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7일자 노동신문 정론을 보니 김정은이 "나는 고난의 행군시기 풋강냉이 한 이삭으로 끼니를 에울 때도 있었으며 거의 매일과 같이 줴기밥과 죽으로 끼니를 에웠다. 나는 고난의 행군 전 기간 장군님을 모시고 인민들과 함께 있었고 인민들이 겪는 고생을 함께 겪었다. 만일 훗날에 력사가들이 고난의 행군시기 김정은은 어떻게 지냈는가고 물으면 나는 그들에게 떳떳이 말해줄 수 있다. 고난의 행군시기 나는 호의호식하지 않았다. 나는 인민들과 같이 어렵게 살았다" 이렇게 말했답니다.
그런데 저는 저 말씀이란 것을 보면서 도둑이 제 발 저린단 말이 생각났습니다. 김정은이 고난의 행군시기 어떻게 지냈는지 북한 사람들만 모르지, 전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데 뭐 훗날 역사가들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겠습니까. 제가 지금 당장 말씀드리겠습니다. 김정은은 고난의 행군 기간에 스위스에서 살았습니다. 중간에 북한을 들락날락 하긴 했지만 8살 때인 1991년 11월부터 18살 때인 2001년 초까지 무려 9년 넘게 스위스에서 자란 겁니다. 김정은이 스위스에서 공부하면서 동창들과 찍은 사진도 있고, 더욱이 저와 한 부서에 있던 기자가 김정은이 여동생 김여정과 함께 스위스에서 유학할 때 살았던 집까지 직접 가보기도 했습니다.
김정은은 스위스 베른의 국제학교를 다녔는데, 서류상의 아버지는 박남철이란 이름으로 베른 주재 유엔대표부 직원으로 돼 있었습니다. 아마 특별히 장군님 자녀들을 돌보라는 명령을 받고 파견된 사람이겠죠. 1991년 이때는 김정일과 성혜림 사이에 난 맏아들인 김정남이 후계자로 인정받을 때니까 고영희 사이에 태어난 둘째 김정철과 셋째 김정은은 후계자 순위에 올라있지 않았으니 사람들 눈을 피해 스위스에 보낸 것 같습니다. 참고로 말하면 첫째 김정남도 스위스에서 유학을 했고, 김정철, 김정은은 물론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도 몽땅 스위스에서 공부했습니다.
왜 스위스냐 하니 스위스는 중립국가로 비교적 안전하고 비밀도 보장되고, 또 스위스 비밀계좌 하면 북한까지 널리 소문이 났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김정일 비밀계좌도 스위스에 있고 하니 제일 믿음직한 사람들이 스위스에 파견돼 비자금과 가족까지 돌 본 것이죠. 돈과 자식을 맡기는 것은 정말 집안처럼 믿는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당시 스위스 대사가 리철(본명 이수용)이었는데, 이 사람이 사실상 북에서 김정일의 최고의 신임을 받던 사람이었던 거죠.
아무튼 스위스에서 서류상 아버지가 박남철이니 김정철은 박철, 김정은은 박운이란 가명으로 학교를 다녔습니다. 앞서 스위스에서 유학한 김정남은 김철이란 가명을 썼죠. 스위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의 베른 국제학교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입학 첫 해에 75일, 이듬해엔 105일을 결석했습니다. 아마 북한에 들락날락해서 그런가 봅니다. 고난의 행군 시기 풋강냉이와 줴기밥, 죽으로 끼니를 에웠다는 노동신문 정론의 주장대로라면 북한에 풋강냉이와 줴기밥 죽을 먹으려 들어갔나 봅니다.
베른 국제학교에서 김정은의 성적은 자연과목이 6등급 가운데 3.5등급이었고 수학•문화•사회•독일어에서도 낙제를 겨우 면했습니다. 영어도 고급반에 들어갔다가 따라 못가서 보통반으로 내려갔고 겨우 낙제를 면했습니다. 하긴 성적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앞으로 노동당 선전부가 김정은이 평양의 어느 학교에서 고등학교 6학년 과정을 1년 만에 졸업했다는 식으로 만들어놓을 건데 말입니다.
그런데 왜 셋째인 김정은이 지도자가 됐을까 이것도 내처 말씀드리죠. 외국물을 많이 먹은 김정남이 개혁개방을 주장해 아버지 눈 밖에 났다는 이야기도 있고, 친엄마가 없으니까 밀려났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무튼 김정남이 밀려난 뒤 다음 차례는 김정철인데, 정철이는 야심이 없나 봅니다. 김정일의 일본 음식 요리사로 있다가 일본에 다시 도망쳐 나온 후지모토 겐지라는 사람이 회상하길, 2000년 8월 원산 초대소에서 김정일이 김정철에게 "후계자가 되고 싶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원산 초대소는 김정은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아버지의 질문에 성격이 연약했던 김정철은 손사래를 치면서 못한다고 했습니다.
결국 김정은이가 낙점됐는데 그날 밤 17살이었던 김정은이가 후지모토의 숙소로 찾아와서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시면서 이말 저말 나누었다고 합니다. 김정은이가 그때 후지모토에게 "우리는 여름이면 제트스키도 타고 승마도 하는데, 일반 사람들은 뭘 하면서 놀까? 나는 유럽이나 아시아 많은 나라를 다녀봤지만 그 나라들은 먹을 것, 입을 것이 넘쳐나는데 북조선은 뭐든지 턱없이 부족하잖아. 미국과 전쟁해서 패했는데도 일본이 그렇게 부활한 것 보면 정말 대단하다" 이렇게 말했답니다.
그러니까 김정은은 17살 때까지 일반 사람들이 뭐하면서 노는지도 모르고 자란 거죠. 풋강냉이와 줴기밥, 죽은 물론 별식으로 먹어는 봤겠지만 상어 지느러미 죽도 죽은 죽인 겁니다. 김정은이 어려서 제트스키 타고 승마하면서 혼자 잘 논 것이 미안한 가 봅니다. 얼마 전 승마장에 가서 인민들에게 승마장을 개방하라고 하기도 하고, 요새 평양에 공원과 유원지 만들어놓는데 그렇게 집착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좀 있으면 이설주가 수천 딸라짜리 해외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에 미안해서 평양 도처에 명품상점 만들어놓을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김정은이 춥고 배고픈 사람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문제에 집착하지 말고 아버지가 북한 인민들을 춥고 배고프게 만든데 미안해하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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