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질문있어요] 꽃구경 갈 때도 여행증명서가 필요한가요?

0:00 / 0:00

앵커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청진 출신 탈북 방송인 조미영 씨가 진행하는 ‘질문있어요’가 이어집니다.

(음악 up & down)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 살고 있는 50대 주부입니다. 봄이 오는지 이제 확실히 햇살도 따뜻하고, 바람도 제법 훈훈한 느낌이더라고요. 뉴스에선 남쪽엔 벌써 봄꽃이 피기 시작했다고 하던데, 꽃구경을 한번 가야 하나 생각하고 있어요. 근데 제가 얼마 전에 우연히 북한에선 다른 지역으로 가는데도 여행증명서가 있어야 한다는 얘길 들었어요. 사실인가요? 그럼 북한 사람들은 다른 지역에 꽃구경 갈 때도 매번 동사무소 같은 곳에서 여행증명서를 떼는 건가요?”

(음악 up & down)

저도 보도에서 봤어요. 경북의 산수유마을에선 벌써 산수유꽃들이 꽃망울을 터뜨렸다고 하더라고요. 서울도 제법 바람이 푸근해진 걸 느낍니다. 이제 3월이 시작인데 벌써 꽃 얘기를 하고 있으니, 아마 제 고향 함경도 분들이 들으신다면 '거긴 정말 따뜻한 남쪽나라가 맞군요' 하실 것 같습니다.

'꽃 구경 갈 때도 여행증명서를 떼나요?'라는 질문에서 '남과 북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참 많이 다르구나' 또 한번 실감합니다. 꽃이 피는 계절이면 꽃구경을 나서는 게 이곳 한국에선 너무 자연스럽고 일상적이고 당연하기까지 한 일이거든요.

특히 오늘 질문자 분처럼 이제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꽤 생기고 꽃도, 여행도 좋아하는 50-60대 어머님들은 이맘때가 되면 꽃구경 한다며 전국 곳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하시죠. 근데, 이분들에게 꽃구경을 어디로 갈 건지, 무슨 꽃을 볼 건지, 갔다가 언제 올 건지를 다 보고하고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야만 어디로든 갈 수 있다고 공지한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요?

하긴 북한은 꽃을 구경하기 위해 다른 지역까지 이동하는 일은 절대 없을 테니, 사실상 꽃구경을 위해 여행증명서를 발급받는 사람은 없다고 단정지어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꽃구경이라는 목적으로 신청한 여행증명서는 발급 자체도 되지 않을 거고요.

북한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벗어나려면 무조건 '여행증명서'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동사무소에서 떼느냐고 물어 보셨는데, 아닙니다. 여행증명서는 '안전부' 소속 기관인 2부에서 떼게 됩니다. 제가 살았던 곳은 구역행정위원회 건물 안에 2부과가 있었는데, 사실 여기에서 정상적으로 '여행증명서'를 발급받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처럼 발급 부서에 가서, 순서표를 받고, 내 순서가 되면 신청서를 내밀고, 바로 그 자리에서 서류가 발급되는 것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북한 대부분의 서류가 그렇지만 특히 여행증명서는 뇌물 없이는 발급이 되질 않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여행증명서를 여행을 위해 떼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제가 '꽃구경을 위한 여행증명서'라는 말로도 남북이 참 많이 다르다고 느낀 이유기도 한데요. 북한의 교통상황을 고려하면 웬만해선 다른 지역으로 갈 생각 조차도 안 한다는 겁니다. 정말 집안에 대소사가 있는 경우, 아니면 장사를 위해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이 필요한 경우에만 여행증명서를 발급받게 됩니다.

제가 얼마 전 KTX라고 하는 고속열차를 타고 강원도를 다녀왔습니다. 조용한 기차 안에서 창문으로 따뜻한 햇살을 받으니 잠이 스르르 왔었는데요. 얼마나 푹 잤는지 목적지 강릉에 도착하고서야 깼습니다. '어휴 정말 푹 잤네' 하는 생각과 함께 문득 '여긴 기차표를 검사하질 않으니, 중간에 깨우는 사람도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곳 한국에선 '여행증명서'란 말 자체도 없고, 국내는 어디든 주민등록증, 그러니까 공민증을 갖고 나오지 않아도 아무런 검열이나 제한없이 자유롭게 정말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기차에서도 어떤 표 검사, 짐 검열 같은 것도 없고요. 쭉쭉 뻗어있는 고속도로엔 그 어떤 통제 초소도 보이질 않습니다.

앞서 질문에서도 믿기지 않는다는 느낌이 전달됐을 텐데, 북한에서처럼 한국에서도 지역별 이동을 '여행증명서 발급'이라는 제도를 통해 제한하고 통제한다면 엄청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니, 그냥 여기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제도인 것이죠. 질문에 답이 되셨길 바라며 오늘은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탈북민 방송원 조미영이었습니다.

출연 조미영, 에디터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