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질문있어요] 새터민? 탈북민? 어느 쪽이 더 좋으세요?

0:00 / 0:00

앵커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청진 출신 탈북 방송인 조미영 씨가 진행하는 ‘질문있어요’가 이어집니다.

(음악 up & down)

“안녕하세요. 저는 부산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20대 대학생입니다. 동아리 모임에서 우연히 북한에서 온 친구를 알게 됐어요. 종종 북한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는데 흥미로운 얘기들이 많아서 들은 걸 또 제 주변 사람들에게도 전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그 친구에 대해 얘기할 때 '탈북민 친구'라고 해야 할지, '새터민 친구'라고 하는게 더 좋을지 좀 헷갈립니다. 아직 친해진 사이가 아니라서 직접 물어보진 못했거든요. 진행자 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음악 up & down)

'탈북민' '새터민' 북한에서도 들어보셨을까요? 아니면... 이 말이 더 익숙하신가요? '변절자' '배신자' 말입니다. 저처럼 북한에서 태어나 살다 한국으로 와 정착해 살고 있는 사람들이 현재 남북에서 각각 전혀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 방송을 듣는 분들은 아실 텐데요. 한국에서 저 같은 사람을 부르는 정식명칭은 ‘북한이탈주민’입니다. '북한을 이탈한 사람'이라는 뜻인데요. 일상에서는 주로 탈북민이라는 표현을 더 자주 쓰긴 합니다. 그럼 '새터민'이라는 말은 뭐냐고요?

사실 북한에서 온 사람들을 칭하는 용어는 그동안 여러 번 바뀌어 왔습니다.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그 때 내려와 남쪽에 정착한 사람들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이라고 해서 '실향민'이라고 부릅니다.

이후 60년대, 70년대, 남북이 팽팽하게 대치하던 시기 한국으로 온 사람들은 '귀순용사'라고 칭했다고 합니다. 적이었던 사람이 반항심을 버리고 스스로 돌아서서 복종하거나 순종한다는 의미의 '귀순'에 그 결심을 치켜세우는 느낌의 '용사'라는 말을 붙인 겁니다.

실제로 이때까지만 해도 북한 체제에 환멸을 느끼고 정치적인 망명을 택하거나 휴전선을 넘어 온 군인, 남파간첩으로 내려왔다 귀순한 분 등이 있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남북의 체제 경쟁이 심하던 때라 이들은 텔레비전에 출연해 북한체제를 비판하는 용사다운 기자회견도 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80년대까지 1년에 한두 번씩 불리던 '귀순용사'라는 말이 지금의 용어로 재탄생된 데에는 바로 북한의 대량 아사 시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아마 30대 이상인 분들은 1990년대 중반을 다들 기억하시죠? '산 사람 입에 거미줄 치겠냐'는 옛 말이 무색해질 만큼 여기저기서 매일 굶어 죽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렇게 일단 살아남는 것이 전부가 된 상황에서 국경지대 사람들부터 쌀을 구하러 중국으로 넘어가기 시작했죠.

쉽게 끝나지 않는 식량난은 수많은 탈북 행렬로 이어졌고, 한국 역시 90년대부터 갑작스럽게 늘어난 북한 사람들을 수용하고 정착을 지원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렇게 1997년 드디어 이곳 남쪽에는 북한이탈주민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고 정식 북한이탈주민이라는 명칭이 생겨나게 된 겁니다.

새터민이라는 말은 탈북민들의 요구에 의해 잠깐 생겼다 지금은 없어졌고 사용하는 사람들도 거의 없는 말이긴 합니다만, 이 말이 만들어지고 다시 없어진 데에도 씁쓸한 이유가 있긴 합니다. 처음엔 탈북민이 아닌 탈북자라고 부르는 분들이 많았는데, ‘놈 者’ 자 라는 말이 사람을 좀 낮춰 부르는 느낌인 데다 탈북이라는 부분을 강조하는 것에 부담이 있다는 의견에 따라 새로운 터전에 정착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새터민'이라는 말이 생겨났죠.

하지만 다시 또, 이런 새로운 용어들의 등장이 북한 사람들을 한국 사람들과는 또 다른 하나의 집단으로 구분시킨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이 말은 폐지됐고 지금은 '북한이탈주민'이라는 용어로 정착된 겁니다.

'탈북민' '새터민' 어떻게 부르는 게 좋을까요? 라고 질문 주셨는데... 새터민, 탈북민 모두 탈북민의 정체성을 담아낸 말들이라 '귀순용사'만 아니라면 편하신 대로 불러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저 다만, 그 친구의 고향을 알게 되셨다면... 만약 회령에서 왔다면 '회령 친구' 신의주에서 왔다면 '신의주 친구'라고 불러줬을 때 훨씬 더 좋아하지 않을까... 같은 탈북민으로서 유추해보게 됩니다. 답변이 됐길 바라며 그만 줄일게요. 지금까지 청진에서 온 방송인 조미영이었습니다.

출연 조미영, 에디터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