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질문있어요] 북한의 김장비법은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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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청진 출신 탈북 방송인 조미영 씨가 진행하는 ‘질문있어요’가 이어집니다.

(음악 up & down)

“안녕하세요. 저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전업주부로 살고 있는 40대 여자입니다. 저는 요리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요. 얼마 전엔 김장을 했어요. 한 20포기 정도 해서 친구도 몇 포기 주고 김치냉장고에 넣어뒀는데 아주 뿌듯하네요. 북한도 이맘때쯤 김장을 하지않을까 싶은데... 북한에선 김치 양념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더라고요. 북한의 맛있는 김장비법을 알고 계신다면 좀 알려주세요”

(음악 up & down)

맞아요. 이맘때 즈음 주부들의 가장 흔한 이야기 주제는 아마 김장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장했어?' '응 난 10포기. 넌 얼마나 했어?' '김장 안 했으면 몇 포기 좀 줄까' 뭐 이런 말들이죠. 북한도 비슷합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요. '그 집은 그래서 김치 몇 독했소?' '올해는 그래도 200키로는 했습니다' '그만하면 됐구만. 나는 큰 독으로 해서 한 3독은 담갔소'

지금 이 방송 듣고 계신 남북의 주부 분들 모두 서로의 대화 내용에 갸우뚱하게 되시죠? 김장의 양이 남북한이 너무 달라섭니다. 한국에선 김치 외에도 다른 반찬거리들이 많다 보니, 일반적인 가정에서는 적게는 5포기정도, 많아도 20~30포기 정도가 평균적인 김장의 양인 듯 하더라고요.

하지만 북한의 김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양이죠. 보통 백키로에서 몇백키로 하는 집들이 여전히 많을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김치 맛이 중요하지 않은건 아니죠. 반년전투라고 할만큼 중요한 일이다 보니, 굉장한 정성을 들이게 되는 것이 사실이고 각각의 집들 마다 자신만의 김장비법들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죠.

라지오 듣고 계실 북한동포분들에게 한국의 김치맛에 대해 개인적인 소견을 말씀 드리자면... 한국의 김치는 어느 집 김치를 먹어도 맛이 모두 비슷합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어떤 분은 '무슨 소리! 우리집 김치는 맛이 아주 특별하고 맛있다구' 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다시 한번 개인적인 맛평가임을 밝히긴 하지만 분명한 건 제 입맛엔 정말 비슷합니다.

집안 행사로 가족이 모여 어머니 방식대로 다 같이 김치 담그는 집도 많지만, 제 주변의 젊은 주부들은 보통 인터넷에서 김치 담그는 법을 검색해서 그 방법대로 하더라고요. 새우젓이나 멸치젓 같은 젓갈류와 양파나 고춧가루, 파 등의 채소들을 섞고 찹쌀풀을 묽게 만들어 섞어서 약간의 끈적함을 더하더라고요. 집안마다,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긴 합니다만 하나같이 좋은 배추에 비슷한 양념 속, 그리고 김치냉장고에서 숙성되는 대부분의 한국김치는 맛이 비슷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북한의 김장비법을 알려달라고 하셨는데, 인터넷을 통해 김장하는 법을 서로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닌 북한에선 집집마다의 김장비법이 공개되지도, 공유되지도 않습니다. 그저 각자의 비법으로만 남아있게 되는 거죠. 그래서 저 역시 다른 집들의 김장방법을 다양하게 알고 있진 못합니다.

함경북도 청진에서 살았던 저의 경우엔 김치에 늘 명태를 넣었습니다. 싱싱한 생태를 큼직하게 썰어선 깍두기에 넣고, 좀 잘게 썬 건 김치에 넣었습니다. 그렇게 땅에 묻은 큰 독에서 숙성시켜 한겨울에 꺼내 먹으면 완전히 익은 명태가 김치의 쩡한 맛을 한결 더 살려주었죠. 그런데 한국에 온 첫해 북한에서처럼 명태를 사서 김치에 넣고 김치냉장고에서 숙성시켜 꺼냈는데 명태가 전혀 익지 않아서 그 겨울은 김치를 못 먹고 버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 김치맛의 비결은 뭐니뭐니해도 땅속에 묻은 독 안에서의 제대로 된 숙성발효의 맛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와보니 김치 먹을 때 퍼런색 이파리가 보이지 않더라고요. 겉잎은 질겨서 보통 떼어내 버리기 때문인데, 하지만 북한은 통이 지지 않은 아주 퍼렇고 꽛꽛하고 좋지 않은 배추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보니, 그 꽛꽛한 배추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돼지고기 비계를 넣는 집도 있었고, 여름부터 보관해둔 오징어 먹물을 넣는 집 등 각자 집들만의 비법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처럼 음식 재료가 풍족하지 않다 보니 양념 속을 아주 많이 넣지 않는 것이 특징인데 오히려 그래서 배추 본연의 맛이 살아 쩡한 맛을 낸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언젠가는 북한의 각각의 비법으로 담근 김치들을 한국사람들도 맛볼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 여기서 마칠게요. 지금까지 서울에서 탈북민 방송원 조미영이었습니다.

출연 조미영, 에디터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