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청진 출신 탈북 방송인 조미영 씨가 진행하는 '질문있어요'가 이어집니다.
인서트)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시 강서구에 살고 있는 조준현이라고 합니다. 지난주 토요일이 한글날이었잖아요? 북한에서도 한글날을 기념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북한에선 조선글, 조선말이라고 하죠. '한국어' '한글'이라는 말은 북한에서 낯선 표현입니다. 한국에서 10월 9일은 국가 지정 기념일인 한글날입니다. 훈민정음, 다시 말해 오늘날의 한글은 세종대왕 25년 곧 서기 1443년에 완성하여 3년 동안의 시험 기간을 거쳐 1446년에 세상에 반포되었다고 합니다.
언어는 보통 사람들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는데 언어가 만들어진 시기와 만든 사람이 기록으로 남아있는 건 한글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주도하여 창의적으로 만든 문자로 지극히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우수한 문자로 평가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한글날은 이러한 한글의 창제와 반포를 기념하고 한글의 우수성과 공로를 기리는 날인 거죠.
북한에도 조선글날이라고 해서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를 기리는 기념일이 있기는 합니다. 1월 15일이라고 하는데, 학자들이 간단한 토론회를 개최하는 정도로 그 의의가 많이 축소되었답니다. 남북한의 기념일이 다른 건, 한국에선 한글의 반포, 그러니까 세상에 알린 날을 양력으로 계산해 기념하는 반면, 북한은 한글의 창제일을 양력으로 바꿔 기념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는 북한에 조선글날이 있다는 사실도 한국에 와서야 처음 알게 됐어요. 여러분은 알고 계셨나요?
정작 한국에 와서야 북한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이 방송을 듣고 계신 북한 동포분들 중엔 아마 세종대왕에 대해서도 모르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요. 부끄럽지만 저는 북한에선 몰랐거든요. 조선왕조 제4대 왕이었던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하고, 신분에 상관없이 인재를 고르게 등용했으며, 문화예술을 융성화 시키고, 백성들의 지위를 높이고, 사형을 금지하는 등 백성들의 생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수많은 애민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조선시대 가장 훌륭한 왕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한국의 만원짜리 지폐에는 세종대왕의 얼굴이 들어가 있는데요. 한국의 어린이들에게 가장 존경하는 위인을 물으면 세종대왕이라고 답하기도 합니다.
물론 북한에도 세종대왕과 훈민정음에 대한 설명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이는 거의 없는 듯 합니다. 북한은 훈민정음이나 우리말의 탄생에 대한 역사적 의미는 축소시키고 일제에 빼앗길 뻔 했던 우리말과 글을 장군님이 되찾아 주셨고 우리글을 발전시키기 위한 과업을 제시하셨다… 등의 내용을 부각시켜 교육하고 있죠. 모든 역사가 오로지 김씨일가 중심의 역사로 왜곡돼 있다 보니, 탈북민들은 한국에 와서 곤혹스러운 순간이 참 많습니다. 역사 지식이 한국의 어린아이들보다 못하니까요.
생각해보면 북한에서 살 땐 오로지 먹고 사는 것 외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듯 합니다. 한국에 와서야 먹고 사는 것 외에 살면서 중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오랜 분단 상황에서도 같은 언어와 하나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음은 남북이 한민족임을 확인시켜주는 중요한 근간이 되죠. 하지만 북한은 역사왜곡으로, 한국은 외래어, 외국어 등의 유입으로 남북한에는 역사인식이나 언어에 있어 점점 적지않은 차이와 이질감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과 북한의 언어학자들이 남북한의 언어를 정리하여 기록한 겨레말큰사전을 편찬 중입니다. 사전이 완성되면 한국사람들은 북한에서 사용하고 있는 언어들을 보다 정확하게 접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아마 언어가 담고 있는 북한만의 이념적, 문화적 요소들과 북한 각 지방들의 고유의 정서도 느낄 수 있게 되겠죠. 그런데 한국에서 실제로 사용되는 언어들이 담긴 겨레말큰사전, 과연 북한의 인민들도 볼 수 있게 될까요? 세계적으로 그 우수성을 평가받고 있는 아름다운 우리말과 글, 남북한이 적극적인 교류를 통해 함께 잘 보존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 방송 마무리하겠습니다. 서울에서 탈북민방송원 조미영이었습니다.
출연: 조미영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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