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청진 출신 탈북 방송인 조미영 씨가 진행하는 ‘질문있어요’가 이어집니다.
(음악 up & down)
“안녕하세요. 서울에 살고 있는 40대 여자 한수연입니다. 저는 현재 결혼을 하지 않은 미혼인데요. 주변에서 '혹시 비혼주의자신가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물론 저는 언젠가 좋은 사람이 생기면 결혼하겠다는 주의라 비혼주의자는 아니지만 나이가 있다 보니 이런 질문을 종종 받는 것 같습니다. 북한 여성들은 결혼을 일찍 한다고 들었는데, 혹시 북한에도 '비혼주의'랑 비슷한 용어나 현상 같은 게 있을까요? 북한여성들의 결혼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음악 up & down)
북한에서 여전히 이말… 쓰나요? '23살은 금값이고 24살은 은값이고 25살이 지나면 파철값이다...' 이 기준으로 하면 저는 파철값에도 한참 못 미치는 30대의 미혼입니다. 물론 비혼은 아니고요.
여러분 한국엔 참 재미있는 용어들이 많습니다. '비혼' 이말 처음 들어보신 분들 많죠? 아닐 ‘비’자를 써서 결혼을 못한 게 아니고 안 한다는 의미가 강하게 들어있는 말입니다. 혹, 들으시고 '결혼을 안 하는게 어딨어, 그저 못한 거겠지...'라며 비혼을 결혼 못한 사람들의 궁색한 변명처럼 들으실까요?
사실 한국에선 몇 년 전부터 '비혼'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했습니다. 다시 설명해 드리면 삶의 다양한 선택지들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지금의 사회에서 결혼 마저도 ‘내가 선택하겠다, 또 안 하겠다’ 이렇게 선택하고 나선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얘긴데요. 한때 비혼식이 치러졌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도 있습니다.
일반 결혼식처럼 식장을 빌리고 하객들을 초대하고 그들 앞에서 결혼선언문이 아닌 비혼선언문, 즉 나는 앞으로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을 선택했다는 것을 가족, 친지들 앞에서 발표하는 거죠. 그냥 무슨 웃기는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생각하기엔 그들 나름대로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남과 다른 삶에 대한 결단과 용기까지 보여준 사회변화의 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 방송을 들으시는 분들 중 결혼한 여성분들에게 묻고 싶어요. 정말 결혼이 하고 싶어서 하셨나요? 만약 그랬다면, 결혼이 진짜로 하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이런 질문 거의 받아보신 적 없겠지만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듯, 생각해보면 여성들이 결혼을 하는 데에도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너무 좋아서 늘 함께 있고 싶다거나 이 남자와 가정을 이루면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아니면 아이를 낳고 싶어서... 혹은 경제적으로 남자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까, 조금 더 나아가 남자없이 여자 혼자 어떻게 사냐, 나를 보호하고 먹여 살려 줄 남자가 있어야지... 이것도 아니라면 그래도 남편이 없는 것보단 있는게 나으니까… 뭐 이런 이유들일까요?
북한에서는 대부분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되죠. 20대 중반, 늦어도 30살이 되기 전에 결혼식을 올립니다. 그동안 조상 대대로 이어져온 결혼 관습이 큰 몫을 했겠지만 '저 집 딸내미는 30살이 다 되도록 시집도 안 가고 뭐하다오.. 무슨 문제 있는 거 아이오' 이런 다른 선택을 받아들이지 않은 주변의 시선도 여성들을 일찍이 결혼으로 등 떠밀었을 겁니다.
그리고 북한사회에서 여성들이 비혼을 선택할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여자 혼자 살아가기엔 너무 험한 세상입니다. 도둑이 들면 어떻게 할 것이며, 석탄을 누가 부엌까지 날라다 줄 것이며, 나무는 누가 패 줄 것인가.. 사소하게는 집안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힘쓰는 일들, 그리고 사회의 치안불안으로 생기는 위협에 대비하려면 집안에 남자가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거죠.
남한에서 비혼주의 여성들이 늘어난 이유는 여성 스스로의 능력으로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있고, 일한 만큼 로임을 받고, 국가가 치안관리를 제대로 해주고, 그리고 정책적으로 여성들의 권익을 보장해주는 제도를 누릴 수 있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기 전까진 북한 여성들은 꽃 같은 이른 나이에 꿈 한번 가져보지 못한 채 결혼이라는 제도에 의지할 수 밖에 없고, 비혼은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줄일게요. 지금까지 서울에서 탈북민 방송원 조미영이었습니다.
출연: 조미영 에디터: 이예진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