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질문있어요] 북한에도 어버이날이 있나요?

지난 2020년 다가오는 어머니날(16일)을 맞아 북한 평양시 대성구역 여명꽃금붕어상점이 손님으로 북적이고 있다.
지난 2020년 다가오는 어머니날(16일)을 맞아 북한 평양시 대성구역 여명꽃금붕어상점이 손님으로 북적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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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청진 출신 탈북 방송인 조미영 씨가 진행하는 ‘질문있어요’가 이어집니다.

(음악 up & down)

“안녕하세요? 저는 인천에 살고 있는 류성희라고 합니다. 어제가 한국에선 어버이날이었잖아요. 저는 3살짜리 아이가 있는데 어린이집에서 카네이션을 만들어와서 아빠 엄마한테 주더라고요. 너무 행복한 어버이날이었는데, 문득 북한에도 어버이날이 있는지, 북한에서도 카네이션을 달아주는지 궁금하더라고요. 알려주세요”

(음악 up & down)

한국에서 매년 5월 8일은 어버이날입니다. 어버이의 은혜에 감사하고, 어른과 노인을 공경하는 경로효친의 전통적 미덕을 기리는 법정기념일이라고 명시돼 있죠.

'어버이의 은혜에 감사한다' 여러분 이 표현, 뭔가 익숙하면서도 낯설지 않으신가요? 어버이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아울러 이르는 순 우리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부모님을 향한 '어버이의 은혜' 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마다 어딘가 모를 부자연스러움을 느낍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여전히 난 북한사람이구나' 생각하죠.

북한에선 살았던 세월 동안 '어버이' 라는 표현을 붙일 수 있는 존재는 부모님이 아니었습니다. 부모님에게 '은혜' 라는 표현 역시 써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북한주민들이 우러러 찬양하며 은혜를 기려야 하는 존재는 부모님이 아니라 김씨 일가였으니까요.

정작 그 어려운 고난의 행군과 지금까지 이어지는 경제난 속에서 자신의 배를 조여가며 자식들 어떻게든 배 곯게 하지 않으려고 온몸으로 버티셨던 분들, 그렇게 자식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신 분들에게서 무슨 자격으로 '어버이' 라는 표현마저 빼앗아 간 걸까 생각하니 울컥 화가 나네요.

전 개인적으로 살아가면서 가족만큼 중요한 것이 없구나 하는 걸 한국에 와서야 느끼게 됐습니다. 그냥 먹고 사는 것이 풍족해지고 여유가 있어서겠지 생각했는데, 이번 어버이 날을 보내고, 또 여러분께 어버이날에 대해 설명을 해 드리다 보니, 국가가 정한 이런 기념일들 또한 개인의 생각이나 삶에 영향을 줬구나 싶습니다.

'어버이날' 같은 국가의 정식 기념일, 그리고 '어버이의 은혜' 라는 표현들을 통해 사람들은 또 한번 부모님의 은혜를 떠올리고 감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고, 그렇게 점차 가족과 부모님에 대한 감사의 인사와 마음을 전하는 일들이 하나의 문화로도 자리잡게 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에선 5월이 시작될 즈음부터 곳곳에서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판매하는 매장들이 보입니다. 보통 어버이날에는 붉은색 카네이션을 드리게 되는데, 붉은 카네이션의 꽃말이 부모님에 대한 존경과 감사라고 합니다. 저도 조카가 있는데 어제 어린이집에서 만들어온 카네이션을 자기 엄마, 아빠는 물론, 할머니에게도 달아주는 모습이 정말 예뻤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을 향해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를 전하는 모습이 정말 예쁘고 뭉클했습니다.

오늘 질문자 분께서 북한에도 어버이날이 있는지, 또 카네이션을 달아주는지도 물어봐 주셨는데요. 북한엔 어버이날은 없습니다. 무엇보다 어버이라는 표현을 부모님께 쓸 수 없습니다. 북한은 자녀들도 국가가 키웠고, 그래서 수령이 우리의 어버이라고 교육... 아니 세뇌시키고 있거든요.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요. 2012년에 어버이날은 아니고, '어머니의 날'이 제정되긴 했습니다. 11월 16일이죠.

북한에서도 어머니의 날엔 한국처럼 똑같이 붉은색 카네이션을 어머니 가슴에 달아드리게 되는데요. 종종 북한 텔레비전에서도 소개되는 모습들이죠. 하지만 평양을 제외한 지방도시들에서 11월에 생화 구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한국은 온실이 잘돼 있어서 일년 내내 겨울에도 다양한 생화들을 볼 수 있지만 북한은 평양을 제외한 타 지역에선 대부분 생화가 아닌 종이로 만든 꽃을 사용하게 됩니다.

마음을 전하는데, 꼭 생화가 아니어도 상관없긴 합니다. 정말 감사한 이가 가족이고 나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이 부모님임을 자녀들이 잘 알고 감사의 인사와 마음을 잘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어버이날의 의미를 되새긴 거라 할 수 있겠죠. 부모님께 '어버이의 은혜' 라는 말은 사용하지 못하지만 우리의 어버이가 수령이 아닌 부모님이시고, 정말 감사와 은혜에 보답해야 하는 이도 부모님이라는 걸 북한 동포 분들도 잘 아실 거라 생각하며 오늘은 여기서 줄일게요. 지금까지 서울에서 탈북민 방송원 조미영이었습니다.

출연 조미영, 에디터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