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청진 출신 탈북 방송인 조미영 씨가 진행하는 ‘질문있어요’가 이어집니다.
"안녕하세요 . 대전에 살고 있는 40살의 여성입니다. 저는 올해로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었어요. 아직 미혼이고요. 나이가 나이인지라 새해부터 가족들과 주변에서 올해는 꼭 결혼하라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있어요. 물론 제 개인적으론 꼭 결혼이 아니더라도 일상을 함께 할 남자친구는 얼른 찾아야겠다, 결혼보다는 먼저 살아보는 게 낫지 않나 생각도 하는데요. 인터넷 보니까 북한에선 미혼남녀의 동거가 불법으로 규정돼 있다고 하더라고요. 사실인가요?"
올해로 마흔이 되신 미혼여성 분의 이야기네요. '마흔' 이라는 나이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아마 각자의 연령이나 건강, 여러 생활 환경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비교적 60대 분들에겐 여전히 젊고 예쁜 나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고, 20대에게 마흔은 어쩌면 그냥 아줌마, 아저씨이거나 굉장히 나이 많은 어른같이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요.
한국은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청년을 규정하는 나이도 많이 올라갔습니다. 국가에서 진행하는 사업의 공지를 보면 보통 만 39살 까지를 청년으로 정하기도 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40살이 되면 남과 북 모두 청년보단 중년기에 들어섰다고 여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누가 봐도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연령대의 남녀가 결혼을 하지 않고 있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겁니다. 2020년 기준으로 한국의 40대 남성의 미혼율은 23.6%, 여성은 11.9%로 조사됐고, 30대 미혼율도 2023년 11월 기준 51.3%, 특히 서울지역 남성의 미혼율은 68.3%, 여성은 58.2%로 집계됐습니다.
그러니까 결혼을 하지 않은 30대 이상의 미혼남녀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건데, 통계자료가 없는 북한에서도 역시 기존에 비해 결혼 연령대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은 북한 주민들 스스로도 많이 느끼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10년 전까지만 해도 20대 초중반이면 대부분 결혼을 하던 북한 여성들이 20대 후반이 지나서도 결혼을 하지 않은 채 탈북하여 한국에 들어오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되니까요.
이렇게 결혼이 늦어지다 보니 오히려 미혼남녀의 동거율은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요. 최근 나온 북한 관련 기사에는 북한 당국이 혼인 신고를 하지 않고 동거하는 남녀에 대한 집중 단속을 벌이고 있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북한 당국이 미혼남녀의 동거를 사회주의 생활 양식에 맞지 않은 비사회주의 행위로, 퇴폐적인 자본주의 문화로 규정하고 금지시키고 있다는 겁니다.
사실 남과 북 모두 전통적으로는 결혼을 성인의 중요인 이정표로 간주해 성인이 되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가정을 꾸리는 것을 정상적인 삶의 가치로 여겨왔었습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 북한 사회는 남성의 경우, 30살이 돼도록 군대에 있다가 나와서 사회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거기서 배치된 직장에서는 배급을 받을 수 없는데 무작정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선배세대가 겪는 고단한 일상을 낱낱이 경험했다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여성들 역시 결혼 후에도 여맹에 속해 여러 가지 정치생활에 동원되는 것은 물론이고 거기에 장사로 가계 경제도 책임지면서 아이도 키우고 시부모님도 모셔야 하는 등 여러 가지 격무에 시달리다 보니, 점점 더 결혼을 기피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겁니다.
북한은 지금 20~30대 청년들뿐 아니라 재혼을 하는 40~50대 중년들도 경제적인 문제를 먼저 해결한 이후에, 또는 먼저 살아보고 문제가 없으면 그때 결혼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동거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더욱이 이혼절차도 까다롭고 이혼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좋지 않은 북한에선 결혼 후 이혼을 하느니 차라리 혼인신고 전에 함께 살아보겠다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는 건데요. 특히 옛날처럼 한 사람과 인연을 맺으면 싫든 좋든, 어떤 고통이든 모두 감수하면서 끝까지 참고 살아야 한다는 인식도 옅어지면서 동거에 좀 더 마음을 열게 된다는 겁니다.
특히 이런 현상을 유발한 요인 중에 큰 부분이 외부에서 전해지는 정보나 영상물 속 문화의 영향이라는 것이 아마 북한 당국의 판단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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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동거 행위에 대해 북한은 인민반 별 회의나 직장 등의 조직 단위로 공개적 비판무대에 올리는 방법 등으로 망신을 주거나 법적인 처벌까지도 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고 하는데요. 현재는 안전원들이 하루에도 수차례씩 동거 세대를 돌며 결혼 등록을 할 것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라 당장 혼인신고를 할 수 없는 동거 연인들은 당분간 떨어져 지내는 방법을 택하고 있기도 합니다.
북한 사회뿐 아니라 여전히 한국에서도 동거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동거는 현대 사회의 변화된 삶의 방식이고, 북한에서 강조하는 대로 자기 삶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며, 동거 역시 개인의 선택적 영역의 문제라는 겁니다.
한국 같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이런 사회적 변화에 따른 현상들을 무조건 억누르거나 통제하는 방식이 아닌 변화의 요인과 진짜 문제를 파악해 해결 방안을 찾고, 그 세대가 원하는 것들을 제도와 정책으로 뒷받침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것을 전하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서울에서 청진 출신 방송원 조미영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