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청진 출신 탈북 방송인 조미영 씨가 진행하는 ‘질문있어요’가 이어집니다.
(음악 up & down)
“안녕하세요. 저는 순천에 살고 있는 중학생입니다. 얼마 전에 학교에서 북한에 대한 강연을 들었었는데, 북한에만 있는 특이한 과목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수령님, 장군님 따라 배우기’ 라는 교과목이라고 하던데, 더 자세하게 알고 싶어졌어요. 어떤 과목인가요? ”
(음악 up & down)
요즘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리고 있다고 하던데, 그 지역에 살고 있는 학생이군요. 몇 학년인지는 정확히 얘기를 안 해줬지만 일단 중학생이라고 하니, 북한으로 치면 초급중학교 학생으로 13살~16살정도의 나이가 됐겠네요.
탈북민들 중엔 한국의 초.중.고등학교의 초청으로 직접 학교로 가서 학생들에게 자신이 공부했던 북한에서의 교육과 학교생활 등에 대해 들려주는 강연이 종종 진행되는데, 순천에 사는 중학생이 그 강연을 듣고 궁금증이 더 생긴 듯 합니다.
'수령님 혁명역사 따라 배우기'라는 과목이 있다니, 북한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이상하게 들릴 겁니다. 지난주 방송이 만우절에 대한 내용이었죠? 누구나 거짓말을 주고 받으며 웃을 수 있는 날이라고 설명 드렸었는데, 아마 이런 과목이 있다는 얘기를 4월 1일에 했다면 사람들은 '에이 거짓말'이라고 하면서 만우절 농담으로 넘겨버렸을 것 같습니다.
나라의 역사나 역사 속의 위인들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현 지도자에 대해, 그것도 오로지 위대성과 찬양 일색인 내용들만으로 구성된 교과서를 제작해 실제 학교에서 정규과목으로 가르치고 있는 곳은 전 세계에 북한이 유일하고 그래서 이 사실은 북한만 벗어나 바라보면 정말 너무나도 이상하게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는 일이거든요.
오늘 질문자인 중학생도 신기하게 받아들인 것 같네요. 북한에만 있다는 그 이상한 과목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 달라고 하셨는데요. 일단 북한에서 지도자의 위대성과 찬양을 위한 교육은 유치원부터 시작됩니다. 이 과목을 배우기 위해 유치원부터 소학교까지는 학교마다 있는 연구실이라고 불리는 지도자의 온갖 치적들로 도배된 특별실로 들어가게 되고, 들어가기 전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옷차림을 단정하게 하며 경건한 마음을 갖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유치원과 소학교에서 배우게 되는 교과 과정의 정식명칭은 '경애하는 아버지 김일성 대원수님 어린시절 따라 배우기',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원수님 어린시절 따라 배우기'였습니다. 연구실이라고 이름 붙여진 교실에서는 다른 과목은 수업할 수 없고, 오로지 이 과목들만 공부하게 되죠. 일단 연구실에 들어가면 정 중앙에 정교하게 만들어진 집과 동네의 모형도가 크게 자리하고 있고, 주변을 빙 둘러 의자가 배치돼 있습니다. 이곳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이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는지, 아니, 북한식 표현으로 하면 ‘어떻게 탄생하셨는지’ 에서부터 배우게 됩니다. 어린 시절 일대기 등 위대성에 대해 공부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소학교를 졸업하면 이 과목은 끝이 납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혁명역사',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의 혁명력사' 과목이 시작됩니다. 이 과목에선 김일성이 일제 치하에서 어떻게 조국 광복을 이룩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회주의인민공화국을 완수했는지 등의 내용들이 들어있습니다. 북한에 있을 땐 몰랐는데, 대한민국에 와보니 그건 마치 예수 탄생과 일대기, 그리고 예수가 행하신 기적들에 대해 기록해 둔, 인류가 성스럽게 여기는 성경책 마냥 만들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북한의 교과서는 역사서라고 하기엔 사실관계가 전혀 확인되지 않은 허구의 내용들이 대부분입니다.
아마 정상적인 민주주의 사회에서 현 지도자를 찬양하는 내용의 교과목을 만들어 학교에서 가르친다면, 그 즉시 바로 학생은 물론 학부모들까지 들고 일어나 엄청난 반대와 시위가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혹, 여기까지만 들으신 북한 청취자분들 중 '우리 지도자 동지는 정말 위대하신 거고, 남조선의 지도자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 아닐까요...'라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계신 건 아니겠죠? 남북의 경제력, 아니 그저 남북 일반 국민들의 생활수준 딱 그 한 가지만 비교해본다면 북한의 지도자가 위대하다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도 않을 테지만 말입니다. 질문에 간략하게나마 답이 됐길 바라며 오늘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서울에서 청진 출신 방송인 조미영이었습니다.
출연 조미영, 에디터 이예진,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