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질문있어요] 북한에 장애인을 위한 복지사업이 있나요?

평양북도의 한 도로에서 장애인이 자전거를 개조해 만든 휠체어를 타고 있다.
평양북도의 한 도로에서 장애인이 자전거를 개조해 만든 휠체어를 타고 있다. (/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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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청진 출신 탈북 방송인 조미영 씨가 진행하는 ‘질문있어요’가 이어집니다.

(음악 up & down)

2022년 4월 11일 받은 질문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박성혜라고 합니다. 한국은 최근 장애인들도 원활한 이동권을 누릴 수 있게 해달라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데, 문득 북한에서의 장애인들의 삶은 어떤지 궁금해지더라고요. 북한도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사업을 하고 있을까요? ”

(음악 up & down)

한국에서는 지난해 12월부터 집중적으로 시작된 장애인들의 이동권 개선을 위한 시위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동권 개선', 다시 말해 장애인들도 좀 더 편리하게 가고 싶은 곳들을 마음껏 다닐 수 있는 여건을 국가가 마련해달라는 겁니다.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는 국민들에게 자신의 권리 쟁취를 위한 투쟁과 시위를 기본권으로 보장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선 크고 작은 시위들이 거의 매일이다시피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마 북한의 로동신문이나 조선중앙텔레비젼을 통해 장애인 시위 내용이 나간다면 '장애인들이 얼마나 살기 힘들면 시위에 나왔겠냐'며 한국사회에 대한 비난의 꼬투리로 사용했을 것 같네요. 그렇다면 한국에서 살고 있는 제가 실제 이번 한국의 장애인 시위대의 주장 내용 말씀드려 볼게요.

일단 장애인 단체의 요구사항에는 정부의 장애인 활동 지원 예산, 그러니까 장애인들을 위해 쓸 수 있는 국가의 돈을 기존 1조 7천억 원, 그러니까 13억 7,800만여 달러에서 2조 9천억 원, 23억 5,100만여 달러로 늘려달라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그 외에도 장애인 활동지원 시간을 24시간 보장해주고 이를 국가 예산으로, 그러니까 국가돈으로 해달라는 내용, 그리고 장애인들이 이용하는 택시 비용을 정부가 국비로 해달라는 내용도 들어있습니다.

전에 북한에서 살 때, 한국사람들이 시위하는 영상을 보며 아버지가 '저 사람들은 삶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위해 투쟁하는 거야'라고 하셨던 말이 기억납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북한의 선전을 그대로 믿고 있었던 인민학교 학생인 저는 '아버지 반동입니까? 왜 그런 말 합니까?'라고 답했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북한에서도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알았던 것 같습니다. 시위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 일어나지만, 북한과 같은 상황에선 시위 정도가 아니라 폭동이 일어나야 정상적인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걸 말이죠.

전에 누군가에게서 '북한에서 장애인들은 밖에 돌아다니지 못하게 한다던데 사실인가요?' 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순간 '어...'하며 답을 못 했었죠. 그렇다고도 또 아니라고도 어느 쪽으로도 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거든요.

물론 북한에서 장애인들은 밖으로 못 나오게 하라고 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외국인들의 방문이 있거나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장애인들의 일선 도로 통행을 막았던 적은 있었던 것 같거든요. 골목길로 우회해서 가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한국이나 정상적인 인권국가에선 있을 수도 없는 일인데 말입니다. 이런 상황이니 북한에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가 있을 리 없다는 게 오늘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사실 저는 장애인이라는 말도 한국 와서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에선 군대에서 상해를 입은 영예군인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몸이 불편한 분들을 부르는 정식 명칭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온갖 비하의 용어만 존재했었으니까요.

제가 어렸을 때까지만 해도 동네엔 다리를 절거나 눈이 안 보이거나 등이 굽어 있던 다양한 장애를 가진 분들이 꽤 계셨습니다. 하지만 1997년부터 시작된 북한의 일명 '고난의 행군' 시기를 지나고 언제부터인가 주변에서 장애인 분들을 마주친 기억이 없습니다.

비장애인들, 모든 몸을 제대로 다 쓸 수 있는 사람도 살아남은 게 기적인 시절이었으니 몸이 불편했던 장애인들의 생존은 몇 배로 더 어려웠을 겁니다. 세월을, 아니 국가를 잘못 만나 한평생 고생하셨을 북한의 장애인 분들을 떠올리니 마음이 아프네요.

북한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은 장애인들에게도 천국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돕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 헤아릴 수 없는 그분들의 불편함과 아픔들이 있기에 그들은 자신의 권리 향상을 위해 계속해서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낼 겁니다. 그리고 탈북민들은 북한 내에서의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의 인권 향상을 위해 북한의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계속해서 이어갈 겁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탈북민 방송원 조미영이었습니다.

출연 조미영,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