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청진 출신 탈북 방송인 조미영 씨가 진행하는 ‘질문있어요’가 이어집니다.
인서트)안녕하세요. 신다윤이라고 합니다. 내일이 설이네요. 한국에서는 설에 고향에 내려가거나 가족들 만나러 가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양손에 선물꾸러미들을 가득 들고 가잖아요. 탈북민들도 나중에 고향에 가게 된다면 꼭 갖다 드리고 싶은 선물 품목이 있으실 것 같은데,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가장 보내고 싶은 선물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탈북민들의 마음을 잘 아시네요. 탈북민들이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돈을 버는 가장 큰 이유는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일 겁니다. 하지만 돈도 벌었고, 선물도 사드릴 수 있지만 상황이 아직 보내드릴 수는 없네요.
한국은 평소에도 선물을 주고받는 일이 문화로 자리 잡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일년 중 특히 꼭 선물을 챙기는 명절이 설과 추석인 듯 합니다. 좋은 날 말로는 다 표현 안 되는 고마운 마음을 담는 데는 열 마디 말보다 선물 하나가 훨씬 효과적이니까요.
저도 이번 설에 고마운 분들에게 선물을 보냈습니다. 한국에 살다 보면 선물을 안 보내는 일이 더 어렵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곳은 선물을 보내기에 지나칠 정도로 편리한 세상이거든요. 참 좋은 물건들이 너무 많고, 선물을 할 수 있도록 아주 예쁘게 포장도 돼있습니다. 무엇보다 선물을 들고 직접 찾아가지 않아도 됩니다. 받는 사람의 주소를 몰라도 선물을 보낼 수가 있거든요.
요즘 한국에서는 보통 손전화기를 통해 간편하게 선물을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요. 컴퓨터 기능을 갖춘 타치폰 안에는 선물 받을 사람의 전화번호만 알아도 하고 싶은 선물을 바로 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많습니다. 만약에 소고기를 보낼 경우, 받는 사람에게 선물이 도착했다는 통보문이 오면 거기에 자신의 집주소만 입력하면 끝입니다. 그러면 직접 소고기를 판매하는 곳에서 입력된 주소로 선물을 보내주는 방식이거든요.
그 외에도 교환권이라고 해서 카페에서 커피를 살 수 있는 커피교환권, 빵집에서 빵을 구매할 수 있는 빵교환권 등 다양한 형태의 교환권이나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까지… 타치폰 통보문 하나로 주고받을 수 있는 선물의 종류도 너무 많고 주고받는 형태도 간편하고 빠릅니다.
탈북민들이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가장 보내고 싶은 선물을 물어보셨는데요. 사실 한 가지만 고르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탈북민들이 한국에 살면서 달고 사는 말 중 하나가 '야.. 여긴 이렇게 흔한데, 이걸 좀 북한에 보낼 수만 있다면...'입니다.
‘만약에, 나중에, 가능하다면...’ 이라는 전제가 달리긴 했지만 북한에 있는 가족친지에게 선물을 보낼 수 있게 된다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네요. 설날 북에 선물을 보낼 수 있게 된다면 이 참에 그동안 마음속 장바구니에만 담아뒀던 제품 모두를 한꺼번에 사서 가족친지들에게 보내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 겨울 피부 트지 말라고 바르는 화장품, 북한의 겨울엔 절대 먹어볼 수 없는 열대과일, 그리고 참 인기 많다는 한국라면, 말하는 밥가마, 집안일에서 해방시켜줄 각종 청소 기계들, 그리고 언제 먹어도 맛있는 소고기... 무엇보다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각종 건강기능 제품들까지요..
탈북민들이 북한의 가족, 친척들에게 돈을 송금하는 경우는 꽤 많죠. 한국에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곳에선 가족에게 내가 번 돈을 보내는 데 그걸 통제하거나 처벌하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제 말은 돈 뿐만 아니라 가족에게 보내는 탈북민들의 선물 또한 북한 당국만 막지 않는다면 지금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서울에서 전 세계 어디든 마음껏 물건을 주고받고 있는데, 제일 가까운 북한에, 그것도 가족에게 명절선물 하나 보낼 수 없는 현실이 야속합니다.
한국의 올해 설날은 5일동안 쉴 수 있습니다. 이런 날, 차안에 선물 가득 싣고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로 달려갈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직은 상상만 해보게 됩니다. 여러분 설명절 부디 따뜻하고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서울에서 탈북민 방송원 조미영이었습니다.
출연 조미영,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