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새 북한 TV가 많이 달라져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젊고 참신해지고, 진행 방식도 다양해지고, 기술 도입도 열심히 합니다. 가령 병사들에게 고향 소식을 전해주는 ‘병사의 고향소식’ 시간에는 방송을 진행하는 도중 남성 진행자가 속보를 들고 급히 방송실로 들어옵니다. “방금 전에 천리마의 고향인 강선 땅에서 우리 후방 가족들의 소식이 또 들어왔습니다” 이러면서 여성 진행자와 함께 방송을 하더군요. 무슨 하필 그때 딱 강선에서 후방가족 소식이 들어왔겠습니까? 다 설정이고, 또 남녀 방송원 모두 아직은 그런 방식의 방송에 익숙지 않아 어색한 표정이 역역했지만 아무튼 신선했습니다.
그리고 카메라를 새로 들여왔는지 영상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화질이 좋고 어떤 때는 방송실 안의 모습까지 보여주며 생방송 느낌을 살렸습니다. 저번에 열병식 할 때는 드론이라는 무인 비행장비까지 동원해서 항공촬영 기법도 선보이고, 교양 프로 제작할 때는 가상현실 기술까지 도입됐습니다. 가상현실 기술이란 것은 자동차 모형을 가상으로 만들고 거기서 내리는 척하면서 진행한다든지, 남새를 공중에 띄워놓고 설명한다던지 하는 것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도 '오! 파격이네' 하고 놀라운데, 여러분들은 더 많이 놀라실 겁니다.
북한 방송이라는 것이 수십 년 동안 똑 같았죠. 매일 보는 나이든 진행자가 나와서 아주 엄숙한 표정 철철 흘리며 사극 대본 읽듯이 보도를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걸 버리기 시작한 것이죠. 요즘엔 7월 22일부터 방영한 ‘임진년의 심마니들’이란 8부작 역사 드라마도 남쪽에서 약간 화제가 됐습니다. 역사 드라마는 한국이 몇 수 위니까 북한이 잘 찍어서 화제가 된 것이 아닙니다. 화제가 된 것은 딱 한 가지 이유였는데, 그 역사 드라마에서 나오는 말투가 한국에서 찍은 역사 드라마와 거의 흡사했기 때문입니다. 그 드라마 저도 아직 못 봤는데, 시간 날 때 봐야겠습니다. 그동안 북한의 드라마 촬영 기술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보면 확인이 되겠죠. 대신 저는 잠깐 봤는데 말투 비슷하다고 놀란 것은 그럴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사극이라고 하지 않는다면 남한에서 몇십 년 전 제작했던 사극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말투가 거의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원래 남북의 말투는 거의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여기서 1960~1970년대 만들어진 영화를 보면 거기서 하는 주인공들의 말투가 북한이랑 똑같아서 놀랐습니다. 그러니까 1970년대까지는 남북한의 말이 거의 비슷했는데, 그러다가 1980년대 들어오면서 많이 달라진 것 같고요. 아마 북한은 김정일이 혁명적 말투로 하라고 하면서 이춘희 이런 아나운서를 기백있다고 칭찬하니 점점 화난 억양처럼 된 것 같고, 남쪽은 반대로 간을 살살 녹이는 목소리로 진화한 것 같습니다.
저는 오히려 잠깐 본 임진년의 심마니들 장면에서 엑스트라 많이 동원한 것을 보면서 역시 북한답다고 생각했습니다. 엑스트라라는 것이 뭐냐면 주연 배우가 아니라 보조출연 배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가령 전투장면에서 수백 명씩 우르르 달려가던데, 한국은 그렇게 못합니다. 보조출연배우 한 명 하루 일당이 50달러 넘는데, 100명 동원시키면 그 장면 하나 찍느라고 5,000달러 이상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이 동원할 수가 없습니다. 여기 역사 드라마를 보면 무슨 큰 전투장면을 찍는다는 것이 몇 십 명이 동네 싸움 하듯이 등장해서 웃은 적이 많습니다.
요즘 남쪽에서 안시성이라고 고구려 때 안시성 방어전투를 찍은 영화가 인기인데, 이 영화에 병사로 등장하는 사람이 200~300명 정도입니다. 이 정도면 완전 대작에 속하죠. 이만큼 보조출연배우를 쓰고, 주연배우 월급까지 주고 하면 하루 10만 달러 이상이 나갑니다. 그런데 북한은 대학이나 군부대 하나 공짜로 동원하면 그만이죠. 저도 대학 다닐 때 영화 두 개에 동원됐습니다. 저는 일제 때 학생복을 입고 만세 부르는 장면에 나갔는데, 동원은 1000명 가까이 시켜놓고 정작 그 머리수는 다 나오지도 않더군요. 얼마나 비효율입니까.
예전에 소련영화 전쟁 장면을 보면 수천 명씩 등장하지 않습니까. 그것도 부대 동원시키면 그렇게 숫자가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화면에 잡히면 규모가 확 달라집니다. 그런데 한 명 출연시키는 비용이 돈으로 계산되는 시장경제 국가들에선 그런 규모를 찍기 어려운 것이죠. 아참, 요새 북한 방송이 많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역사 드라마 이야기까지 넘어갔군요. 그런데 이렇게 방송 분위기가 달라진 것이 무슨 이유일까 생각해보니, 김여정이 선전선동부 부부장이 된 것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정은 동생 김여정이 불과 29세인 2014년 11월에 선전선동부 부부장을 맡으면서 아예 군기를 확 잡더군요. 87세 김기남, 81세 리재일, 62세 최휘 모두 혁명화를 갔다 왔습니다. 선전선동부 부장과 제1부부장이 모두 혁명화 교육을 받은 전례가 없는데 오죽 말이 안 통했으면 그런 극약 처방을 했을까 싶기도 하지만, 원래 노인이 되면 완고해집니다. 그들이 김여정이 말하는 것을 알아나 들었을까 싶기도 한데, 그렇다고 할아버지뻘인 80 고령을 농장에 보내 뺑뺑이 돌게 하는 것은 북한이니 가능한 일이겠죠.
그리고 북한 TV가 좀 재미가 있어졌다고 해서 제가 환영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차피 북한 TV라는 것이 다 세습 독재를 공고히 하기 위해 종사하는 어용매체들인데, 좀 참신한 방식으로 독재 체제를 위해 일한다는 것 정도의 차이가 아니겠습니까. 그런 자잘한 재미나 준다고 감동할 필요는 없고, 진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면 재미있는 것들이 넘쳐날 것이니, 그런 날이 하루 빨리 오는 것이 여러분들에겐 최선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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