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질문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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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청진 출신 탈북 방송인 조미영 씨가 진행하는 ‘질문있어요’가 이어집니다.

(음악 up & down)

“안녕하세요 저는 경상남도 창원에 살고 있는 한지수라고 합니다. 어제 5월 15일이 한국에선 스승의 날이었잖아요. 북한에도 스승의 날이 있나요? 조미영씨는 북한에서 학창시절을 보냈을 텐데, 기억나는 선생님이 있으신가요?”

(음악 up & down)

해마다 돌아오는 스승의 날에 받게 되는 질문들입니다. '북한에도 스승의 날이 있나요?' '학창시절 기억나는 선생님이 있으신가요?' 북한은 스승의 날이 아니라 9월 5일 교육절이 있습니다.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는 한국의 스승의 날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죠. 그리고 저는 인민학교와 고등중학교 과정에서 총 5명의 선생님이 계셨는데 이제 얼굴은 거의 흐릿하지만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 선생님의 말씀이나 표정들은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세요? 이 질문을 듣고 딱 떠오르는 스승이 있으신가요?

이곳 남한은 새 학년이 시작될 때마다 반이 바뀝니다. 2학년에선 3반이 될 수도 있고, 3학년에선 2반이 될 수도... 그렇게 친구들도, 반도 다시 배정을 받게 되죠. 그리고 중요한 건 담임선생님 역시 새 학년마다 바뀌게 됩니다.

제가 북한의 소학교에 해당되는, 그러니까 남한의 초등학교 학생들을 만났던 적이 있었는데 '여러분 북한은 담임선생님이 한번 정해지면 졸업할 때까지 바뀌지 않아요. 어떨 것 같아요?'라고 했더니... “좋아요~~” “싫어요~~” 서로 다른 함성들이 나왔었습니다. 옆에 계신 선생님들은 그저 웃고 계셨죠.

소학교의 어린 친구들에겐 특히 선생님은 너무 큰 존재들입니다. 아이들은 집이 아닌 바깥에서 가족이 아닌 남과의 첫 집단생활을 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선생님의 눈빛, 말투, 그리고 칭찬 한 마디에 울고 웃고 하게 되더라고요.

사실 저는 북한에서의 인민학교 시절 담임선생님보단 음악소조 선생님의 얼굴이 더 많이 생각납니다. 선생님이 너무 잘해주셨냐고요? 아니에요. 많이 맞았거든요. 항상 지시봉을 갖고 있다 연주가 틀릴 때마다 손을 내리치셨는데, 그때의 아픔과 선생님의 무서운 표정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아마 이 방송을 듣고 계신 북한 청취자분들은 저의 얘기에 공감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학창시절에 선생님에게 한번도 안 맞아본 아이가 있을까 싶게.. 학교에서 선생님들의 폭력이 일상적인 일이었습니다. 제가 너무 일반화 했을까요? 적어도 저의 학교, 저의 반에서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도 불과 2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선생님이 학생을 체벌하는 일들이 꽤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학교 체벌 금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기 시작했고, 2010년엔 한 초등학교 교사의 심각한 체벌이 사회적 논란이 되면서 2012년 교사의 직접 체벌이 법으로 아예 금지됐습니다.

스승의 날을 맞아서 기억에 남는 선생님에 대한 답을 하고 있었는데, 제가 너무 딴 얘기로 샜었네요. 사실 남한이나 북한이나 온화하고 따뜻하게 정성으로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들이 훨씬 많습니다. 저희 때는 고등중학교로 보통 6년을 한 선생님과 함께하다 보니 졸업할 때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졸업선물로 학생들이 돈을 모아 선생님께 삼면경대나 레자장판, 그리고 록음기도 선물해드렸던 것 같습니다.

고난의 행군시기 북한에서 가장 어려웠던 분들이 선생님들이었습니다. 학교에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기에 당장 먹을 게 아무것도 없어도 물만 먹고 학교에 나와서 몇 시간을 칠판 앞에 서서 아이들을 가르쳐야 했었죠. 한번은 수업을 끝낸 선생님이 복도에서 휘청이시더니 벽을 잡고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을 봤습니다. 수업할 땐 열정적이어서 몰랐는데 며칠을 음식을 못 드셔서 결국 빈혈로 쓰러지셨습니다.

북한은 아이들이 국가의 미래이고 그 아이들을 키워내는 중차대한 일을 하는 이들이 선생님이라고 말은 하고 있죠. 제가 알기로 북한에서 '님'자를 붙일 수 있는 이도 수령님 장군님 외엔 선생님이 유일한 것 같습니다. 진심으로 이분들의 로고를 알고 있다면 적어도 선생님들이 식사는 하고 수업을 할 수 있도록 배급문제부터 해결해줬으면 좋겠네요. 정말 너무 당연하게 받아야 할 것에 대해 간곡하게 사정을 하게 되는 현실이 씁쓸합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탈북민 방송원 조미영이었습니다.

출연 조미영 에디터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