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질문있어요] 호상비판이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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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청진 출신 탈북 방송인 조미영 씨가 진행하는 '질문있어요'가 이어집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는 40대 남자입니다.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탈북민들의 영상을 보니까, 북한에서는 남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호상비판이라는 걸 한다고 하더라고요. 전 보고도 좀 믿기지 않았는데, 모든 사람이 무조건 서로에 대해 비판하는 건가요? 아니면 어떤 사람이 비판을 받고 어떤 사람이 비판을 하게 되는 건가요?”

전에 '한국에 와서 가장 좋은 것이 뭔가요?'라는 질문이 있었죠. 아마 어떤 이는 '더 이상 생활총화 안 해도 되는 거요'라고 답할 겁니다. 탈북민이라면 누구나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단어가 바로 생활총화입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북한에선 생활총화를 해요'라고 얘기하면 꼭 한 번씩 더 물어봅니다. “생활... 뭐라고요?” 그러면 또박또박 한 글자씩 강조해서 다시 한번 얘기해주게 되죠. “생.활.총.화.요” 대한민국에선 한번도 써 본 적 없는 생소한 단어라 더 안 들리는 것 같습니다.

연말이 되면 대한민국에서는 회사마다 크든 작든 종무식이라는 걸 하게 됩니다. 한 해 동안의 업무가 끝난 걸 축하하고 그동안의 서로의 수고를 격려하는 자리인 거죠. 그래서 보통은 조직 내에서 1년동안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를 얘기하고, 특별히 더 고생한 분들의 이름을 호명해 노고를 치하하고, 앞으로 발전을 위해 더 잘해보자는 식의 얘기들이 오고 가게 됩니다. 생활총화는 이와 비슷한 형태지만, 여기서 비판이라는 말은 절대 나오지 않죠.

오늘 질문자 분은 북한의 생활총화, 그 중에서도 호상비판에 대해 물어보셨는데요. 별로 유쾌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기억을 떠올리며 답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부분의 북한 사람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생활총화를 하게 됩니다. 물론 특수한 경우도 있죠. 예술인의 경우는 사상적으로 더 투철해야 하기에 이틀에 한 번씩 2일 생활총화를 하게 되니까요.

생활총화는 두 가지로 나뉩니다. 자기비판과 호상비판이죠. 그리고 생활총화는 노트에 적어와서 읽어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하면 안 되죠. 미리 적어온 비판 글에도 구성이 필요합니다. 일단 먼저, 김일성과 김정일의 교시나 말씀 인용을 먼저 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셨습니다'라고 한 다음 인용 문구를 넣어 교시 내용을 읽게 되죠. 이 교시가 바로 비판 받아야 할 행동의 기준이 되는 겁니다. 때문에 항상 말씀 인용 다음 나오는 말은 '말씀에 비추어 볼 때...'입니다.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저는 어떠어떠한 잘못을 했다’는 내용, 그리고 이 잘못을 저지르게 된 원인, 앞으로 고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할 것인지 까지를 말하는 것이 바로 자기비판입니다.

호상비판은 꼭 자기비판 다음에 이어지게 되는데요. 이 순서는 바뀌면 안 됩니다. 호상비판은 저는 '000동무를 비판하겠습니다'라고 먼저 얘기한 다음 역시 똑같이 말씀 인용, 비판 내용, 원인분석, 앞으로 다짐 등으로 구성되게 되죠. 매주, 또는 이틀에 한번씩 반복되다 보니 그렇게 비판할 거리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가 한 명만 지각이라도 하면 그 사람이 집중 비판 대상이 되기도 하죠. 가끔은 중요한 회의시간에 껌을 씹은 걸로도 태도가 좋지 않다며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말하다 보니, 다 큰 성인들이 서로의 사소한 행동들을 정색하고 지적하고 있는 모습이라니, 민망해집니다. 이 호상비판은 생활총화를 주최하는 당비서 역시 비켜가지 못합니다. 북한은 모두가 비판해야 할 사람이고, 모두가 다 비판 받을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죠. 물론 유일한 한 분, 아니 두 분, 아니 세 분인가요? 김씨 일가는 절대 비판할 수 없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말입니다.

제가 여기에 와서 살아 보니, 한국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에 비해 정말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남을 비판하는 일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걸 극도로 꺼리거나, 꼭 해야할 경우 상처가 되지 않게 최대한 돌려서 말하는 편입니다. 만약 함께 일하는 동료들끼리 회의 시간마다 서로의 잘못에 대해 비판해야 한다고 하면 그런 회사는 절대 다니지 않겠다는 사람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정말 제대로 된 호상비판을 하게 된다면 저는 “김정은 동지를 비판하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은 북한주민들, 꽤 많지 않을까요? 오늘은 이만 줄일게요. 서울에서 탈북민 방송원 조미영이었습니다.

출연 조미영, 에디터 이예진,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