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질문있어요] 북한에서도 캠핑을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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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청진 출신 탈북 방송인 조미영 씨가 진행하는 '질문있어요'가 이어집니다.

(음악 up & down)

“안녕하세요. 저는 대전에 살고 있는 40대 주부입니다. 오늘이 추석연휴 마지막 날이잖아요. 저희는 이번에 추석 당일 간단히 차례만 지내고 가족끼리 1박 2일 캠핑을 다녀왔어요. 날씨가 워낙 좋아서 정말 자연에서 제대로 쉬고 오는 기분을 느꼈는데, 혹시 북한에도 캠핑 문화가 있나요?”

(음악 up & down)

캠핑 좋죠. 집 안보다 집 밖에 오래 머물고 싶어지는 정말 청량한 가을입니다. 한국은 오늘이 나흘의 추석연휴 중 마지막 날이었어요. 북한동포여러분들도 추석 잘 보내셨나요? 먼저 질문자 분 얘기 중 '차례'에 대해 잠깐 얘기해볼까요? 제가 살았던 함경도 지역에선 '제사'라고만 했었는데, 이곳 남쪽에선 낮에 지내는 제사를 '차례'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추석 당일 산소에 가서 제사를 드리는 북한과 달리 이곳 남쪽은 추석 전에 산소에 미리 가서 벌초하고 추석 당일 집에서 제사상을 차리고 가족들이 모여 절을 올리기도 하고요. 집에서 차례를 지낸 후 추석 당일 성묘만 하기도 합니다. 아마 질문자 분도 추석 당일 차례만, 그러니까 집에서 제사만 간단히 지내고 가족여행을 떠나신 것 같습니다.

한국은 추석의 풍경이 전과 많이 바뀌었어요. 원래 추석은 가족뿐 아니라 일가 친척들이 모두 모여 그간의 안부도 묻고 함께 조상님께 인사도 드리고 맛있는 음식도 나누는 그런 대가족의 명절이었잖아요. 하지만 한국에선 휴대전화가 발달하면서 안부는 전화기 속으로 얼굴을 보며 언제든 물을 수 있게 됐고, 교통이 발달하면서 고향에 언제든 빠르게 오갈 수 있게 됐으며 명절이 아니더라도 맛있는 음식은 늘 넘쳐납니다. 특히 며칠 내내 온 가족 음식 차리느라 힘든 며느리들의 육체노동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늘면서 차례도 많이 간소화되고 있죠.

이런 분위기 속에서 추석이나 설과 같은 전통적 명절에도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추석 얘기가 길어졌는데, 사실 오늘 질문은 북한에도 캠핑이 있냐는 거였죠? 저도 캠핑을 너무 좋아하는데요. 캠핑을 순우리말로 풀면 야영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북한에도 야영, 그러니까 캠핑이 있긴 한 셈이죠. 하지만 여러분들이 지금 떠올리시는 야영과 이곳 남쪽사람들이 여가생활로 즐기는 캠핑은 아주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일단 캠핑은 밖에서, 그러니까 자연 속에서 먹고 자는 걸 말하잖아요. 도심을 떠나 숲 속에서 좋은 공기도 마시고 나무불 피워서 고기도 구워 먹고, 저녁이 되면 환한 도시에선 볼 수 없는 별들이 촘촘히 박힌 하늘도 올려다보고, 그렇게 낭만 가득 넘치는 야외숙박이 한국의 캠핑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캠핑을 좋아하고 즐깁니다.

몇 년 전부터 캠핑을 즐기는 인구가 정말 늘어나면서 잘 때 쓰는 천막이며 밖에서 음식 할 때 쓰는 조리기구 등 갖가지 캠핑도구들이 엄청나게 많아졌고요. 아예 차를 개조해서 차에서 자는 차박, 거의 호텔방처럼 근사하게 꾸며져 있는 글램핑까지 다양한 형태의 캠핑들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늘 집이라는 똑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던 가족들에겐 특별한 추억과 재미를 주게 되죠.

그럼 이제 북한의 야영에 대해 얘기해볼까요? '배움의 천리길'이나 '광복의 천리길'행사에 참가한 학생들이 밖에서 추위에 떨며 야영을 했다는 얘기를 텔레비전에서 본 적은 있습니다만 이곳 사람들처럼 여가생활로 밖에서 먹고 자는 걸 하려고 일부러 야영을 떠났다는 사람은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혹시 여러분 주변엔 그런 분 계신가요? 그래서 “야영이 있지만 야영을 여가생활로 즐기는 문화는 없습니다”라고 답해야 할 것 같네요.

그런데 말하다 보니 문득 가을 농촌동원 나갔을 때 친구들이랑 옥수수밭 한가운데 있는 계단식 오두막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밤새 얘기 나누고 깔깔 웃으며 이대로 여기서 자고 싶다 생각했던 그때가 생각납니다. 정말 행복한 순간이었는데, 그러고 보면 지붕이 있는 집이 아니라 자연에서 생활하고 싶은 마음은 본능적으로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잠깐 해보게 되네요.

자꾸 하늘을 올려다보게 되는 참 좋은 가을입니다. 이렇게 좋은 날이 길지 않을 텐데, 지나 보내고 나면 너무 아쉬울 텐데, 가을의 청명함을 간직할 수 있게 북한주민들도 조금의 여유를 내셔서 야외에서의 여가생활 즐기셨으면 좋겠네요. 오늘은 여기서 줄일게요. 지금까지 서울에서 탈북민 방송원 조미영이었습니다.

출연조미영, 에디터이예진,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