에서 6호골을 터뜨리며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는데요. 특히 미국이나 일본, 그리고 여기 한국을 상대로 하는 경기에서 북한 선수들은 아마 젖 먹던 힘까지 다 쓸 정도로 최선을 다했기에 승전했을 때 정말 다들 크게 기뻐했을 것 같습니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올리면 국민들의 찬사와 환호는 물론이고, 큰 금액의 상금도 받습니다. 또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낸 선수들 중에는 텔레비전 광고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하고요. 여러 기업의 후원도 받을 수 있게 되는데, 물론 북한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미국을 상대로 이겼으니 최일선 선수를 포함해 여자 축구 선수들이 귀국하면 나름 북한에선 최고의 대우라고 할 수 있는 인민체육인 칭호나 노력영웅 칭호 하나는 받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북한의 여자 축구가 이렇게 강한 이유에 대해 오늘 질문을 주셨는데, 이럴 땐 저도 정말 어떤 답을 드려야 할지 난감하긴 하네요. 이 방송을 듣고 계신 북한동포 분들은 어떤 답을 생각하고 계실까요?
북한의 축구선수들은 대부분 경기 뒤에 열리는 기자의 질문에도 '지도자 동지의 따뜻한 보살핌과 지도 덕분이다'라는 답을 내놓죠. 선수들뿐 아니라 북한의 보도나 모든 매체에서도 일제히 아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똑같은 답변들 뿐일 겁니다.
물론 북한은 소학교 때부터 전국 각지에 축구 신동들을 평양으로 데려가 체계적인 훈련을 시킵니다. 북한이 국제 사회에서 긍정적인 부분으로 주목받을 수 있는 거의 몇 안 되는 기회이기 때문에 북한은 유능한 체육인 양성에 전력을 쏟고 있긴 합니다. 그렇게 전국에서 뽑혀 올라간 축구 신동들이 몇 년간 하루 종일 축구만 하면서 그 실력을 쌓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내는 기본 요건은 갖추어져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여자 축구는 세계적으로 훨씬 더 치열한 남자 경기보다 국가 경쟁력이 더 있었을 것 같고요.
하지만 오늘 북한을 살아봤던 북한 여성의 입장에서 답을 듣길 원하시는 거라면, 제 개인적으론 북한 여성들의 강인한 정신력과 근성이 우승의 가장 큰 요인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외부에서 바라봤을 때는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진정으로 그들은 지도자를 기쁘게 해드려야 한다는 신념, 그리고 공화국의 위상을 떨쳐야 한다는 중압감, 그리고 어쩌면 일생에 단 한번 밖에 없을 국제 대회 출전으로 불타오르는 투지와 열정 등이 강인한 정신력을 만들고, 그 정신력이 평소의 실력과 만나 좋은 성과를 올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북한 여자 축구단의 사진들을 보고 있는데요. 어찌 됐든 고생하셨다고 박수 쳐 드리고 싶고, 이 선수들을 계속해서 국제 무대에서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네요. 오늘은 여기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청진 출신 방송원 조미영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편집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