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기 타기가 싫어진 인생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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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올해도 이제는 다 갔습니다. 저는 2018년의 마무리를 미국에 와서 하고 있습니다. 지난 일요일에 한 열흘 동안 미국 횡단여행이나 할까 생각해 왔는데, 워낙 미국이 땅이 커서 절반 정도나 횡단하면 정말 많이 하는 겁니다. 제가 미국에 온 것은 친미분자여서가 아니라 미국에 있는 친한 동생들이 여행을 가는데 꼭 같이 가자고 성화를 하는 바람에 이렇게 오게 됐습니다.

이번 주에는 동생들과 함께 매일 대여섯 시간씩 차를 타고 달리고 있습니다. 저는 2002년에 한국에 와서 2003년 처음 미국 워싱턴에 가봤는데, 이후부터 미국에는 많이 와봤습니다. 거의 1년에 한번씩 온 것 같고, 올해도 두 번째로 왔는데, 그러다 보니 큰 도시는 거의 다 가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대개 도시를 중심으로 한 출장을 왔었지 이번처럼 광활한 자연을 벗 삼아 야숙을 하면서 지낸 적은 없습니다.

이번 여행은 순전히 우연이었습니다. 지난주 금요일에 미국에서 온 동생과 술을 마셨는데, 그가 내일 모레 미국에 가서, 역시 제가 아는 어느 동생이랑 차로 미국 여행을 떠난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형님도 같이 갑시다 하는데, 저는 처음에 “내가 서울에서 일이 많아서 어떻게 가냐, 재미있게 놀아” 이랬는데 밤 12시 넘어가니 취해버렸습니다. 취하면 간이 커지니까 “그래 가자. 이번이 아니면 언제 또 그렇게 여행해 보겠나, 재미있겠네” 이러고 말았습니다. 바로 그와 같이 집에 올라와 미국 비행기표를 샀습니다. 새벽 한 시에 말입니다.

미국 비행기표는 원래 12월에 비싸고 구입하기도 어렵습니다. 당장 낼 모레 가야 하는데 표가 있을까 싶었는데, 찾아보니 있기도 하고 가격도 매우 쌌습니다. 얼마냐 하면 왕복 1,300달러 정도입니다. 원래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이 비행기표도 시장 원리에 의해 결정됩니다. 사람들이 없는 때에는 표가 싸지고, 많으면 비싸집니다.

12월엔 미국에 유학 갔던 학생들, 출장 갔던 사람들이 방학이나 설을 쇠러 오기 때문에 표가 비싼 때인데도 1,300달러면 쌉니다. 원래는 한 2,000달러 이상 줘야 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또 미국 비행기표야 아무리 싸도 인천에서 로스앤젤레스 정도까지 가려고 해도 1,000달러 정도 합니다.

그런데 당장 내일 모레 떠나야 하는데도 표도 있고, 싸기도 해서 샀지요. 또 그 자리에서 미국 비자도 신청했습니다. 유효기간 2년짜리 비자, 즉 2년 동안 미국에 언제든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비자가 1분 안에 나왔습니다. 그렇게 급작스럽게 미국 행이 결정됐습니다. 미국으로 떠날 때 짐 싸는 것도 저는 30분이면 됩니다. 한 열흘 입을 옷만 가방과 배낭에 챙겨 넣으면 됩니다.

그렇게 일요일 오후에 떠났는데 무려 16시간이나 비행기를 타고 왔습니다. 저는 예전에는 비행기 타는 것이 좋았는데, 이제는 정말 지겹습니다. 제가 북에 있을 때는 언제 비행기나 타보고 죽을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탈북해서 한국에 올 때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봤습니다. 그때 장춘에서 인천공항까지 2시간을 날아왔는데, 처음 심정은 이제는 비행기도 타봤으니 여한이 없다 이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비행기는 정말 편안했습니다. 탈북 불과 몇 년 전에 북에서 고난의 행군 시절을 보냈는데 그때는 평양까지 기차로 일주일씩 갔었고, 다리 놓을 자리도 없는 곳에 서서 다녔습니다. 그랬던 것이 편안하게 자리에 앉아 두 시간 1만 미터 꼭대기에서 아래 경치를 감상하며 날아오니 이건 뭐 힘든 게 전혀 없지요.

그런데 사람이란 환경에 곧 적응하는 간사함이 있어서인지 이제는 비행기 타고 다섯 시간 이상만 가면 막 지루하고 짜증이 납니다. 북한에서 창문이 하나도 없는 열차에 타서 꽉 끼워서도 삼사일 씩 가던 제가 말입니다. 이번에도 16시간 날아오면서 정말 지루했는데, 비행기에서 신문에 나갈 칼럼도 노트북으로 쓰면서 오니까 금방 가더군요. 역시 저는 글 쓰는 체질인가 봅니다.

제가 타고 온 비행기는 미국 보잉사에서 만든 여객기인데, 전 세계에서 제일 큰 비행기 제조회사입니다. 여러분들은 북에서 살면 러시아제 여객기 밖에 볼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그 비행기는 사실상 고물이고, 미국제 비행기는 이번에 김정은이 싱가포르에 갈 때 중국에서 빌려 탄 그 비행기입니다.

비행기 종류도 다양해서 200명이 타는 비행기, 300명이 타는 비행기, 심지어 700명이 타는 비행기도 있습니다. 비행기에는 좌석 앞에 TV도 붙어 있습니다. 이 TV 안에는 가장 최신 영화들도 100개 넘게 있습니다. 그 영화 보면서 오면 편안한데, 그래도 그냥 16시간 앉아 있는 것이 지루합니다. 물론 비행기가 날아가면 화장실도 가고, 돌아도 다니는데 그것도 닫힌 환경이라 답답합니다.

미국까지 오면서 비행기 안에서 소고기 볶음밥, 닭고기 볶음밥 이런 식사를 두 번 주고 간식도 한번 줍니다. 다 공짜이고, 심지어 술, 와인, 맥주 이런 것도 공짜라 달라는 대로 줍니다. 그래도 이제는 비행기 타기 싫습니다. 할 수 없이 탑니다. 북에서 일주일씩 기차 타고 다니던 제가 이렇게 변했습니다.

제가 비행기 타던 이야기 어쩌면 자랑 같은 이야기를 이렇게 자세히 하는 것은 제가 그만큼 북에 있을 때 비행기 한번 타보는 게, 평생의 꿈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비행기 한번 못 타고 죽으면 정말 억울할 것 같았고, 아직도 북에 과거의 저와 같은 분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비행기 타면 이렇습니다 하고 타 본 입장에서 자세히 말씀드리는 것이죠. 비행기 한번 타보지 못한 수많은 북한 동포들 떠올리면 정말 화도 나고요.

아무튼 오늘엔 미국 오던 이야기와 비행기 이야기하느라고 시간이 다 갔네요. 다음엔 미국 자연을 느낀 소감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라고 방송을 맺었는데, 오늘은 미국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